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사들이 주유소 공급 가격을 두고 조직적으로 담함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이들이 가격 경쟁을 사실상 차단한 유통 구조를 바탕으로 유가를 일제히 끌어올렸다는 것이 검찰의 분석이다.
6일 검찰 등에 따르면 국내 4대 정유사 중 일부는 미국·이란 전쟁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석유제품 공급 가격과 관련한 정보를 주고받으며 가격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유가 불안이 커진 지난 3월에는 정유사 내부 가격결정부서 대화방에서 노골적인 대화가 오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한 정유사 직원들은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오늘 가격 100원 더 올린다. 우리 올해 2조 벌 듯”이라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같은 날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당 1천800원을 넘어섰다. 유가가 더 오르기 전 주유하려는 차량이 몰리면서 일부 주유소에는 긴 줄이 이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이 같은 가격 급등이 단순한 국제 정세의 영향만은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유사들이 서로 가격 정보를 공유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공급 가격을 함께 올렸다는 것이다.
수사 결과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가격 정보를 교환한 뒤 납품 가격을 급격히 인상했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이 흐름에 맞춰 가격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전쟁 발발 당시 정유사들이 이미 상당한 원유를 비축하고 있어 공급 가격을 급격히 올릴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고 봤다. 그럼에도 정유사들이 비슷한 시점에 전례를 찾기 어려운 수준으로 입금가를 인상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실제 파악된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의 직접 담합 규모는 14조2천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정유 4사가 함께 가격을 올린 파급 효과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26조원 규모의 담합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은 정유사 간 담합이 가능했던 배경으로 자영주유소와 맺은 ‘전량구매계약’ 구조를 지목했다.
전량구매계약은 주유소가 특정 정유사로부터 석유제품을 전량 공급받는 방식이다. 주유소는 정유사가 정한 입금가에 따라 제품을 공급받고, 월말에는 정유사가 다시 정한 확정가를 기준으로 정산하는 구조다.
이 경우 주유소는 다른 정유사나 유통 경로에서 더 저렴한 제품을 들여올 기회를 사실상 잃게 된다. 가격 변동에 따른 손익도 사전에 예측하기 어렵다.
정상적인 경쟁 시장이라면 정유사들은 주유소에 더 많은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전량구매계약이 주유소의 선택권을 제한하면서 정유사들이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판단했다.
전량구매계약은 이미 2009년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을 받은 바 있다. 2013년 대법원도 상대방 의사에 반하는 전량구매계약은 위법하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럼에도 현재 정유 4사의 전량구매계약 체결 비중은 평균 9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주유소협회 설문에서도 자영주유소 83.3%가 사실상 계약 선택권이 없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일부 주유소 측에서는 “정유사가 왕 같은 구조”라는 표현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유사들은 전량구매 의무를 지키지 않은 주유소에 보너스카드 혜택을 중단하거나, 매출액의 10~30%에 달하는 위약금 소송을 제기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유사 내부 이메일과 메신저 내용도 확보했다. 여기에는 전량구매계약과 관련해 “고이 보내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악성 거래처는 소송을 통해 골탕을 먹여야 할 것 같다”, “전량 계약이라 (다른 곳으로) 가는 순간 손해배상 아작난다”는 표현이 담긴 것으로 파악됐다.
또 검찰은 국내 정유사들이 공급하는 석유제품 사이에 실질적인 품질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정유사들이 석유 저장 탱크를 서로 교환하는 스와프 거래를 해왔다는 점에서, 각 사 제품 간 품질 차별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정유사들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유사들이 경쟁할 수 있는 핵심 요소는 가격이었지만, 검찰은 담합과 불공정한 계약 구조로 인해 가격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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