"비 한 방울 안 맞고 서울 한 바퀴"…장마철 뜨는 '서울아랫길'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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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한 방울 안 맞고 서울 한 바퀴"…장마철 뜨는 '서울아랫길' 탐방기

르데스크 2026-07-07 11:20:0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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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이어지면서 서울 도심 지하상권이 20·30세대의 새로운 실내 나들이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물던 지하상가가 이제는 쇼핑과 식사, 카페, 전시 관람까지 한 번에 즐기는 체류형 공간으로 진화하면서다. 특히 시청역부터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이어지는 국내 최장급 지하 보행망 '서울아랫길'은 비를 거의 맞지 않고도 도심 곳곳을 둘러볼 수 있어 장마철 대표 실내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비 걱정 없는 2.8㎞ 보행망…도심 속 숨은 실내 여행길 '서울아랫길'

 

을지로 지하보도, 일명 '서울아랫길'은 시청역부터 을지로입구역, 을지로3가역, 을지로4가역을 거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이어지는 국내 최장급 지하 보행망이다. 총연장 약 2.8㎞에 달하는 이 길은 5개 지하철역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 서울아랫길과 연결된 5개 지하철역 및 유명 상권.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기자가 직접 걸어본 서울아랫길은 단순한 지하 통로로 보기 힘들 정도로 즐길거리가 다양했다. 평일 저녁에도 지하상가와 연결된 카페와 음식점, 쇼핑시설에는 직장인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곳곳에서는 지상으로 잠시만 이동하면 맛집과 전시 공간으로 이어지는 소비 동선이 형성돼 있다.

 

시청역에서는 소공동지하상가와 명동지하상가를 통해 명동 상권으로 이동할 수 있고, 을지로 방면으로 걸으면 청계천과 을지로 골목,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는 DDP와 대형 쇼핑시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대부분의 이동 구간을 실내에서 해결할 수 있어 장마철에도 방문객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을지로입구역 일대에서는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와 다양한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힙지로'로 불리는 을지로3가역 주변에는 개성 있는 카페와 인쇄골목, 와인바 등이 자리하며 젊은 층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을지로4가역 주변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중부시장과 대림상가 일대는 과거 산업용 자재와 전통시장 중심 상권이었지만 최근에는 무국적 주점과 호주식 카페 등이 잇따라 들어서며 전통과 트렌드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일대에서는 DDP와 대형 쇼핑시설, 부자재상가까지 이어지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역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상권이 연결되면서 방문객들은 비를 거의 맞지 않은 채 식사와 쇼핑, 문화생활을 한 번에 즐길 수 있게 됐다.

 

평일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을지2가 6-1번 출구 인근 지하상가의 한 제과점은 퇴근길 직장인들로 붐볐다. 빵과 샐러드, 샌드위치를 구매하려는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양손 가득 음식을 들고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직장인들의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 지하상가 내부에도 사람들이 방문하기 좋은 곳들이 가득했다. 사진은 을지2가 6-1번 출구 인근에 위치한 제과점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모습. ⓒ르데스크

 

이곳은 수원·동탄·판교·광주 등 경기 남부 방면 광역버스 정류장과 가까워 퇴근길 이용객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일부 직장인들은 버스 좌석이 생길 때까지 지하상가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거나 음식을 포장한 뒤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직장인 박명은 씨(32·여)는 "회사와 을지로입구역이 지하로 연결돼 있어 퇴근할 때 자주 들른다"며 "퇴근 시간에는 광역버스 좌석이 없어 몇 대를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동안 이곳에서 저녁을 먹거나 빵을 사다 보면 비교적 편하게 귀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곳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 맛집으로도 유명하다"며 "8000원에서 1만원 정도면 든든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자주 찾는다"고 덧붙였다.

 

서울아랫길을 따라 이동하면 을지로입구역 1번 출구와 연결되는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상가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출구를 나오면 바로 이어져 장마철에도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다.

 

이곳에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노포들이 밀집해 있다. 직장인들의 '생맥주 성지'로 불렸던 가게가 이전해 영업을 이어가고 있고, 쪽갈비와 해산물 안주를 내세운 노포들도 꾸준한 단골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평일 저녁에도 직장인들의 회식과 모임이 이어지며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30년 넘게 을지로에서 근무한 임태화 씨(58·남)는 "예전부터 다니던 식당과 술집이 아직도 남아 있어 동료들과 자주 찾는다"며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들으며 술 한잔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 동선을 이용하다 잠시만 지상으로 나오면 되기 때문에 장마철에도 부담 없이 찾게 된다"고 덧붙였다.

 

▲ 을지로입구역 1번 출구에서 나오면 볼 수 있는 '다동·무교 음식문화의 거리' 모습. ⓒ르데스크

  

을지로스타몰 3구역 2번 출구를 이용하면 세운상가군 가운데 하나인 대림상가와도 바로 연결된다. 지하보도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곧바로 상가 내부로 진입할 수 있어 비를 거의 맞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

 

과거 전자부품과 산업용 자재를 판매하던 대림상가는 최근 감각적인 카페와 수제맥주 펍이 들어서며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3층 공중보행로를 이용하면 세운상가와 인현상가까지 이어져 방문객들은 실내 동선을 따라 다양한 공간을 둘러보는 모습이다. 특히 세운상가에는 필름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를 비교적 저렴하게 판매하는 점포들이 모여 있어 카메라를 찾는 청년층의 발길도 이어졌다.

 

호주식 커피 전문점 관계자는 "평일보다는 주말 방문객이 훨씬 많다"며 "평일에는 직장인들이, 주말에는 세운상가와 카페를 함께 둘러보려는 20·30대 방문객들이 대부분이다"고 말했다. 이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지하상가와 바로 연결돼 있어 비 오는 날에는 실내 동선을 따라 이동하는 손님들이 더 오래 머무르는 편이다"고 설명했다.

 

을지로4가역 2번 출구 인근 중부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전통시장 한가운데 자리한 무국적 주점이 눈에 띄었다. 좁은 골목 끝 작은 네온 간판만 달린 이곳은 자칫 지나치기 쉽지만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이미 젊은 층 사이에서는 유명한 맛집으로 자리 잡았다.

 

▲ 중부시장 가운데 자리한 무국적 주점의 모습. ⓒ르데스크

  

길을 찾고 있자 시장 상인들은 "혹시 그 식당 찾으세요?"라며 먼저 말을 건네 위치를 안내했다. 복잡한 시장 골목에서도 많은 방문객이 찾는 장소라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대표 메뉴는 감바스를 먹고 남은 올리브오일에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 '감바스밥'과 냄비두부조림이었다. 내부는 테이블이 4개뿐이라 예약 없이는 이용이 쉽지 않았다.

 

양종원 씨(35·남)는 "시장 안쪽 골목이라 처음 오는 사람은 찾기 어렵지만 그런 분위기 자체가 이곳의 매력이다"며 "조용한 골목에서 식사와 술을 함께 즐길 수 있어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곳이다"고 말했다.

 

서울아랫길의 동쪽 끝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 도착하면 즐길 거리는 더욱 다양해진다. 역과 연결된 DDP에서는 전시를 관람할 수 있고, 동대문부자재상가에서는 최근 유행하는 젤리슈즈 꾸미기 장식과 액세서리 부자재를 판매하고 있다. 조금 더 이동하면 창신동 완구거리까지 이어져 쇼핑과 전시, 취미 소비를 한 번에 즐기는 방문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지하상가 안에도 특색 있는 상권이 형성돼 있다. 12번 출구 방향에는 스포츠용품점들이 길게 이어졌고, 최근 프로야구 인기에 힘입어 중고 유니폼을 찾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일부 매장에서는 은퇴 선수나 과거 인기 선수의 이름을 새겨주는 마킹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진희 씨(28·여)는 "부자재를 사러 자주 왔지만 이렇게 서울시청까지 이어지는 지하 보행망이 있는 줄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비 오는 날에는 실내에서 계속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에는 이 길을 따라 걸으며 중간중간 카페와 맛집도 함께 둘러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맛집·카페·전시까지…장마철 '하루 코스' 된 서울아랫길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코스에서 볼 수 있는 유니폼의 모습. ⓒ르데스크

  

서울아랫길과 연결된 상권의 인기는 SNS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스타그램 기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관련 게시물은 약 1만1000건, #세운상가는 8만7000건, #중부시장은 3만5000건, #을지로입구는 4만3000건, #시청은 37만4000건에 달한다. 최근 다시 도심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명동 관련 게시물도 109만 건을 넘어섰다.

 

게시물 상당수는 특정 맛집 한 곳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함께 둘러보고, 중부시장에서 식사한 뒤 을지로 카페를 방문하는 등 여러 공간을 하나의 코스로 묶은 '동선형 콘텐츠'가 주를 이뤘다. 지하철역과 지하상가, 골목상권이 촘촘히 연결된 특성 덕분에 방문객들은 하나의 공간보다 여러 장소를 연계해 소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마철 실내 나들이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실내데이트 관련 게시물은 약 45만1000건, #장마데이트도 1000건 이상 등록돼 있었다. 비를 피해 실내에서 시간을 보내려는 수요가 증가하면서 서울아랫길은 식사와 카페, 쇼핑, 전시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도심형 실내 동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 서울아랫길과 연결된 지역의 SNS 해시태그 현황.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특히 20·30세대는 SNS에서 본 장소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코스로 재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식사를 한 뒤 을지로3가 카페를 방문하고, 세운상가와 DDP를 차례로 둘러보는 식이다. 하나의 보행망 안에서 다양한 상권이 이어지다 보니 날씨 영향을 덜 받으면서도 취향에 따라 소비 동선을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끄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러한 변화는 지하상권의 소비 방식도 바꾸고 있다. 과거 비를 피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던 공간이었던 지하상가가 이제는 맛집과 카페, 쇼핑과 전시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찾는 목적지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 실내 동선을 따라 방문객들의 체류 시간이 늘어나면서 서울아랫길과 연결된 을지로·세운상가·중부시장·동대문 일대 상권에도 소비가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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