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통합 이후 대한항공(003490)의 경쟁력은 하늘 위 서비스에서만 정해지지 않는다. 새 항공기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여오고, 그 비용을 어떤 조건으로 조달하느냐도 글로벌 항공사 경쟁의 중요한 축이 됐다.
대한항공이 일본 채권시장에서 200억엔 규모의 사무라이본드(Samurai Bond)를 발행했다고 6일 밝혔다. 원화 기준 1900억원 규모다. 사무라이본드는 외국 기업이나 기관이 일본 금융시장에서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을 말한다.
이번 발행에는 한국수출입은행(이하 수은) 보증이 붙었다. 항공업은 유가와 환율, 금리 변화에 민감한 산업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항공사 자체 신용도와 함께 업황 변동성까지 살펴야 한다. 수은 보증은 이런 부담을 낮추고 대한항공이 해외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이번 사무라이본드는 금액 자체보다 조달 방식의 의미가 더 크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020560) 통합 이후 더 큰 노선망과 기단을 운영해야 한다. 운항 규모가 커질수록 필요한 투자도 커지고, 자금 조달 경로 역시 넓어져야 한다. 일본 채권시장 발행은 대한항공이 국내 금융시장에만 기대지 않고 해외 투자자 기반을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항공사에 금융 조달 능력이 중요해진 이유는 분명하다. 항공기 도입은 한 번의 구매로 끝나는 투자가 아니다. 발주와 계약, 금융 조달, 인도 일정, 운항 투입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에서 금리와 환율 조건이 달라지면 항공사의 비용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보잉777-300ER 항공기. ⓒ 대한항공
대한항공이 추진하는 차세대 기단 전환은 규모부터 크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총 362억달러를 투자해 보잉(Boeing) 차세대 항공기 103대를 추가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도입 기종은 △777-9 20대 △787-10 25대 △737-10 50대 △777-8F 화물기 8대다. 인도는 2030년대 후반까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103대라는 숫자는 대한항공의 미래 전략을 압축한다. 장거리 여객 노선에는 777-9와 787-10이 투입될 수 있고, 737-10은 중단거리 노선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다. 777-8F 화물기는 화물 사업의 중장기 경쟁력을 보강하는 기재다. 여객과 화물을 함께 키워온 대한항공의 사업 구조가 차세대 항공기 도입 계획에도 반영돼 있다.
기단 현대화는 항공사의 비용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다. 최신 항공기는 기존 기종보다 연료 효율이 높고 정비 효율도 개선된다. 유류비 부담이 큰 항공사 입장에서는 신형 항공기 도입이 수익성 방어와 직결된다.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는 흐름까지 감안하면 기재 전환은 선택보다 생존 전략이다.
문제는 속도와 재무 부담이다. 100대가 넘는 항공기를 들여오는 계획은 항공사의 체급을 보여주는 동시에 긴 호흡의 자금 계획을 요구한다. 좋은 항공기를 확보해도 조달 비용이 높아지면 수익성 개선 효과는 줄어든다. 대한항공이 사무라이본드와 정책금융을 함께 활용하는 이유다.
수은은 대한항공의 신규 기단 확대 계획에 맞춰 총 7000억원 규모의 금융을 지원한다. 수출금융 3000억원과 공급망안정화기금 4000억원으로 구성된다. 항공기 도입을 개별 기업 투자로만 보지 않고 국가 물류망과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항공산업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거치며 성격이 달라졌다. 항공사는 여객을 실어 나르는 서비스 기업이면서 동시에 국가 물류망과 글로벌 공급망을 연결하는 인프라 기업이 됐다. 화물 운송과 국제 노선망이 흔들리면 기업의 생산과 수출에도 영향을 준다. 공급망안정화기금이 항공사 기단 투자와 연결되는 이유도 이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통합 이후 대한항공에는 더 복잡한 과제도 남아 있다. 커진 기단은 운항 효율과 협상력을 높일 수 있지만, 기재 구성과 노선 배치가 정교하지 않으면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낡은 항공기를 줄이고 고효율 기종을 늘리는 과정은 통합 항공사의 수익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다.
이번 자금 조달은 대한항공이 향후 10년 이상 이어질 기단 전환을 준비하는 과정의 한 장면이다. 항공사 경쟁은 노선 수와 서비스 품질에서 연료 효율, 탄소배출, 정비 비용, 항공기 인도 일정, 금융 조달 능력까지 넓어지고 있다. 좋은 기재를 제때 확보하고, 그 비용을 감당 가능한 구조로 설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이번 사무라이본드의 성공적인 발행은 대한항공의 안정적인 사업 경쟁력과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글로벌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인한 의미 있는 성과다"라며 "차세대 항공기 도입과 기단 현대화를 통해 고객 서비스와 운영 효율을 더욱 높이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의 사무라이본드 발행은 금융시장 신뢰를 확인한 이벤트인 동시에 통합 이후 투자 전략의 출발점이다. 103대 차세대 항공기 도입은 대한항공의 미래 경쟁력을 키우는 계획이지만, 그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자금 조달이 선행돼야 한다. 통합 대한항공의 경쟁은 운항 현장과 금융시장에서 동시에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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