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국 전기차 파도 타고 유럽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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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중국 전기차 파도 타고 유럽 공략

폴리뉴스 2026-07-06 18:04:54 신고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3일 경남 진주시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3일 경남 진주시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영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중국 전기차가 유럽을 흔들고 있다. BYD, 샤오펑, 지커. 이들이 보조금을 등에 업고 유럽 시장에 쏟아낸 저가 전기차는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르노가 수십 년간 쌓아온 가격 통제력을 허물었다. 유럽 소비자들은 자국 브랜드 충성도를 버리고 전기차의 가성비를 새로운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구도에서 조용히 이익을 챙기고 있는 회사가 있다고 짚었다. 현대자동차다. FT가 쓴 표현은 날카롭다. '역이용(Ride the Coat Tails)'. 중국이 닦아놓은 길 위에 현대차가 올라탄다는 것이다.

중국이 문을 열면 현대차가 들어간다

중국 브랜드들이 유럽 시장에서 가격 장벽을 무너뜨리면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조정된다. 이때 소비자들은 중국차의 스펙은 원하지만 중국차를 사지는 않는다. 데이터 안보 우려, 애프터서비스 불안, 지정학적 반중 정서가 최종 구매 단계에서 발목을 잡는다.

바로 이 틈에 현대차가 들어간다. 중국차에 버금가는 기술력과 가격을 갖추면서도 한국이라는 자유주의 진영 제조사의 신뢰, 수십 년간 구축한 유럽 딜러망과 AS 네트워크를 함께 제공한다. 소비자는 중국차를 기준으로 눈높이를 낮춘 뒤 지갑은 현대차를 향해 여는 구조다. 중국이 폭스바겐과 도요타의 텃밭을 갈아엎으면 현대차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FT는 이를 '지정학적 차익거래'라고 표현했다.

정면 승부도 피하지 않는다

역이용만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차는 중국차가 독점하려는 저가 전기차 세그먼트에서도 정면 대응에 나서고 있다.

FT는 현대차 유럽 권역 책임자의 발언을 비중 있게 다뤘다. "중국 경쟁자들과 맞서 싸울 준비가 가장 잘 돼 있는 기업." 현대차는 향후 18개월 동안 유럽 시장에 전기차·하이브리드 모델 5종을 집중 투입할 계획이다. 선봉은 아이오닉 3다. 3만 유로 미만. 폭스바겐 ID.3, BYD 돌핀, MG4와 직접 경쟁하는 가격이다.

이 정면 승부가 가능한 이유가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직계열화다. 반도체, 철강(현대제철), 물류(현대글로비스), 핵심 부품(현대모비스)까지 공급망 전체를 그룹 안에서 통제한다. 팬데믹과 공급망 붕괴로 생산 라인이 멈춰 선 폭스바겐·스텔란티스와 달리 현대차는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는 가격 통제력을 유지했다. 중국 업체들의 출혈 가격 경쟁에 휘말리지 않고 안정적 이익률을 지키며 싸울 수 있는 방패다.

EU 탄소 규제가 만든 구조적 우위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가 현대차에 예상치 못한 기회를 만들었다.

유럽연합은 탄소 배출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한다. 내연기관 비율이 높은 폭스바겐 등 유럽 전통 제조사들은 이 기준을 자체적으로 충족하지 못해 중국 업체들로부터 탄소 배출권을 사야 하는 굴욕적 상황에 처했다. 유럽 기업의 이익이 중국 경쟁사의 자본금으로 흘러 들어가는 역설이다.

현대차는 다르다. 코나·투싼·싼타페에 이르는 광범위한 하이브리드·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유럽 내에서 꾸준히 구축해온 덕분에 외부 도움 없이 규제를 돌파할 자생력을 갖췄다. 경쟁사들이 배출권 구매에 돈을 낭비할 때 현대차는 그 자본을 차세대 전기차 개발에 재투자한다.

60%, 100%가 아닌 이유

로이터는 현대차의 중장기 전략 숫자에 주목했다. 2030년까지 연간 글로벌 판매 555만 대 중 60%인 330만 대를 전동화 모델로 채우겠다는 목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60%가 순수 전기차(BEV)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수소전기차(FCEV)까지 모터와 배터리가 개입하는 모든 전동화 차량을 포함한다. 시장 상황과 지역 인프라에 따라 파워트레인 조합을 자유롭게 조절하겠다는 유연성이다.

포드·GM·볼보 등 서방 제조사들은 "2030년까지 100% 전기차 전환"을 외치다가 전기차 재고 누적과 충전 인프라 부족이라는 현실 앞에 투자를 철회하고 목표를 낮추는 수모를 겪었다. 현대차는 처음부터 올인을 선언하지 않았다. 그 신중함이 지금 경쟁력이 됐다.

하이브리드가 그 중심이다. 2026년 1월 기준 현대차 하이브리드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60% 급증했다. 싼타페 하이브리드 43%, 팰리세이드 29% 증가. 현대차는 하이브리드 라인업을 기존 7종에서 14종 이상으로 두 배 확충하기로 했다. 여기서 나오는 현금흐름이 차세대 전기차 개발 재원이 된다.

북미, IRA를 우회하는 법

미국에서 현대차의 전략은 현지화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중국산 부품이 조금이라도 섞이면 전기차 세액 공제 혜택을 박탈한다. 초기 한국에서 전량 수출하던 현대차는 직격탄을 맞았다. 해법은 총 260억 달러를 투자한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였다. CEO 호세 무뇨스는 "2030년까지 미국 내 판매 차량의 80%를 현지 조립하고 부품 공급망도 80% 이상 현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이 투자가 트럼프발 보호무역주의 전면 강화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도 관세 폭탄을 피할 방어막이 된다. 일본 도요타가 전기차 전환에 회의적 태도를 유지하며 북미 투자를 머뭇거리는 사이, 현대차는 인프라를 선점하며 미국 시장의 헤게모니를 가져오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전기차 빙하기 속에서도 성적은 증명됐다. 2025년 미국에서 90만 1,686대를 팔아 3년 연속 최대 기록을 세웠고 전동화 비중이 30%를 돌파했다. 전기차 침체가 가장 깊었던 시기에도 아이오닉 5 판매량은 오히려 전년 대비 6% 올랐다.

중국에서 선택한 길

중국 시장은 다르다. 연간 100만 대 이상을 팔던 시절은 지났다. BYD 등 토착 브랜드의 성장에 밀려 일부 공장이 가동을 멈추거나 매각 절차를 밟는 수모를 겪었다.

현대차는 완전 철수 대신 반전을 선택했다. CEO 호세 무뇨스는 베이징 모터쇼에서 "중국을 떠나지 않는다. 오히려 투자를 3배로 늘릴 것"이라고 선언했다. 향후 5년간 중국 전용 신모델 20종을 투입해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 탈환을 목표로 삼았다.

핵심은 현지화 수준을 극단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합작 파트너 BAIC와 중국 전용 플랫폼을 개발했다. 배터리는 CATL 것을 탑재했다. 자율주행 알고리즘은 중국 유니콘 기업 모멘타와 새로 짰다. 중국 도로 환경 데이터를 가장 많이 가진 회사와 손잡고 중국 특유의 복잡한 도심 환경에 맞는 알고리즘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한 것이다. 테슬라가 하나의 운영체제로 전 세계를 통일하려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다.

EREV, 중국에서 태어나 북미로 간다

현대차가 꺼낸 가장 파괴적인 기술 카드가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다.

구조는 이렇다. 바퀴는 100% 전기 모터가 굴린다. 그러나 배터리 용량을 줄이고 그 자리에 소형 가솔린 발전기를 탑재한다. 배터리가 떨어지면 발전기가 가동되어 실시간으로 충전한다. 충전 인프라 없이도 1,0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하다.

중국 내륙의 충전 인프라 부족, 북부 혹한기의 배터리 효율 저하라는 조건을 동시에 돌파하는 해법이다. 배터리를 절반으로 줄여 원가와 무게를 낮추면서도 주행거리 불안을 없앴다.

현대차는 이 기술을 중국에만 가두지 않는다. 2027년부터 북미 시장에도 EREV를 투입한다. 충전 인프라가 척박한 미국 중서부, 대규모 견인 수요가 있는 픽업트럭 시장을 겨냥한다. 제네시스 플래그십 SUV와 픽업트럭에 이식해 연간 35만 대를 정조준했다. 중국의 결핍에서 태어난 기술이 북미 프리미엄 시장의 무기가 되는 역설이다.

전기차 시대의 숨겨진 병목

현대차 전동화 전략의 마지막 조각이 있다. 범그룹 차원의 인프라다.

전기차가 아무리 많이 팔려도 충전할 전력망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HD현대일렉트릭은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와 북미 765kV 초고압 전력망 교체 수요 폭증에 맞춰 2026년 연간 수주 목표를 42억 달러에서 51억 달러로 23% 올렸다. 미국 내 배전 변압기 공장 증설도 진행 중이다.

HD현대일렉트릭이 미국 전력망의 고속도로를 넓히면 그 위를 현대차 전기차가 달린다. 전력 생산·분배 인프라부터 최종 모빌리티 제품까지 에너지 가치사슬 전체를 그룹 차원에서 장악하는 구조는 포드, 폭스바겐이 흉내 낼 수 없는 해자다.

2026년 현대차의 전략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중국이 길을 닦으면 올라타고, 중국이 막아서면 맞서 싸우고, 중국에서 배운 것은 미국으로 가져간다.

100% 전기차를 외치다 후퇴한 서방, 하이브리드 특허에 안주하다 타이밍을 놓친 일본, 배터리를 가졌지만 소프트웨어가 없는 중국. 세 진영의 틈새에서 현대차는 다섯 가지 파워트레인(ICE, HEV, PHEV, BEV, EREV)을 시장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조합하는 유연성으로 생존을 넘어 패권을 노리고 있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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