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네이마르, 동생은 메시…독일 신발공장 형제들의 위대한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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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은 네이마르, 동생은 메시…독일 신발공장 형제들의 위대한 유산

르데스크 2026-07-06 18:00:0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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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슈퍼스타' 리오넬 메시는 아디다스 축구화를, '브라질의 레전드' 네이마르는 푸마 축구화를 신었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선택한 두 브랜드는 같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글로벌 스포츠용품 시장의 한 축을 차지한 두 브랜드는 독일 국적의 다슬러(Dassler) 형제가 함께 세운 신발공장에서 출발했다. 이후 형제가 결별하면서 두 개의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탄생했고 선의의 경쟁을 통해 글로벌 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스포츠 마케팅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갔다. 시장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는 선의의 경쟁 관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신발공장 부모님 둔 시골마을 형제의 반전, 스포츠 마케팅의 선구자 '아디다스·푸마'

 

▲ 다슬러 가문 가계도.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아디다스와 푸마의 역사는 독일 바이에른주의 작은 도시 헤르초게나우라흐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됐다. 신발공장 기술자였던 크리스토프 다슬러가 신발 제작을 담당하고 아내인 파울리네 다슬러가 공장 운영을 도왔다. 두 사람의 아들들도 성인이 되기 전부터 신발 제작을 도왔고 이후 가업은 차남 루돌프 루디 다슬러와 셋째 아돌프 아디 다슬러가 함께 이었다. 두 사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공장 이름을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Dassler Brothers Shoe Factory)'으로 바꾸고 역할도 분담했다. 루디는 영업과 마케팅을 맡았고 아디는 제품 개발과 기술을 담당했다. 

 

다슬러 형제 신발공장의 이름을 알리게 된 비결은 바로 스포츠 마케팅이었다. 그 시작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앞두고였다. 당시 아디는 미국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를 직접 설득해 자신이 만든 육상 스파이크를 경기에서 신게 했다. 아디의 요청을 받아들인 오언스가 올림픽에서 금메달만 4개를 획득했고 다슬러 형제의 이름값도 널리 퍼졌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형제 사이에 불화가 생겨난 데다 영업을 중시한 루디와 기술 개발을 우선한 아디의 경영 철학도 점차 엇갈리면서 결국 1948년 결별하게 됐다.

 

이후 루디는 푸마(PUMA)를, 아디는 아디다스(adidas)를 각각 설립하며 본격적인 경쟁을 시작했다. 아디다스는 기능성과 기술을 앞세웠고 푸마는 공격적인 영업과 마케팅으로 시장을 확대해 나갔다. 형제 부모의 영향을 받은 탓에 두 기업 모두 처음 모습은 가족기업이었다. 루디의 아내 프리들 슈트라서는 푸마의 공장 운영과 인사 관리를 맡아 조직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아디의 아내 케테 마르츠는 생산과 공장 운영을 총괄하며 제품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둔 브라질 축구 스타 펠레를 모델로 발탁한 푸마의 1971년 공식 광고. [사진=푸마]

 

아들들이 가업을 승계하는 모습도 판박이었다. 루디의 장남 아르민 다슬러와 아디의 장남 호르스트 다슬러가 각각 푸마와 아디다스를 물려받았다. 선대 시절의 경쟁구도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을 앞두고 축구 스타 펠레를 둘러싼 영입 경쟁은 지금도 두 기업의 라이벌 관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당시 두 기업은 과도한 경쟁을 피하기 위해 모두 펠레와 계약하지 않기로 하는 '펠레 협정'을 맺었지만 푸마가 협정을 깨고 펠레와 후원 계약을 체결하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후에도 두 기업은 유명 스포츠 스타의 후원 경쟁에서 빈번하게 부딪혔다.

 

그러나 기업 간 경쟁과 달리 다슬러 가문의 경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푸마가 경영악화에 빠지면서 결국 아르민이 회사 지분을 매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디다스 역시 스포츠 마케팅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세를 키우던 호르스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호르스트의 자녀들이 잉게·카린·브리기트·지그리트 등 호르스트의 여동생들, 즉 고모들과 경영권 갈등을 빚었다. 그 일을 계기로 창업 가문의 영향력이 점차 약화됐고 결국 1990년 창업 가문 소유 지분을 전부 매각하기에 이르렀다.

 

라이벌 관계가 된 형제 브랜드, 선의의 경쟁 통해 글로벌 스포츠산업 대표기업 우뚝

 

현재 아디다스와 푸마 모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아디다스의 최대주주는 글로벌 자산운용사 블랙록(7.37%)이다. 아문디 자산운용(4.99%), NNS그룹(3.43%) 등도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나머지 84.21%는 기관투자자와 일반주주가 보유하고 있다. 푸마 역시 중국의 스포츠용품 기업 안타스포츠(29.06%)가 최대주주다. 프레이저스 그룹(5.77%), 슈로더투자운용(4.94%) 등도 대주주에 올라 있다.

 

라이벌 관계인 두 기업의 전문경영인 이력도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다. 현재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는 노르웨이의 축구선수 출신 비에른 굴덴(Bjørn Gulden)이 이끌고 있다. 굴덴 CEO는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푸마 CEO였다. 당시 푸마의 브랜드 경쟁력을 회복시킨 뒤 2023년부터 아디다스로 자리를 옮겼다. 반대로 푸마 CEO는 독일 출신의 아서 회엘드(Arthur Hoeld)다. 회엘드 CEO는 과거 아디다스에서 글로벌 영업을 총괄했던 이력을 지녔다. 지난해부터 푸마 최고경영자에 올라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개선을 이끌고 있다. 

 

▲ 아디다스·푸마 지배구조. [그래픽=장혜정, ⓒ르데스크]

 

한국 시장에서도 두 브랜드의 존재감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아디다스는 1982년 국내 기업 제우교역에 제품 유통, 라이선스 제작 등을 맡기는 방식으로 처음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아디다스 본사는 제우교역 지분을 매입했고 사명도 아디다스코리아로 변경했다. 2017년 유한책임회사로 전환돼 정확한 매출은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아디다스 본사의 지난해 일본·한국 권역 매출은 14억600만유로(한화 약 2조4762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약 14%에 달하는 성장률이다.

 

푸마도 1993년부터 이랜드를 통해 라이선스 형태로 국내 시장에 진출한 뒤 2007년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인 직접 진출을 단행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축구와 러닝 중심 브랜드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푸마코리아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2.4% 증가한 1508억원, 영업이익은 0.9% 가량 늘어난 67억원 등을 각각 기록했다. 최근 푸마코리아는 국내 러닝 시장 확대를 겨냥해 '벨로시티' '패스트알' 등 러닝화 제품군을 늘려나가면서 나름 효과를 보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다슬러 형제의 결별은 그들 개개인에겐 비극이었겠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선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두 곳이 선의의 경쟁을 통해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호재라고 볼 수 있다"며 "실제로 두 회사가 경쟁을 이어오면서 기술 혁신과 스포츠 마케팅이 발전했고 결과적으로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도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슬러 가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디다스와 푸마의 브랜드 헤리티지는 전문경영인 체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며 "특정 인물이 아닌 브랜드와 시스템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만든 대표적인 사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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