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문제는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놓은 제도를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끝까지 실행하지 못하는 데 있다.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거버넌스 개혁'이다. 회장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고, 위원회를 새로 만들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빠져 있다. 지금 있는 제도는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가.
대한축구협회의 거버넌스는 생각보다 허술하지 않다. 감독 선임 절차도 있고,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도 있으며, 이사회 승인 절차도 존재한다. 권한도 여러 기구로 나뉘어 있고, 내부 감사 시스템도 운영된다. 제도만 놓고 보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거버넌스 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규정은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예외가 생기고, 권한은 분산해 놓았지만 결정은 일부에 집중되며, 감사는 반복되지만 같은 지적도 반복된다. 시스템은 존재하지만 시스템이 끝까지 작동하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축구협회의 가장 큰 문제다.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력강화위원회는 후보를 검토했고, 충분한 논의도 진행했다. 그러나 협상이 진행될수록 의사결정 과정은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됐고, 최종 결정에 이르기까지 누가 어떤 권한으로 무엇을 판단했는지 국민들은 확인할 수 없었다. 절차를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절차가 끝까지 공정하게 실행됐느냐가 논란의 핵심이었다.
행정감사 결과도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협회는 매년 내부 감사를 실시하며 절차와 문서 관리, 위원회 운영 등을 점검한다. 그런데 감사보고서에는 투명성 강화, 문서화, 절차의 일관성, 의사소통 개선과 같은 권고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문제를 찾아내는 기능은 있지만,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는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한축구협회의 개혁은 조직을 새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공정한 실행을 제도화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규정을 만들었다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적용돼야 하고, 권한을 위임했다면 그 과정과 책임이 명확히 기록돼야 하며, 감사에서 같은 문제가 지적됐다면 반드시 개선 결과까지 검증받아야 한다. 그래야 제도가 살아 움직인다.
거버넌스는 조직도가 아니다. 위원회의 숫자도 아니다. 공정한 실행을 통해 조직에 대한 신뢰를 만드는 과정이다. 대한축구협회가 정말 바꿔야 할 것은 새로운 규정이 아니라, 이미 있는 규정을 누구도 예외 없이 끝까지 실행하는 문화다. 그것이 한국 축구가 반복되는 불신과 논란을 끊어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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