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류 상습 투약' 을지재단 회장 무죄…법원 "처방받은 의사 처벌규정 없어"
마약류 셀프 처방도 프로포폴만 처벌대상…"의사의 오남용 부추기는 격"
(서울=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정부가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근절하기 위해 칼을 빼든 가운데, 같은 오남용 사례에도 의사만 무죄를 받는 등 현행법에 '구멍'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을 규제하는 법령인 '마약류관리법'에는 의사가 동료 의사를 통해 치료 외 목적으로 부당하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더라도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다.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사에게 처벌 규정이 오히려 느슨하게 적용되는 심각한 허점이 있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이미 수년째 나오고 있지만, 적용 대상이 많지 않은 데다 사회적 관심이 덜한 점 등 여러 상황과 맞물려 법 개정을 비롯한 구체적인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 의료용 마약류 부당 처방…"연예인은 유죄, 의사는 무죄"
현행 마약류관리법은 의사 등 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자가 마약류를 소지, 사용, 투약하는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마약류관리법 4조). 또 치료 외 목적으로 마약류를 처방한 의사도 처벌 대상이다(마약류관리법 5조).
문제는 이 두 조항만으로는 마약류취급자인 의사가 다른 의사를 통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오남용하는 경우에는 처벌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마약류관리법 4조는 마약류취급자가 아닌 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의사는 처벌 대상이 아니고, 5조도 처방한 의사를 대상으로 한 규정이어서 처방받은 의사에게 적용할 수 있는지 법 해석상 모호한 구석이 있다.
이처럼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탓에 의료윤리를 저버린 의사의 일탈 행위에 대해선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검찰은 의사가 다른 의사를 통해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오남용하는 경우에는 마약류관리법 5조 위반죄의 공범 혐의로 기소하고 있다.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살인범과 함께 범행을 모의했거나 교사했다면 살인범의 공범으로 처벌하는 것처럼,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의사가 처방을 해준 의사와 공모하거나 교사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이 같은 우회 방법은 법원에서 번번이 막히고 있다.
법원은 마약류관리법 5조를 위반해 부당하게 마약류를 처방한 의사와 처방을 받은 환자는 대향범 관계에 해당하기 때문에 처방을 내린 의사와 처방을 받은 의사를 공범으로 엮을 수 없다고 판단한다.
대향범은 복수의 당사자가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의사(반대방향)를 갖고 관여할 것이 요구되는 범죄를 말한다. 뇌물수수죄와 뇌물공여죄가 대표적인 대향범 관계인 범죄다.
문제는 대향범 관계가 인정되면 형법상 공범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행위를 처벌하는 형벌 규정이 따로 존재해야만 처벌이 가능하다. 우리 형법이 뇌물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을 공범이 아니라 각각 뇌물수수죄와 뇌물공여죄라는 별도의 형벌 규정으로 처벌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법원의 이런 법리에 따라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은 의사를 처벌할 방법은 현재로선 없다.
일반인을 비롯해 유명 연예인들도 모두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으로 엄중히 처벌받는 와중에도 의사는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가는 사례가 발생하는 이유다.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마약 성분 투여 인정…"치료목적"(대전=연합뉴스) 이재림 기자 = 을지재단은 25일 마약 투여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박준영 전 회장의 마약 성분 진통제 투여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을지재단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박 전 회장은 2012년부터 통증 완화와 진정 효과가 있는 의료용 치료제 페치딘을 의사로부터 처방받고 지속해서 투여했다"며 "이유를 불문하고 보건의료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매우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을지재단 박준영 전 회장. 2017.12.25 [연합뉴스 자료사진]
◇ 페티딘 상습 투약 을지재단 회장…'의사'라는 이유로 무죄
의사가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받아 투약하고도 처벌을 피한 대표적인 사례가 박준영 을지재단 회장의 상습 의료용 마약 투약 사건이다.
의사인 박 회장은 지난 2018년 아편류의 마약성 진통제 '페티딘'을 재단 소속 병원을 통해 비상식적으로 과다 처방받은 혐의로 기소됐지만, 대법원은 처벌 규정이 없다는 등의 취지로 2019년 무죄를 확정했다.
당시 검찰의 공소장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13년 3월부터 2017년 10월까지 을지재단 소속 병원에서 1천677일간 페티딘 79만4천200㎎을 처방받았다. 매일 9∼13회씩 투약해야 소진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검찰은 박 회장 사건에서 마약류관리법의 '처벌 공백'을 인지하고, 그에게 의료용 마약류를 처방해준 의사들의 공범으로 박 회장을 기소했다.
을지재단을 운영하는 박 회장이 재단 소속 병원의 의사들과 공모해 마약류를 부당하게 자신에게 처방하게 했다는 식으로 혐의를 구성해 재판에 넘긴 것이다. 검찰은 특히 박 회장이 을지재단 소속 병원의 운영과 임직원에 관한 업무를 총괄하는 지위를 이용해 소속 의사들과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봤다.
검찰의 이런 주장은 1심 재판부에서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지만, 2심 문턱은 넘지 못했다.
2심 재판부는 대향범 법리를 들며 처방을 내린 의사와 처방을 받은 의사를 공범으로 엮어 처벌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2심의 이런 판단을 받아들여 무죄를 최종 확정했다.
박 회장 사건은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에 일반인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의사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불합리한 입법 불비 사례다.
이 때문에 검찰 등 수사기관 일각에선 의사가 동료 의사에게 마약류를 부당하게 처방받아 투약하는 경우에도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 또는 법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마약 수사를 전담한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원의 판단대로라면 의사와 같은 마약류취급자가 마약류를 오남용하는 것을 사실상 법으로 허용하는 격"이라며 "동료 의사를 통해 부당하게 마약류를 처방받은 의사의 경우에는 마약류관리법 5조 위반 혐의의 공범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원이 해석하거나, 관련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지검, 프로포폴 등 불법투약 전문 의료기관 적발(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중앙지검)에서 열린 프로포폴 등 불법투약 전문 의료기관 적발 브리핑에서 김보성 강력범죄수사부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공조해 프로포폴 불법유통을 집중 수사한 결과 A의원 관계자 8명, 프로포폴 중독자 24명 등 총 32명을 입건해 전직 의사 서모(64)씨 등 7명을 마약류관리법 위반(향정)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이날 밝혔다. 2024.11.20
dwise@yna.co.kr
◇ 마약류 '셀프 처방'도 처벌 어려워…현행법은 프로포폴만 금지
박 회장 사례와 달리 의사가 자신에게 의료용 마약류를 부당하게 처방하는 이른바 '셀프 처방'의 경우에도 처벌이 쉽지 않다. 의사가 절차에 따라 스스로를 진료하고, 적법한 처방을 내려 의료용 마약류를 투약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치료 목적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적 허점을 파악한 국회는 지난 2024년 2월 마약류관리법을 개정해 의사는 의료용 마약류를 자신에게 처방하거나 투약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마약류관리법 30조 2항)을 신설했다.
문제는 의사의 셀프 처방을 금지하는 의료용 마약류의 종류를 시행규칙으로 정하도록 했는데, 현재까지 금지 대상으로 지정된 의료용 마약류가 프로포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각종 유명 연예인 연루 사건으로 프로포폴이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의 대표적인 사례로 부각되면서 가장 먼저 금지 대상에 지정됐지만, 의료계에선 졸피뎀 등 최면진정제류나 항불안제 등이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2년부터 2025년 2월까지 확인한 의사의 의료용 마약류 셀프 처방 건수 8만3천585건 중 프로포폴은 389건(0.5%)에 불과했다. 오히려 졸피뎀 등 최면진정제류가 3만1천507건(37.7%)으로 가장 많았고, 항불안제도 2만8천581건에 달했다.
2024년에는 광주의 한 병원에서 의사가 옥시코돈 14만2천240정, 졸피뎀 393정, 향정신성의약품 840정을 자신에게 처방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반인보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의사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주는 현행 법령을 두고 의료계에선 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실태를 반영한 마약류관리법의 대대적인 개정 작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국회도 관련 법 개정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입법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최근 의사가 마약류 오남용이 우려되는 경우 처방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마약류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마약류 오남용 처방을 예방할 수 있는 다양한 입법을 연구하고 추진 중"이라며 "의사가 동료 의사를 통해 부당하게 마약류를 처방받아도 처벌할 수 없는 입법 공백과 셀프 처방에 대한 규제 강화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순현 김잔디 박수현 최원정 기자)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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