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노규민 기자]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60대 중반인데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어요. 촬영장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제작진을 보면 감동적이죠. 누가 등 떠밀어 나온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자신이 좋아서 나온 건데 생고생을 하고 있어요. 그들을 보면 '살아있음'이 느껴집니다. 근로기준법이 바뀌었어도 예나 지금이나 힘든 건 똑같아요. 힘든건 힘든 거고, 나나 그들이나 신이 나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최민식을 만났다. 넷플릭스 화제작 '맨 끝줄 소년'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맨 끝줄 소년'은 실패한 작가이자 국문학과 교수인 '허문오'가 강의실 맨 끝줄 소년 '이강'(최현욱)의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의 글에 집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서스펜스 드라마다.
극 중 최민식은 오랜 시간 열등감과 패배감을 품고 살아온 국문학과 교수 '허문오'로 분해 인물의 위태로운 심리를 디테일한 연기력으로 담아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이날 최민식은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과 관련해 "사실 별기대 안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에 익숙한 젊은 층이 많이 소비하지 않겠나 싶었는데, 의외로 진지하게 작품의 주제 의식에 공감하고 비판하고 토론하더라"라며 "정육점에 고기 덩어리 걸어 놓듯이 허문오와 이강이라는 놈을 벗겨놓고, 굴절된 욕망에 사로잡힌 모습을 보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는 우리의 의도가 통한 것 같아서 좋다"고 밝혔다.
이어 최민식은 "비록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소설 한 편이 전부지만 '허문오'는 분명 작가가 맞다. 동시에 국문학 교수로 일하는 지식인인데 근본적으로 갖춰야할 덕목을 벗어나 출세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나 싶다. 그것이 비극의 단초였다"라며 "작가나 배우나 결과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에 휘둘리면 안 된다. 내면이 단단하다면 넘길 수도 있을 텐데 그는 함몰되고 말았다"고 설명했다.
또 최민식은 '허문오'가 친구인 이수훈(허준호)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과 관련해 이야기 하다 "나는 열등감 보다 스스로 한계에 부딪혀서 괴로웠던 적이 수도 없이 많다. 한계를 깨고 나아가서 '업데이트' 해야 하는 것이 배우를 비롯한 창작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글도, 음악도, 그림도 다 마찬가지다. 그건 숙명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업데이트'에 대한 강박은 없다. 작가가 쓰는 대본 속 세상이 모두 다르지 않나. '파묘' 김상덕이 있는 곳과 '맨 끝줄 소년'의 허문오가 존재하는 곳, 둘 다 허구지만 살아가는 모습이 같지 않다. 배우는 그것에 충실하면 된다. 이번에 지지리도 못난 역할을 했으니, 다음엔 007 제임스본드 같은 멋있는 역할을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민식은 "나 또한 나가떨어질 때도 많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함몰되면 그걸로 끝이다. 창착하는 사람들에겐 항상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최민식은 "나는 남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는 일은 별로 없고, 낙천적인 편이다. 다만 스스로에게 속상한 적이 많다. '왜 저렇게 표현했지'라며 자책한다"라며 "그럴 땐 술을 왕창 먹고 잔다. 자고 일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헤헤 거린다. 끙끙 앓고, 오래 가지고 가지는 않는다"라며 웃었다.
'맨 끝줄 소년'은 후반부 이강의 진짜 속내와 함께 반전을 안긴다. 이에 대해 최민식은 "어릴 때 들었던 이야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비현실적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이강과)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아직까지 가슴 속에 남아있다"라며 "폐결핵을 앓아서 죽을 뻔 했다. 당시 결핵이라는 것은 굉장히 큰 병이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내 눈 앞에서 '가망 없다'고 말 하셨다"고 떠올렸다.
최민식은 "그 말에 어머니께서 '당신이 의사냐' '아이 앞에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며 화를 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라며 "그 날의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다. 나는 비록 '이강'처럼 그렇게 할 수 없지만, 너무 아팠던 기억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민식은 "배우가 허구의 세계를 맞닥뜨렸을 때 개연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촘촘하게 따져 보겠지만 세상에 이해 못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악마를 보았다'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나"라며 미소 지었다.
최민식은 '원작'을 보지 않고 '허문오'를 그렸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미리 보고 나면 연기나 모든 면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독창적으로 인물을 그리려고 했을 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대사 한마디 한마디를 악보라고 생각하며 봤다. 감독님 지휘를 믿었다. 글이 좋고, 연출자의 디테일한 연출이 있으면 배우들은 편안해 진다. 악보에 따라 정확하게 연주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계속해서 최민식은 데뷔한 지 7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자신과 불꽃같은 시너지를 완성한 20대의 어린 후배 최현욱을 칭찬했다. 그는 "정말 잘했다. (연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저 나이에 저렇게 했나 싶더라"라며 "극과 인물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기 있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최현욱은 그렇게 했다. 의외로 모르고 하는 친구들도 많다"고 밝혔다.
이어 "극 중에서 '허문호'가 '이강'을 향해 "너 김세윤 부럽지? 세윤이가 되고 싶지"라고 물을 때 '교수님도 아세요 그런 마음?'이라고 되묻는 장면이 있지 않나. 허문호가 세윤 아빠, 엄마와 어떤 관계인지 이미 알고 찔러 본 대사다. 그때 연기를 보라. 심리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르게 표현 된다.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고 말했다.
또 최민식은 "그래서 든든하고 예쁘다. 오래 가면 좋겠다"라며 "다른 작품도 이렇게 성실하게 잘해서 배우로서 계속 성장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잘 했다고 칠렐레팔렐레 하지 말고"라며 웃었다.
최민식은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1981년 연극 '우리 읍내'로 데뷔해 45년 동안 무대와 TV 드라마를 거쳐 영화계를 장악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배우'로 칭한다. 최민식은 "과대평가 됐다. 나는 스스로 냉정 하려고 노력 한다. 다른 사람들 기준에 나를 맞추면 '허문오'처럼 된다. 인정받는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허세'를 덜어내려고 한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이기적인 작업을 하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연기는 내 인생의 '의미'를 위해 하는 일이다. 비록 극은 허구지만, 이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싶어서 하는 거다. 그것을 통해 행복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최민식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연기를 시작 했는데 여전히 작업할 때 제일 행복하다. 나는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이제는 좋고 싫고를 따질 시기가 아니다. 부부 관계로 치면 싸움을 많이 했고, 갈등도 많았지만 이혼을 안 한 것과 같다"며 웃었다.
또 그는 "노익장 아니다. 난 아직 쌩쌩하다. 아직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했다.
최민식은 올해 박해일과 호흡을 맞춘 영화 '행복의 나라로'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영화는 2019년 촬영을 마쳤고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 됐으나, 코로나 탓에 정상 개봉되지 못했다.
뉴스컬처 노규민 pressgm@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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