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너여~."
매니지먼트 대표의 구수한 사투리. 같은 소속사 선수(정한밀)의 KPGA 우승 소식에 최용석 비넘버원 매니지먼트 대표의 시선은 이세희(29·삼천리)로 향했다. "다음 우승은 너다."
대표에게 촉이라도 온 걸까. 이세희는 롯데 오픈 마지막 날까지 이어진 선두권 싸움에 "어? 정말로 난가?"하며 생애 첫 우승의 꿈을 부풀렸다. 하지만 한 끗의 조급함이 다 잡았던 우승을 앗아갔다. 결과는 1타 차 준우승. 그러나 이세희는 아쉬움보다 데뷔 첫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엔 나여~"라는 재치 있는 한마디로 다음 트로피를 향한 굳은 각오를 드러냈다.
이세희는 지난 5일 인천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 미국·오스트랄아시아 코스(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롯데 오픈에서 최종 합계 14언더파 274타를 기록, 김효주(31·롯데)에 1타 차로 밀려 준우승했다. 이세희는 마지막 날 16번 홀(파4)까지 버디만 3개를 기록하며 김효주와 공동 선두를 이뤘으나, 17번 홀(파3)에서 파 퍼트를 놓치며 보기로 물러나 한 타 차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한순간의 조급함이 발목을 잡았다. 경기 후 만난 이세희는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경기 중 힘이 조금 들어간 것 같다. 좋은 버디 기회가 많았는데 미세한 퍼팅에서 실수가 나왔다"며 아쉬워했다. 선두 김효주와 1타 차라는 사실을 18번 홀 전광판으로 확인했다는 그는 "'(버디를) 무조건 넣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쳤는데, 돌이켜보면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괜히 아쉬움만 더 커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번 대회 이세희의 가장 큰 무기는 '마음 비우기'였다. 3라운드까지 54홀 동안 더블보기 없이 꾸준히 타수를 줄였고, 출전 선수 대다수가 고전했던 마의 13번 홀에서도 3일간 버디 1개와 파 2개를 기록하며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시즌 초 4월 더 시에나 오픈 호성적(공동 7위)으로 커진 성적에 대한 집착과 조급함으로 스윙 템포를 잃었던 경험을 거울삼아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심플하게 플레이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첫 우승의 기회 앞에선 쉽지 않았다.
비록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았으나, 이세희가 이번 대회에서 얻은 수확은 분명하다. KLPGA 투어 데뷔 이후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기록하며 상위권 경쟁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또한, KLPGA를 넘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무대를 누비는 '세계 랭킹 3위' 김효주와 마지막 홀까지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값진 경험치를 쌓았다.
이세희는 마지막 날 같은 조에서 경기한 김효주에 대해 "경기를 운영하는 여유가 남다르더라. 특히 쇼트게임 어프로치에 미스가 나더라도 퍼터로 무조건 파 세이브를 해내는 리커버리 능력을 보며 스코어를 잃지 않는 선수의 플레이 방식을 배웠다"며 냉정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과 상대의 장점을 복기했다.
이세희는 올 시즌 전반기 잦은 컷 탈락과 샷 난조 속에서도 공격적인 플레이를 끝까지 밀어붙여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냈다. 메인 스폰서 임직원들과 가족들의 응원 속에서 압박감을 견디는 법을 체득한 이세희는 우승을 놓친 뼈아픈 경험조차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이세희는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원동력 삼아 다음엔 꼭 첫 우승을 노려보려고 합니다. 다음 우승은 정말, '나여~'."
에필로그
이세희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김효주의 '여유'. 마침 김효주가 우승 기자회견에서 그 비결을 털어놨다.
"원래부터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결과에 상처 받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스타일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샷 미스가 나오면 기분 안 좋은 상태로 조금 가다가 사라지는 편인데, 지금은 어쨌든 결과만 좋게 나오면 되니까요. 공을 제가 다음 샷을 칠 수 있는 곳으로만 보내자는 생각으로 플레이하니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후배를 향한 직접적인 답변은 아니었지만, 선배의 장점을 부러워한 이세희에겐 충분한 해답이 될 만한 이야기였다.
또, 이세희는 김효주와 함께 한 이번 라운딩을 통해 LPGA 무대에 대한 궁금증을 묻는 기회로 삼았다. 이세희는 "솔직히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지만, 행여나 선배의 경기에 방해가 될까 봐 최대한 참아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며 "그럼에도 (김효주가) 재밌게 답변을 다 해준 덕분에 긴장되는 상황 속에서도 즐겁게 플레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김효주는 이를 기자회견에서 또 언급했다.
"미국(LPGA투어)에선 다양한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평소에 다양한 기술을 시도하고 연습을 많이 해둬야 한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했죠. 다만 한국은 코스마다 크게 다른 점이 적은 편이라, '나이를 들면 들수록 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함께 경기를 했던 이세희에게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Copyright ⓒ 일간스포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