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폭동’으로, 수업 시간에 ‘탱크 데이 화이팅’을 외칩니다”
“제주도 수학여행 중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학생들이 ‘멸공’이라고 외치고 다녀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가 ‘계엄령 하고 싶어서’, ‘왜 중국인이 투표권 있냐’, ‘왜 중국인이 공무원 할 수 있냐’와 같은 가짜 뉴스를 말하고 다닙니다”
교사들이 직접 목격하거나 전해 들은 학생들의 ‘혐오 표현’이다.
|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했다는 교사가 10명 중 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7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109명을 대상으로 한 ‘혐오·역사 왜곡 표현 인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와의 경기 도중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응원 구호를 외친 사건을 계기로 실시한 설문 조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최근 1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의 혐오·차별·역사 왜곡 표현을 접한 교사는 전체 응답자의 89.3%에 달했다. 직접 목격 73.9%, 전해 들은 경우는 15.4%였다.
학교급별로는 중학교 교사의 경험률이 92.7%로 초등학교(87.4%)와 고등학교(86.4%)보다 높았다.
교사가 혐오 표현을 한 학생을 직접 목격한 비율 역시 중학교(81.7%)가 초등학교(68.4%)·고등학교(68.5%)에 비해 높았다.
혐오 표현의 유형을 보면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 조롱’이 88.9%로 가장 많았다. 그중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용어가 가장 많이 언급됐다고 전교조는 밝혔다.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혐오와 차별’(86.8%), ‘세대·직업·계층 비하’(81.8%), ‘역사적 사건 왜곡·희화화’(80.5%) 등이 뒤를 이었다.
학생의 혐오 표현을 들어봤다는 교사 77.3%는 ‘쉬는 시간 등 학생 간 대화’에서 이런 표현을 접했다.
‘수업 중 발언’도 52.6%나 됐는데, 중학교는 이 비율이 62.3%로 초등학교(41.0%)·고등학교(49.7%)보다 높았다.
중학생의 혐오 표현 사용 빈도도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교사 67.1%가 ‘정치인 또는 역사적 인물의 죽음·비극을 조롱하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자주’ 접했다고 답했다. 초등학교(52.3%)와 고등학교(51.6%)보다 확연히 높은 비율이다.
교사들은 이번 배재고 사태를 일부 학생의 비행이 아닌 청소년 사이에 퍼진 ‘혐오의 놀이화’가 낳은 구조적 문제로 인식했다.
‘특정 학생들만의 우발적 일탈로 보기 어렵고, 온라인 혐오 문화 확산과 연결해 봐야 한다’(88.4%)는 응답이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개별 사건에 가깝다’(7.5%)는 응답보다 10배 넘게 많았다.
배재고 사태의 원인으로는 ‘온라인 혐오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의 확산’(94.0%)을 가장 많이 지목했고 ‘정치권·언론의 혐오와 조롱의 언어’(74.4%),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와 민원 부담으로 인한 쟁점 교육 위축’(62.0%) 순이었다.
앞으로 마련돼야 할 대책으로는 ‘학교생활규정에 혐오표현 금지와 교육적 조치 근거 명시’(55.8%), ‘플랫폼의 혐오·극단주의 콘텐츠 추천 책임 강화’(49.9%), ‘교육부 차원의 혐오표현 대응 매뉴얼 및 표준 지도안 보급’(41.8%), ‘혐오 표현 대응 교사에 대한 법률지원 및 민원 대응 체계 마련’(40.6%) 등을 꼽았다.
다만 교사들은 혐오 표현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정치적 중립 위반으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점’(69.9%)과 ‘학부모 민원이나 외부 공격 우려’(60.1%)로 학생들을 지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학교에 대응 매뉴얼이 있어 숙지하고 있다는 교사는 2.1%뿐이었고 ‘없다’(54.0%)거나 ‘잘 모르겠다’(35.5%)는 교사가 대다수였다.
전교조는 전국 초6∼고3 1636명을 대상으로도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가운데 배재고 사태에 대해 알고 있다는 학생 80.6%는 ‘다른 사람이나 지역, 역사적 아픔을 조롱하는 표현이라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청소년들은 온라인을 통해 다양한 혐오 표현을 보거나 들었다고 했다.
가장 높은 노출률을 보인 콘텐츠는 ‘외모·성적·가정환경·지역·말투 조롱’(53.5%)과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죽음·비극 조롱’(51.2%)이었다.
플랫폼 가운데 유튜브로 해당 콘텐츠를 접했다는 사람이 53.1%였고 이어 인스타그램(51.6%), 틱톡(33.6%), 학교 친구들과의 대화(19.9%)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친구들이 혐오 표현을 사용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는 물음에는 ‘불편하지만 그냥 넘어간다’(43.4%)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혐오 표현을 들어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친구들이 예민하다고 할까 봐’(35.9%), ‘별일 아닌 걸로 보일까 봐’(32.3%)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교육을 언급했다.
‘학교에서 혐오 표현과 역사왜곡 문제를 제대로 배우는 것(55.3%), ’실제 사례를 놓고 왜 문제가 되는지 생각해 보는 수업‘(42.9%) 등이다.
배재고 사태 같은 일의 재발을 막는 방법으로도 ’왜 문제가 되는 표현인지 알려주는 교육‘(40.8%)을 가장 많이 꼽았다.
전교조는 “이번 조사 결과는 청소년들이 혐오·조롱·역사 왜곡 표현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단순한 진단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면서 “많은 학생은 이미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있으며, 사회와 학교가 이를 더 명확하게 설명하고 함께 다루어 주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