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를 향해 5·18 민주화운동과 광주를 희화화하는 응원 구호를 외쳐 논란이 일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 야구부에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경기가 몰수패 당하고 방송이 취소되는 등 후폭풍이 이어졌다. 교육당국은 역사 왜곡과 지역 비하 표현을 비판하며 역사교육 강화와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고, 정치권에서는 징계 수위를 두고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제81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1회전 경기에서 배재고등학교 야구부 학생들이 광주제일고등학교 선수들을 향해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응원 구호를 외치며 논란이 시작됐다. 이어 한 학생이 “탱크데이”를 외치는 장면까지 경기 직후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며 광주 지역과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한 표현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중징계
지난 5월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무렵 진행한 마케팅 문구가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어 배재고의 응원 구호가 이를 떠올리게 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교내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원 1명이 ‘가야지, 가야지, 집에 가야지’ 등 기존 응원 구호에 ‘스타벅스를 넣은 구호를 외치자, 나머지 학생들이 우발적으로 따라 부르게 됐다.
논란이 일자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소집해 배재고 야구부에 대한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 중징계를 처분했다. 협회는 관련자 진술 등을 토대로 이 행위가 스포츠 정신에 반하고 경기장 질서를 어지럽힌 것으로 판단했다. 이로써 배재고는 올해 예정된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등 주요 전국대회 출전이 전면 제한됐다.
학교에 대한 징계와 별도로 배재고 감독과 선수 개인에 대한 추가 징계도 검토 중이다. 협회 관계자는 “출전 정지 기간 내에 추가 조사와 검토를 진행해 감독과 선수 개인에 대한 징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배재고는 해당 경기에서 광주제일고를 이겨 지난 2일 순천효천고와의 경기가 예정돼있었다. 하지만 출전 정지 조치가 즉시 시행됨에 따라 순천효천고의 몰수승이 결정됐다.
웹 예능 <불꽃야구>의 배재고 출연 회차도 공개가 취소됐다. 제작사인 스튜디오 C1은 지난 1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최근 불거진 배재고 야구부 관련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오는 6일 공개 예정이었던 ‘배재고 편’ 편집본을 방송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비난이 커지자, 배재고는 학교 홈페이지에 “일부 학생 선수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로 광주제일고 선수단과 학부모, 동문, 광주 시민을 비롯한 많은 분께 깊은 상처와 실망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어 “해당 학생 선수를 즉시 제지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광주제일고 측이 심판에 항의하기 전까지는 이를 제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문 이미지에서 인공지능(AI)을 사용한 흔적인 워터마크가 발견돼 진정성 논란이 일며 사안의 중대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됐다.
AI 대필 사과문으로 재점화
방문 사과 거부한 광주일고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일 “배재고 교직원과 야구부 소속 학생·학부모가 광주일고를 직접 방문해 진심 어린 사과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의사를 광주제일고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광주일고 학생들은 사과받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거부 의사를 비쳤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학생 선수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기량이 아니라 품격”이라며 “왜곡된 역사 인식과 지역 비하성 응원이 부적절한 행동임에는 분명하다”는 글을 올렸다. 최 장관은 “스포츠에서 지역 비하, 인종 차별, 혐오 발언을 금지하고 이러한 사안에 대해 엄중하게 대처하는 것은, 스포츠가 가진 공정한 경쟁을 해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 “실력에만 치우친 나머지 인성과 인권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행위를 하는 선수들은 엘리트 선수로서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했다.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혐오와 조롱과 차별의 언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은 지도자를 비롯해 어른들의 잘못도 크다”고 전했다.
학생 선수들의 프로 진출과 대학 입시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KBO 규약은 학교폭력으로 자격정지 이상 제재를 받은 선수의 신인 드래프트 참가와 구단 입단을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안이 학교폭력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신인 선수의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단들이 여론을 의식해 지명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역사적 아픔을 희화화하거나 특정 지역을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은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학생 스포츠 현장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며 입장문을 냈다. 광주제일고 야구부 선수단과 학부모, 동문, 광주 시민에게도 사과의 뜻을 전했다.
또 운동부를 운영하는 학교들을 대상으로 경기장 내 혐오·차별 표현 근절, 상대 팀과 지역사회 존중, 스포츠정신, 인권 감수성, 역사 인식 등에 관한 교육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도자들을 대상으로도 운영 과정에서 지켜야 할 교육적 책임과 윤리 기준을 점검할 계획이다. 이들은 “잘못된 행동에 대한 책임 있는 교육적 조치와 별개로 학생 개인에 대한 신상 공격이나 과도한 비난이 확산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응원으로 시작된 논란 일파만파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배재고 야구부 선수 명단이 적힌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배재고의 공식 SNS 계정에도 “일베하는 학생 얼굴을 캡처하겠다” “일배제고”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해당 계정은 현재 댓글 기능을 막아둔 상태다.
한편, 협회는 앞으로 열릴 모든 대회에서 경기 시작 전 부적절한 응원 행위 금지를 안내하도록 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 대회 운영 규정에는 ‘개인 또는 단체에 중대한 사회적·경제적 폐해를 초래한 경우’를 가중처벌 기준으로 신설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정치권에서는 ‘해체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과 ‘과도한 처분’이라는 논쟁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0대 청소년에게 왜곡된 인식과 혐오, 조롱이 뿌리 깊게 침투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며 배재고를 언급했다.
같은 당 이개호 의원은 성명을 통해 “명백한 학교폭력이자 민주 역사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강조하며 “반복되는 반역사적 혐오 행태를 뿌리 뽑기 위해 해당 학교 야구부 해체까지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스타벅스 가는 자유도 뺏더니 아이들 꿈마저 빼앗나”라며 “개탄스럽다”라는 글을 올렸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학생들의 야구 인생을 끝장내는 처분을 내렸는데 명백히 과도하고 폭력적”이라며 “학생들은 스타벅스 마케팅 논란을 패러디한 것일 뿐이고 5·18 정신 자체를 겨냥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으로
‘밈(Meme)’화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작가 겸 방송인 허지웅은 자신의 SNS에 “5월 광주와 전라도는 여전히 조롱거리다. 역사를 모르는 아이들은 밈으로 소비한다”고 적었다. 한국사 강사 최태성은 배재고 사진과 함께 “요즘 벌어지는 일을 보며 저를 포함한 우리 기성세대는 과연 대한민국 교육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절실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 외에도 운동 경기를 포함한 교육 현장에서 혐오 표현에 대한 제지와 어른의 역할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ydcho@ilyosisa.co.kr>
Copyright ⓒ 일요시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