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 프로젝트'라는 피지컬AI, 한국 노동운동은 왜 침묵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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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메가 프로젝트'라는 피지컬AI, 한국 노동운동은 왜 침묵하는가

프레시안 2026-07-07 08:39:4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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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정부는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반도체', 'AI로봇 등 피지컬AI', 'AI데이터센터'를 3대 분야로 설정하고 정부가 각 분야마다 대규모 투자 동원과 인프라 확충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각국이 너도 나도 국가 주도 산업정책을 밀어붙이는 형국인데, 이재명 정부도 이 큰 흐름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아니, 미국·중국에 휩쓸리지 않는 '소버린 AI'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내걸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 야심찬 산업정책 드라이브라 할 만하다.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나서 지금까지 공론장은 온통 이 '3대 메가프로젝트'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나 미래 경제에 미칠 심대한 영향의 측면에서 과연 그럴만도 하다. 지금 당장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십 년 동안 계속 논쟁을 벌이고 점검, 평가해야 할 사안이다.

일단 지난 한 주일 동안 사람들의 입에 주로 오르내린 주제는, 서남권(호남)을 반도체 생산의 '제2의 거점'으로 지정한 정책적 선택이 과연 현실적이거나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것만큼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국민경제 전체가 반도체 산업에 이렇게까지 의존해도 되는가, 혹은 AI데이터센터의 과도한 구축이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오히려 재앙을 낳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모두 중대한 쟁점들이다. 그런데 이 쟁점들만큼이나 중요한데도 별다른 무게 있는 질문이나 반론이 나오지 않은 주제가 한 가지 있다. 바로 '피지컬AI'다.

생산과 서비스 현장의 데이터를 AI-로봇에게 학습시켜 생산성의 수직 상승을 이뤄내겠다는 피지컬AI는 AI 개발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에서도 노동의 미래와 가장 직결된다. 그런데도 양대 노총과 주요 산업별노동조합 모두, 적어도 아직까지는 정부의 피지컬AI 육성 계획에 관해 본격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도체산업과 AI데이터센터 등이 지역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둘러싼 일부 지역 노동조합의 개입은 있어도, 피지컬AI에 대한 가타부타는 없다. 너무도 의아한 침묵이 아닐 수 없다.

혹시 한국의 노동운동은 피지컬AI 개발이 대다수 노동자를 생산 현장에서 쫓아내는 식의 자동화로 이어지는 결말을 피할 수 없다는 숙명론에 이미 무릎을 꿇은 것인가? 마치 지난 20여 년간 비정규직 증가를 강 건너 불 보듯 했던 것처럼, 무인공장의 미래는 다음 세대의 일일 뿐이며 우리 노동조합은 일단 현재의 임금, 일자리만 지키면 된다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는 없다. 도대체 노동의 입장과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성과 공유 이전에 기술 개발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중요하다

한국 정부가 '3대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6월 18일)에 미국에서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미국 AI 국부펀드법(American AI Sovereign Wealth Fund Act)'을 제출했다. 미국 국민이 AI 개발을 통제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공적 기금을 설립하자는 법안이다. 이 제안은 상원 내 유일한 '민주사회주의자' 의원의 외로운 목소리에 그치지 않고, 미국과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역사상 가장 야심찬 '사회주의적' 제안 중 하나에 대한 반응 치고는 일단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제안의 골자는 이렇다. AI 관련 총수입이 연간 2억 달러가 넘는 기업이 전체 지분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식을 일회성 세금으로 납부하게 한다. 이 주식은 신설되는 AI 국부펀드에 적립되고, 이 펀드는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한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민주적 AI 위원회'가 관리한다.

샌더스 의원의 추산에 따르면, 출발 시점에 기금이 소유할 주식의 총평가금액은 7조 달러이며, 매년 그 중 5%를 미국 시민에게 직접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매년 1인당 1000달러(약 153만 원)를 기본소득으로 받는 것이다. 또한 '민주적 AI 위원회'는 기금이 보유한 각 기업의 지분을 바탕으로 경영 상의 결정에 개입하며, 특히 일자리를 줄이는 방향의 기술 개발과 적용을 막는 데 이 권한을 활용한다.

이 제안이 소개되자 국내에서는 AI 발전에 따른 성과의 사회적 공유라는 측면이 크게 부각됐다. AI 개발로 돈을 쓸어담는 빅테크의 수익이 몇몇 '슈퍼 리치'의 창고에만 쌓이는 게 아니라 온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돌아간다니, 참으로 귀가 번쩍 뜨이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샌더스의 제안이 나오기 얼마 전에 한국 사회는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거둔 막대한 수익을 누구에게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를 놓고 첨예한 논쟁을 시작한 터였다. 그러니 샌더스의 AI 국부펀드 구상에서 그 성과 공유 측면에 더욱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샌더스 제안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과 공유보다도 오히려 AI 개발에 대한 사회적 통제라는 발상이다. AI 개발 기업들에 대한 국부펀드의 지배력을 통해 기술 개발의 전반적 방향을 민주적으로 제어하자는 내용 말이다.

이런 발상의 밑바탕에는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애쓰모글루, 사이먼 존슨 등이 최근 <권력과 진보: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2023) 같은 저작을 통해 열정적으로 주창하는 비판적 기술관이 깔려 있다.

애쓰모글루 등은 무엇보다도, 범용인공지능(AGI) 등을 개발함으로써 이른바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을 달성하는 것이 인류의 숙명이라는 실리콘밸리의 서사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런 식의 '필연적 기술 발전' 서사는 인류 역사 내내 그런 발전으로 직접적 이익을 얻는 소수 계급-계층이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설득하기 위해 구사해온 '전략'이다.

특정한 기술 발전 방향에 의해 이익을 얻기는커녕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집단들이 이런 서사를 진리로 받아들일수록 이 서사가 예고하는 승리와 패배는 더욱 확실하게 실현되고 만다. 그렇기에 노동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런 서사에 대한 단호한 거부다.

기술 발전의 결론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항상 사회 집단들 간의 논쟁과 투쟁, 타협에 열려 있다.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기술 발전 방향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하는 집단일수록 이 진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각성에 따라 현재 진행되는 기술 개발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에 충실하도록 기술 개발 과정의 모든 단계마다, 즉 방향 설정, 투자 결정, 기본 설계 등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빅테크 전도사들이 반복하는 단일한 서사 속에서 제 자리를 찾으려 하지 말고, 우리의 서사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특정한 AI 개발 방향이 사회에 이롭지 못할 경우에 국부펀드의 지배 지분을 통해 비토권을 행사하자는 샌더스 제안의 내용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샌더스의 AI 국부펀드는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AI 개발 수익의 배당금으로 기존 노동소득을 대신하자는 발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전선에서 인간은 '패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므로 '배상금'을 받아낼 창구 하나쯤 열어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패배'가 실제로 닥치기 전에 그것을 방지할 가장 강력한 장치를 시급히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노동을 비롯한 사회 전체가 시의적절하게 개입할 통로 말이다.

한국의 노동 세력도 피지컬AI 개발을 이런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피지컬AI란 결국 노동자가 여러 세대 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 암묵적 노하우, 즉 숙련을 철저히 추출해 자본이 직접적으로 통제하고 독점할 수 있는 자원으로 전환하려는 기획이다.

백 보 양보해 이런 추출-독점 과정이 생산성 상승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 과정이 오직 자본의 기획대로만 전개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역사의 신에 의해 예정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과정 자체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새로운 투쟁, 협상, 타협의 장이 되어야만 한다. 노동이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그러나 '민주적 AI'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려면, 사회의 여러 집단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AI의 '비민주적' 적용에 가장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지닌 집단인 노동이 전면에 나서야만 한다. '민주적 AI' 같은 이야기를 누구보다 노동운동이 먼저 제창하고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번이 한국 노동운동이 숙련을 주제로 뭔가를 할 마지막 기회다

한국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숙련을 중심에 둔 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숙련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자율적 제도와 자주적 문화를 조직하지 못했고, 숙련을 자부심이나 인정의 기반으로 삼는 데 서툴렀으며, 숙련을 더욱 향상시킴으로써 노동자의 지위를 안정시키거나 개선하지 못했다.

늘 임금 상승이나 일자리의 안정성이 노동조합의 주된 관심사였고, 숙련이 이런 주제들과 긴밀히 연관되는데도 항상 이를 당장의 의제에서 지워버렸다. 노동운동의 이런 실패 덕분에 지식 중간계급의 시험능력주의가 한국 사회를 장악하기가 훨씬 더 쉬워졌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아무튼 이런 풍토였기에 자본이 다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수월하게 생산과 서비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직무를 자본 입장에서 편제하고 규율할 수 있었다. 이 문제야말로 자신의 영토여야 함을 조직 노동이 자각하지 못한 탓에 이는 자본의 광활한 영지가 되었다.

그래서 도달한 현실이 곧 노동자 1만명 당 로봇 1220대라는 세계 최고의 로봇 밀도다(국제로봇연맹, “2025년 세계 로봇공학” 보고서). 이는 세계 평균인 177대의 6배가 넘는 압도적 수치다. 말하자면, 미래의 피지컬AI를 논하기 전에 이미 이제껏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는 자본 주도 자동화에 굴복해온 역사였다.

실은 그래서 국가와 자본이 '3대 메가프로젝트' 중 하나로 '피지컬AI'를 꼽은 것이기도 하다. 다른 어느 자본주의 국가도 한국 정부가 내놓은 청사진만큼 자신감에 넘쳐서 피지컬AI 개발을 밀어붙일 수 없다. 어느 나라든 노동이, 적어도 한국의 노동자들보다는 훨씬 더 격렬하고 주도면밀하게 저항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계획대로 피지컬AI 분야에서 한국이 압도적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은 노동을 '대체'하고 '추방'하는 방향의 AI 기술 개발이 다름 아닌 한국 자본주의의 독특한 자본-노동 세력 균형에서 배양돼 전 세계로 확산되리라는 이야기가 된다.

예기치 않게 던져진 이 세계사적 전선에서 한국 노동운동은 이제라도 노동자의 숙련을 주제로 삼은 활동에 나서야 한다. 노동자의 숙련을 지키고, 이에 바탕을 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내며, AI와 숙련의 결합 방식에 관해 개입해야 한다.

'3대 메가프로젝트' 중에서 최소한 피지컬AI에 대해서는 노동운동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대응해야 한다. 샌더스의 AI 국부펀드 제안처럼 피지컬AI 개발에 사회가 개입할 방안을 고안해내고, 자본과 국가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압박해야 한다.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그간 숙련을 주제로 뭔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으므로, 아마도 처음에는 노동자들 사이에 산재한 직무와 숙련에 관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기존 인간 노동을 '보완'하는 AI 개발 방향을 한국 생산-서비스 현장의 구체적 조건에 맞게 제안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애쓰모글루 등은 미국 상황에 맞춰 이미 이런 방향의 연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D. Acemoglu et al. "Building pro-worker artificial intelligence", The Hamilton Project, 2026)”.

한국 노동운동이 뒤늦게라도 이런 작업에 나설 수 있도록 그간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조합이 모아둔 자원을 모두 여기에 쏟아부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늘 관성처럼 외쳐온 '총파업'이나 의제조차 불분명한 '사회적 대화' 말고 당분간은 이 작업 하나에 전력투구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고 싶다.

이런 노력이 쌓여 피지컬AI 개발과 도입에 대한 '노동의 대안'을 마련한 뒤에라야 비로소 '총파업'이 됐든 '사회적 대화'가 됐든 실질적 내용을 갖춘 투쟁과 협상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은, 적어도 아직은,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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