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서하 인턴기자】6일 오전 11시께, 파주역에 내려 600번 버스에 올라탔다. 길을 헤맬 위험은 없었다. 출구도, 버스 정류장도 단 하나뿐이었다. 버스에 실려 좁고 덜컹거리는 길을 올라가자 차창 밖으로 옥수수가 담장처럼 줄지어 선 농가와 폐점한 가게만 번갈아 보였다.
정차역은 많았지만 좀처럼 내리는 사람은 없었다. 서서히 도로가 넓어지며 마을이 시야에 들어올 무렵에야 하차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텅 빈 적막한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이 한때 경기 북부 최대 성매매 집결지로 불렸던 ‘용주골’이다.
용주골은 6·25전쟁 이후 미군 주둔과 함께 형성됐다. 2022년 파주시가 성매매 집결지 폐쇄를 시정 핵심 과제로 추진하며 이곳도 오랜 역사를 뒤로한 채 문을 닫았다. 성매매를 근절하고 여성과 아이가 안심할 수 있는 동네를 만들겠다는 시의 구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엔 을씨년스러운 폐가만 가득했다. 폐쇄와 재개발이 논의된 지도 어느덧 3년.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용주골은 그대로 멈춘 채 잊힌 것처럼 보였다.
소란 뒤에는 폐허만 남았다
용주골 초입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갈곡천이 흐르고 있었다. 연풍교를 건너자 다리 난간마다 ‘성매매 없는 건강한 파주’ 구호가 붙어 있었다. 다리 끝에서 큰길 대신 골목으로 들어서니 ‘성매매 집결지 폐쇄 합동거점시설’이라는 건물이 보였다. 건물 외벽에는 성매매 피해자 자활 지원 포스터도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하지만 내부는 예상과 달랐다. 여러 활동가가 상주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관리자 한 사람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저는 관리자일 뿐이라 인터뷰할 권한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돌리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깨진 유리창과 무너져 내린 벽돌집들이었다. 넓은 부지 대부분은 활용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밀어내고 남긴 폐허 속에서 합동거점시설만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기대했던 재개발도 요원한 상태다. 용주골이 포함된 파주 I-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은 건설 경기 악화 등의 사유로 2025년 결국 무산됐다. 재개발조합 사무실도 문을 닫았다. 이후 파주시는 용주골에 ▲가족센터 ▲성평등광장 ▲치유정원 ▲라키비움(도서관·기록관·박물관이 결합된 복합문화공간) 등을 조성하는 ‘연풍 리본(Re:Born)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성평등공간 조성사업의 실시계획인가를 고시하며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의 바람은 아직 미미하기만 했다.
진전없는 재개발, 죽어가는 지역
단속과 시위로 연일 소란스러웠던 용주골에는 이제 무거운 적막만 내려앉았다. 성매매 업소는 문을 닫았고, 현장을 지키던 행정 인력도 모두 떠났다. 그럼에도 이곳을 지키고 있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상점 문을 하나씩 두드렸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한 쌀집이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계단과 대문에 붙은 오래된 스티커는 상회가 이곳에서 보낸 지루한 시간을 실감케 했다. “예전에야 경기도 좋고 장사도 잘되고 그랬지.” 용주골에서 70년간 쌀집을 해 온 A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말했다.
“둘러보셨지? 똑같아요. 인터뷰할 것도 없어. 인구도 없고, 다 나이 먹은 사람이고. 나야 평생 가게 하고 살았으니 여기 살지, 젊은 사람들이 오겠어?” 그 말을 방증하듯 상회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휑하게 빈 바닥이 용주골의 현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용주골로 들어가기 한 걸음 전, 연풍교 앞 골목의 수퍼마켓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요즘의 가게와는 달리 진열대에는 참치 캔, 식용유, 캔 식혜 등 유통기한이 긴 생필품만 빼곡히 놓여 있었다. 수퍼마켓 주인 B씨는 “아주 거지 동네가 되어 버렸지”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재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봐도 기대감보다는 “뭘 더 고치겠느냐”며 체념 섞인 농담만 돌아왔다.
B씨는 갈수록 발길이 끊기는 동네의 현실을 아쉬워하면서도 친한 이웃들과 평상에 앉아 수다를 떠는 소박한 일상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담소 소리는 수퍼마켓 문간을 넘어 골목까지 퍼져나갔다. 폐쇄된 건물과 한산한 거리가 그 소리를 더욱 크게 울리게 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이따금 인근 고등학교를 오가는 학생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이 눈에 띄었지만 극히 일부였다. 건물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노포와 공실 사이로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문화공간과 공방이 드문드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죽어가는 마을을 살리려는 움직임
연풍리에 숨을 불어넣으려는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5년째 우드 버닝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러브애정’(작가명)씨는 파주시에서 2~3년 치 월세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온 외지인이다. 그는 용주골의 변화에 대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점점 더 사람이 없어지는 것 같은데요. 처음에 들어올 때는 희망을 갖고 들어왔는데….”
그는 재개발은 원래 오래 걸린다면서도 섣부른 낙관을 경계했다. “자생력이 없는 공간들은 다 떠나고, 활동하는 몇 군데만 남았어요.” 실제로 거리 곳곳에는 폐점한 가게뿐 아니라 공실이 된 집들도 눈에 띄었다. 문화공간이나 공방으로 활용하려다 만 곳도 보였다. 누구도 그곳들을 새로 정비하지 않았다.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인 연풍리 현실을 고려하면, 마을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였다.
시는 임대료를 지원하며 외부 창작자와 소상공인의 정착을 유도했고, 2016년에는 용주골 일대를 창조문화밸리로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공유식당과 문화공간, 사회적경제기업 육성, 주민협의체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됐지만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그의 말은 체념이라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는 목소리에 가까웠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오명을 지워내는 철거와 폐쇄의 과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그러나 그 이후 공간을 어떻게 되살리고 다시 사람이 머무는 곳으로 만들 것인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폐허로 남은 공간에 무엇을 채우고,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 그것은 지금 용주골이 마주한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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