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보험 취지 환기한 탈모 건보 적용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여덟 시 통근길에 대머리 총각 / 오늘도 만나려나 떨리는 마음 / 시원한 대머리에 나이가 들어 / 행여나 장가갔나 근심하였죠.' 1967년 발표돼 크게 히트한 가요 '대머리 총각'의 1절 가사다. 20대였던 김상희를 정상급 가수 반열에 올린 인생곡이다. 이 노래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느냐면 북에서조차 유행할 정도였다. 특히 1968년 청와대 습격 작전에 실패한 무장 공비 김신조도 이 노래를 알고 있었다고 진술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가수의 가창력과 노래 멜로디도 좋았지만, 신선한 가사도 인기의 원동력이었다. 가사에는 한 아가씨가 아침 출근길마다 전차 안에서 마주치는 대머리 총각을 흠모하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 이 가사는 역설적이다. 현실에서 대머리인 젊은 남성에 끌리는 여성은 흔치 않아서다. 배우자감을 찾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가난한 건 용서해도 대머리는 용서 못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노래의 화자인 여성조차 '장가갔나 근심하였죠'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은 숨기지 못한다. 그러니 이 노래는 당시 탈모로 고민하던 젊은 남성에게 판타지이자 희망가로 여겨졌을 터이다.
이렇듯 젊은 남성의 탈모는 오랜 근심거리였다. 1960년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이가 한참 더 들어 보이는 것도 문제인 데다, 한창 짝을 찾을 예민한 나이에 이성이 싫어하는 포인트로 지목되니 현실적 고통일 수 있다. 따라서 탈모가 단순한 미용 문제가 아닌 질병이라는 정치권 담론은 틀린 말은 아니다. 연애, 결혼, 취업 등 사회생활에서 장애물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청년층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한 건 결국 사회적 논란을 피하지는 못했다.
가장 큰 비판은 사회복지 및 건강보험 제도의 취지와 운용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었다. 현대사회에서 복지 제도가 도입된 근본 취지는 경쟁에서 뒤처진 약자도 최소한의 안전과 생명만큼은 보장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의료 구제로 범위를 좁혀보면 건보는 크게 다쳤거나 중증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돈이 없어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장애를 입지 않아야만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합의를 바탕으로 존속하는 제도다. 아울러 건보 재정은 한정돼 있을 뿐 아니라, 준조세 성격의 건보료를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걷어 마련된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이미 건보 재정에 경고등이 들어온 지 오래됐다. 고령화 가속으로 의료 수요는 늘어만 가니 재정 고갈을 막으려면 지출 확대를 중단하거나 보험료를 올리는 방법밖엔 없다. 둘 다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곳간에 있는 한정된 재원을 최대한 슬기롭게 배분해야 하므로 암과 같은 중증 질환에 우선순위를 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 주변에선 중증 질환자, 희소성 난치 질환자들조차 건보가 적용되지 않는 약값이나 시술비를 감당 못 해 치료를 포기한다는 소식이 여전히 들린다. 이들에게 치료제의 건보 적용 여부는 실제 눈앞의 생사가 달린 절박한 일이다.
논란이 커지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일단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탈모 치료제 건보 적용을 위한 첫 사회적 논의 단계인 대국민 토론회 개최 계획을 최근 백지화한 것이다. 속도를 조절하고 나선 건 민심에 귀 기울이는 긍정적 움직임으로 평가한다. 보건의료계 안팎에선 정책 추진을 사실상 접은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민주노총 보건의료산업노조마저 재정 추계 근거 및 정책 원칙 부족과 같은 졸속 추진을 지적하며 신중론을 제기할 만큼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을 고려한 듯 보인다. 정부가 새 정책을 추진할 땐 보편성, 공정성, 합리성, 계층 간 형평성 등을 확보해야 하고 재원 마련 및 소요 계획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게 기본이다. 그렇지 못하면 정책이 좌초할 가능성이 커지는 건 물론 자칫 정부 전체에 대한 국민 신뢰가 떨어질 수 있음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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