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국제적 위기 상황을 틈타 무단으로 석유 제품 가격을 담합하고,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폭리를 취한 국내 정유 4사와 관련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정유사 유가 담합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나희석 부장검사)는 6일 HD현대오일뱅크,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 4사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범행을 주도한 각 기업의 가격 결정 부서장과 법무실장 등 임직원들도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SK에너지는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후, 석유 제품의 가격 인상 시기와 폭을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들이 직접 담합한 규모만 1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이 해당 담합 가격을 그대로 추종해 가격을 올리면서, 국내 석유 시장 전체에 약 26조 원 상당의 경쟁 제한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유사들은 충분한 양의 원유를 비축해 두고 있어 가격을 급등시킬 이유가 없었음에도 전례 없는 규모로 공급가를 폭등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HD현대오일뱅크 직원들은 전쟁 이전부터 SK에너지 측과 지속해서 가격 정보를 교환해 온 것으로 밝혀져, 이번 사태가 일시적 일탈이 아닌 만성적 관행이었음이 수사를 통해 증명됐다.
이 과정에서 정유사 직원들이 SNS 단체 대화방에서 '역시 전쟁으로 먹고사는 회사. 트럼프 만세', '우리 올해 2조 벌 듯'과 같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대화를 나눈 사실도 확인됐다.
검찰은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의 추종 행위 역시 시장 질서를 교란한 '의식적 병행행위'로 판단했으나, 현행법상 형사처벌 대상에는 제외되어 담합 직접 당사자 중심으로 기소 조치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검찰은 정유사들이 유가 상승을 부추기기 위해 악용한 '전량구매계약'과 '사후정산제' 관행도 적발해 4개 사 모두를 기소했다.
이들은 자영 주유소들과 계약을 맺으며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가격으로만 석유를 전량 구매하도록 강제했다. 주유소가 더 저렴한 유통 경로를 택할 경우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불이익을 주며 시장 경쟁을 원천 차단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한 꼼수와 은폐 시도도 드러났다. HD현대오일뱅크와 GS칼텍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 정보를 미리 입수해 증거 인멸을 시도한 정황이 포착되어 조사 방해 혐의가 추가됐다.
아울러 정유 3사는 산업통상자원부에 석유제품 공급가를 실제 인상액보다 낮게 허위 보고한 사실도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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