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 칼럼] 이야기 소묘⑧ 강물 바닷물Ⅰ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응 작가] 지난 글은 부산 을숙도대교 아래의 기묘한 경계 지점에서 시작했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그곳에는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기수의 영역이 존재하며, 경계는 흐르고 섞이는데 이름은 그것을 마치 처음부터 나뉘어 있었던 것처럼 가른다는 이야기였다. 나아가 단어의 의미란 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지 않고 다른 단어들에 기대어 연쇄될 뿐이며, 안다는 것은 고정된 의미를 완전히 붙잡은 상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 맥락 안에서 의미가 충분히 겹쳐진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강물과 바닷물이라는 두 단어를 재료로 삼아 언어의 경계와 상호의존성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작업을 이야기하려 한다. 이 작업은 2021년 개인전 ‘완벽한 오해’에서 선보인 ‘강물바닷물’이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경계가 흐릿해진 자리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낚아채듯 읽어내는지 설치를 통해 눈앞에 펼쳐 보이는 작업이다.
‘강물바닷물’
전시장에 들어서면 두 개의 퍼즐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하나는 ‘강물’, 다른 하나는 ‘바닷물’이라는 글자를 이룬 퍼즐이다. 얼핏 보면 완성된 퍼즐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무언가 어긋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작가는 두 퍼즐을 만들면서 조각들을 다르게 처리했는데, ‘강물’ 조각에는 색을 입히듯 칠했고, ‘바닷물’ 조각은 종이의 결을 뜯어내 질감을 달리했다.
그리고 완성된 퍼즐에서 두 단어의 일부 조각들을 의도적으로 뒤섞어 재배치했다. 강물 자리에 바닷물 조각이 끼어 있고, 바닷물 자리에 강물 조각이 들어와 있다. 색과 질감이 달라 조각들이 섞여 있다는 것은 보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강물'과 '바닷물'이라는 글자를 어렴풋이 그러나 또렷이 읽어낸다.
형태가 일부 깨져 있거나 자리를 벗어나 있어도 우리는 그것을 곧바로 낯선 파편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문자 안에서 남아 있는 윤곽과 단어의 익숙함을 바탕으로 빠진 부분을 메우며 읽기를 지속한다.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글자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충분히’라는 감각이다. 지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안다는 것은 고정된 의미를 완전히 붙잡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맥락 안에서 의미가 잠시 충분히 겹쳐지는 상태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강물바닷물’에서 조각들이 제자리를 벗어나 있고,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이 한 단어 안에 섞여 있지만, 관람자는 그 어긋남 사이에서 글자를 읽어낼 만큼의 관계를 발견한다. 강물의 조각과 바닷물의 조각이 서로의 자리로 넘어가면서 글자의 순수성은 깨지지만, 글자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단어의 의미를 단단히 고정한 채 주고받는 것이 아닌, 서로 다른 기억과 감각, 맥락을 지닌 채 조금씩 어긋난 말들을 건넨다. 그럼에도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은 의미가 완벽하게 일치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조각들이 어느 정도 겹쳐지는 순간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수(갯물)가 강물도 바닷물도 아닌 채로 그 사이를 흐르듯, 소통 또한 이해와 오해 사이 어딘가에서 이루어진다. ‘강물바닷물’은 바로 그 사이의 상태를 보여주며, 섞이고 어긋난 조각 앞에서도 끝내 읽어 나갈 수 있음을 본다. 어쩌면 그것이 언어가 작동하는 방식이고, 우리가 서로에게 닿으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언제나 어긋남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이해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완전한 이해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완전한 단절로도 흘러가지 않으며 서로의 사이에서 잠시 같은 의미를 만들어 내며 흐른다.
그러나 이 ‘충분히 읽힌다’는 감각은 다른 가능성도 함께 품고 있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이 곧 이해를 뜻하지 않기에 내가 이해하려는 타자는 결코 완전히 해석되어 내 안으로 들어오는 대상이 아니다. 타자는 언제나 내 이해 바깥에 남는 부분이 있고, 언어는 그 바깥까지 모두 닿지 못한 채로도 관계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언어는 우리를 서로에게 가까이 데려가지만, 그 가까움이 완전한 도착은 아니라는 사실을 끝내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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