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중 더봄] 후회에도 손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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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중 더봄] 후회에도 손절이 필요하다

여성경제신문 2026-07-07 10:00:00 신고

세종시에 부동산 붐이 일던 때 형은 영혼까지 끌어모아 상가에 투자했다. 몇 년 앞으로 다가온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려는 과감한 시도였다. 그러나 상가는 쏟아지듯 공급됐고, 들어올 거라 믿었던 수요는 오지 않았다. 형은 그 일로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힘겹다.

가끔 통화를 하면 형은 거의 예외 없이 그날로 돌아간다.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가 결국 나는 말한다. "형,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잖아." 형은 "맞아, 그렇지" 하고 동의한다. 그런데 다음에 만나면 형은 또 그 이야기를 꺼낸다. 동의는 머리에서만 일어나고, 마음은 한 발짝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것이다.

최근 주식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시장이 크게 오르는 동안에도 적지 않은 개인 투자자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다. 시장 전체는 솟구쳤는데 내 계좌만 깨져 있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지나간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나는 후회하지 않아"라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원망과 분노와 씁쓸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 실수와 실패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정직하게 마주해 볼 필요가 있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과거의 실패에 묶이지 않으려면

데일 카네기는 <자기관리론> 10장과 11장에 걸쳐서 후회의 문제를 다룬다. 먼저 실수와 실패가 계속해서 현재를 갉아먹지 않도록 과감히 손실 정지 명령을 내리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과거는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톱밥을 켜지 말라고 조언한다. 톱으로 한 번 켠 나무는 톱밥이 된다. 그 톱밥을 다시 톱질해 봐야 톱밥은 톱밥일 뿐, 통나무로 되돌릴 수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을 곱씹는 것은 톱밥을 다시 켜려는 헛수고라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실패가 계속해서 우리를 흔들지 못하도록 어떻게 손실 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새김에서 오는 감정의 아픔을 조절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그 원리와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실수를 한다. 실수의 결과는 고통스럽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을 탓하며 곱씹는 일이다. 작은 일이라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만, 아플수록 그게 쉽지 않다.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괴로운 굴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만 생각하라,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로 묻어두라는 조언은, 머리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막상 삶에 쓰기는 어렵다.

왜 그럴까. 소용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은 왜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할까. 심리학은 이 얽매임에 이름을 붙였다. 매몰비용 오류다. 이미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 손해가 뻔한 선택을 계속 이어가는 경향을 말한다. 아크스·블루머가 1985년 연구에서 정리한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손실이 난 주식을 팔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투자자를 떠올려 보자. 지금 팔면 손실이 숫자로 굳어진다. 그 굳어지는 순간이 두려워, 이미 내려앉은 종목에 남은 시간과 희망을 계속 붓는다. '조금만 더 버티면 회복될 거야'라고. 얼핏 신중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잃은 것을 아까워하느라 앞으로 잃을 것을 못 보는 판단이다.

이 함정은 개인의 계좌에만 있지 않다. 조직에서는 더 큰 규모로 나타난다. 이미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쏟은 프로젝트가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도, 여기서 접으면 그동안 들인 것이 다 헛것이 된다는 생각에 오히려 자원을 더 밀어 넣는 것이다.

경영학은 이를 '몰입 상승(escalation of commitment)'이라 부른다. 접는 결정이 늦어질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실패한 투자든 성과 없는 사업이든, 무엇을 더 붓느냐가 아니라 언제 멈추느냐가 승부를 가른다.

핵심은, 매몰비용이 돈에만 쓰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이미 치른 것, 즉 쏟은 시간·들인 노력·걸었던 자존심과 꿈이 클수록 그것을 '없던 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받아들이는 순간이 곧 손실을 완성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은 그 인정을 자꾸 뒤로 미룬다.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을 반복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끝난 일에 오늘의 감정까지 계속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아프더라도 제대로 멈추는 법

카네기가 빌려온 '손실 정지 명령'이라는 말도 원래 시장의 언어다. 주가가 정해둔 선까지 떨어지면 자동으로 팔리도록 미리 걸어두는 주문이다. 핵심은 '미리'에 있다. 손실의 한복판에 서면 판단이 흐려진다. 아까움과 두려움이 이성을 이긴다. 그래서 아직 냉정할 수 있을 때, 고통이 닥치기 전에 한도를 정해 둔다. "여기까지"라고.

다만 여기에는 서두르면 안 되는 지점이 있다. 아픔이 싫어서 대충 덮어버린 감정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그러니 손실 정지 명령을 내리기 전에, 아프더라도 충분히 정직하게 돌아보는 시간이 먼저다. 무엇을 잘못 보았는지, 여기서 건질 교훈은 무엇인지 짚어봐야 한다.

어디까지가 충분한 돌아봄인지 객관적인 잣대는 없다. 다만 스스로는 안다. 더 파낼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온다. 바로 거기서 명령을 내린다. "여기까지. 이제 그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머리로는 분명 "여기까지"라고 선언했는데, 마음은 다음 날 또 같은 자리에 가 있다. 명령은 왜 지켜지지 않을까.

여기서 카네기의 두 번째 조언, 톱밥 이야기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그 조언을 뒷받침하는 심리 기제가 하나 있다. '사후 확신 치우침'이다. 심리학자 피시호프가 1975년 연구에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어떤 일의 결과를 알고 난 뒤에는 "그렇게 될 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느끼는 착각을 말한다.

상가가 공급 과잉에 빠질 것을, 그 종목이 무너질 것을, 당시에는 지금처럼 또렷이 알 수 없었다. 수많은 신호와 소음이 뒤섞여 있었고, 반대 방향의 근거도 그때는 그럴듯했다. 그런데 결과를 알아버린 지금 돌아보면, 그 신호들만 유독 뚜렷하게 도드라져 보인다. 마치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이 착시가 위험한 이유가 있다. 곱씹기가 뽑아내는 '교훈'이 대개 이 치우침 위에 세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어리석었다. 알 수 있었는데 놓쳤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지금의 앎으로 과거의 나를 심판한 스스로를 탓함에 가깝다. 우리가 톱밥을 다시 켜서 되돌리려는 그 통나무, 즉 '미리 알았던 나'는 애초에 있던 적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톱질을 반복해도 톱밥은 그저 톱밥으로 남는다.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챗GPT

스스로에게 건네는 따뜻한 명령

여기서 돌아봄과 되새김이 갈린다. 돌아봄은 실제로 있었던 사실에서 배울 것을 건져 올린 뒤 멈춘다. 끝이 있다. 반면 되새김은 있던 적 없는 통나무를 찾아 톱밥을 계속 헤집는다. 건질 것이 없으니 끝도 없다. 겉보기엔 둘 다 '지난 일을 생각하는' 모습이지만, 하나는 우리를 앞으로 데려가고 하나는 제자리를 맴돌게 한다.

문제는 그 순간에 둘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나 신호는 의외로 단순하다. 같은 생각이 새로운 결론 없이 되풀이되기 시작하면, 그것은 이미 돌아봄이 아니라 되새김이다. 새로 건지는 것 없이 같은 자리를 도는 느낌, 그것이 톱질을 멈춰야 한다는 표시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법은 뜻밖에 단순하다. 첫째, 한 번은 정직하게, 충분히 돌아본다. 아픔을 피하지 말고, 이번 일에서 배울 것을 마음속으로든 종이 위에든 정리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둘째, 더 건질 것이 없다고 느껴지면, 스스로에게 손실 정지 명령을 내린다. "여기까지." 그리고 파일을 닫듯 그 일을 닫는다.

셋째, 그럼에도 마음이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때, 스스로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감정은 무 자르듯 정리되지 않으므로 반드시 그렇게 된다. '아, 지금 나는 톱밥을 켜고 있구나.' 신기하게도, 그 깨달음만으로 톱질을 멈출 작은 틈이 생긴다. 스스로 탓함이 "넌 알 수 있었잖아" 하고 속삭이거든, 그것이 사후 확신 치우침의 목소리임을 기억하면 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아는 것을 알지 못했다.

물론 스스로 긋는 이 한 줄이 모든 상처에 듣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실패는 너무 깊어서, 혼자만의 다짐으로는 그 자리를 떠나기 어렵다. 그럴 땐 믿을 만한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도 또 하나의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크든 작든, 시작은 언제나 '여기까지'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데 있다.

이미 엎지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오래된 말이다. 그런데 우리를 오래 붙드는 것은 어쩌면 엎질러진 물 자체가 아니라, '엎지르지 않을 수도 있었던 나'라는 환상인지도 모른다. 그런 나는 없었다.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손실 정지 명령이다. 손실 정지 명령은 손실을 없던 일로 되돌리는 마술이 아니다. 다만 이미 끝난 일이 오늘과 내일까지 갉아먹지 못하도록 긋는 한 줄의 선이다. 그 선을 긋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그다음을 살 수 있다.

매몰비용 오류= 이미 돈이나 시간, 노력 등을 써버려 되돌릴 수 없는 상태임에도, 그동안 들인 것이 아까워 계속해서 손해를 보는 결정을 내리는 심리 상태를 뜻합니다.
사후 확신 치우침(편향)= 어떤 일이 일어난 뒤에 결과를 알고 나면, 마치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느끼는 심리적 착각을 말합니다.

여성경제신문 김승중 심리학 박사·마음의 레버리지 저자
spreadksj@gmail.com

김승중 심리학 박사 / 리더십 코치

광운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양대학교에서 경영학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GS건설 재무팀을 거쳐 데일카네기코리아에서 17년간 교육컨설팅본부장으로 근무하며 삼성, 현대, LG, SK 등 주요 대기업의 리더십 개발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했다. 국제 공인 마스터 트레이너로서 수백명의 강사를 양성한 전문가다. 현재는 리더십·코칭 전문 컨설팅 회사 TGW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원과 핵심 리더들이 아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변화가 조직 전체로 확산하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인생의 내공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 <마음의 레버리지> 가 있으며, 월간마음건강 고정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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