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한나연 기자 | 정부가 해외건설 산업의 무게중심을 단순 시공(EPC)에서 기술과 금융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옮기기 위한 중장기 청사진을 내놨다. 5년 전 제4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이 투자개발 기반 마련과 금융지원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에는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시티, 데이터센터 등 미래 신산업을 전략 분야로 구체화하고 투자개발 기능까지 강화했다는 점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6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최근 '제5차 해외건설진흥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했다. 정부는 해외건설 시장이 가격 경쟁 중심에서 기술력과 금융조달 능력을 갖춘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보고, 앞으로는 설계·조달·시공(EPC)을 넘어 사업기획과 투자, 운영·유지관리까지 아우르는 사업모델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전략 전환의 배경에는 사상 최대 해외수주 실적의 이면이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외건설 수주는 체코 원전 프로젝트 등에 힘입어 472억7000만달러를 기록하며 11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이 가운데 도급사업은 455억달러로 전체의 96.3%를 차지한 반면, 투자개발사업은 17억7000만달러(3.7%)에 그쳐 전년(52억달러)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선진 기업들은 기술과 금융을 앞세워 고부가가치 시장을 선점하고, 중국과 튀르키예 등 후발국은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점유율을 높이는 상황에서 단순 시공 중심의 사업 구조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이번 계획은 제4차 기본계획과 비교해 정책의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실행 방안을 한층 구체화했다. 제4차 계획이 민관 동반 협력 해외 진출 활성화, 투자개발사업 성과 확대, 고부가·미래산업 해외 진출 지원, 해외건설 기반역량 강화를 중심으로 투자개발 기반을 다지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제5차 계획은 여기에 SMR·AI 시티·데이터센터·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을 전략 육성 분야로 명시했다. 또한 기업매칭펀드와 국가별 전략펀드 조성, 글로벌 디벨로퍼 협력 확대 등 투자개발을 위한 금융지원 체계도 한층 구체화했다.
정부는 현수교와 초고층 건축, 침매터널 등 국내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를 중심으로 EPC부터 운영·유지관리까지 포함하는 패키지형 사업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다. 동시에 FLNG, 데이터센터, SMR, CCUS, AI 시티 등을 미래 성장축으로 육성해 해외건설 산업의 새로운 먹거리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이번 계획에서는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의 역할 확대도 눈에 띈다. 정부는 KIND를 단순 지원기관에서 해외 투자개발사업을 발굴하고 주도하는 '글로벌 디벨로퍼'로 육성하고, KIND와 국내 기업이 공동 투자하는 기업매칭펀드와 해외 국부펀드·국책은행이 참여하는 국가별 전략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아울러 글로벌 디벨로퍼와 다자개발은행(MDB) 협력을 확대해 우리 기업의 금융조달 경쟁력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국내 건설사들도 정부가 제시한 미래 전략 분야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현대건설은 SMR 등 차세대 원전 사업을, 현대엔지니어링은 LNG와 수소 플랜트를, 삼성E&A는 CCUS 등 친환경 플랜트를 중심으로 해외 사업을 확대하는 등 정책 방향과 맞닿은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기본계획이 곧바로 해외수주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해외건설 시장은 국제 정세와 발주 환경, 금융조달 여건 등의 영향을 크게 받는 만큼, 정부의 금융지원 확대와 함께 기업들의 기술 경쟁력과 사업 발굴 역량이 뒷받침돼야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정부는 기본계획의 첫 실행 사례로 김이탁 국토교통부 제1차관을 단장으로 한 한미 협력 수주지원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지원단은 KIND의 투자와 현대엔지니어링의 EPC 참여가 추진되는 미국 네바다주 리튬·붕소 플랜트 사업과 인디애나주 블루암모니아 플랜트 사업 등을 지원하며 투자개발 중심의 해외 진출 모델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앞으로는 단순 도급사업보다 투자와 금융이 결합된 사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글로벌 금융을 활용한 투자개발사업을 확대해 우리 기업의 해외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 구조도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전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