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경쟁이 '말하는 AI'에서 '움직이는 AI'로 진화하면서 휴머노이드 로봇이 차세대 산업 패권의 핵심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은 AI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중국은 압도적인 제조 생태계와 공급망을 앞세워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 역시 제조 강국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쟁의 본질은 개별 기업이나 기술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산업 생태계 경쟁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은 전기차 산업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장기 산업 전략을 휴머노이드 산업에도 적용하며 빠르게 주도권을 넓혀가고 있다. 반면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도 정책의 연속성과 실증 환경, 산업 생태계 구축에서는 여전히 과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비즈니스플러스는 2편에 걸쳐 글로벌 휴머노이드 경쟁의 현주소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20여 년 전만 해도 중국은 자동차 산업의 후발주자였다. 그러나 장기 산업 전략과 막대한 투자, 제조 생태계를 앞세워 세계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집었다. 이제 같은 공식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이 인공지능(AI)이라는 '두뇌'를 앞세워 기술 혁신을 이끈다면 중국은 제조와 공급망이라는 '몸'을 앞세워 상용화를 재촉하고 있다. 업계에선 휴머노이드 경쟁의 본질은 개별 기술이 아니라 국가 산업 생태계에 있다며, 한국 역시 앞으로 5년이 글로벌 주도권 경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광둥성 선전의 전자상가는 세계 제조업의 변화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장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곳은 값싼 전자제품을 조립·유통하는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센서와 모터, 제어기, 드론, 서비스 로봇, 휴머노이드 부품까지 첨단 하드웨어 생태계가 밀집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중국 제조업의 경쟁력은 연구소가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는 우연이 아니라는 평이다. 중국은 이미 한 차례 같은 성공 경험을 갖고 있다. 바로 전기차 산업이다. 내연기관 시장을 따라가기보단 전기차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해 863계획을 비롯한 국가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전기차가 포함됐고, 중앙정부는 연구개발과 보조금 정책을 이어갔다. 지방정부는 생산기지를 유치했고, 국유기업은 초기 시장을 만들었다. 민간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자본시장은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산업 정책이 바뀌는 국가들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중국은 세계 최대 전기차 생산국이 됐다. 신에너지차 판매량과 생산량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배터리와 모터, 희토류, 전력반도체까지 공급망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중국이 전기차에서 사용했던 성장 공식을 그대로 휴머노이드 산업에도 적용하고 있어서다. 휴머노이드는 흔히 사람처럼 걷는 로봇으로 알려져 있지만 업계는 이를 '피지컬 AI'의 완성형 플랫폼으로 본다. 생성형 AI가 문서와 이미지, 음성을 처리하는 두뇌라면 휴머노이드는 그 AI가 현실 세계에서 직접 보고, 판단하고, 움직이는 몸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빅테크의 시선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엔비디아가 로봇 개발 플랫폼과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축하며 사실상 '로봇 운영체제' 경쟁에 뛰어들었고,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제조 현장에 투입하며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메타와 구글, 오픈AI 역시 피지컬 AI를 차세대 성장 축 가운데 하나로 보고 연구개발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기관들도 시장 전망을 잇달아 높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휴머노이드 시장이 AI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 기존 예상보다 빠르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조업과 물류를 시작으로 의료, 돌봄, 서비스업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맥킨지 역시 휴머노이드 산업이 단순한 로봇 시장이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을 바꾸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가능성에 주목한다. 반복 작업과 위험 공정을 중심으로 기업간거래(B2B) 시장이 먼저 열리고, 이후 범용 서비스 시장으로 확산하는 경로를 유력한 시나리오로 제시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이러한 흐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베이징이 산업 전략을 제시하면 상하이는 기술을 검증하고, 선전은 대량 생산을 담당한다. 지방정부는 산업기금과 세제 혜택으로 기업을 유치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은 인재를 공급한다. 시장이 제품을 검증하는 동안 정부는 규제와 자금을 통해 산업 전반을 뒷받침한다.
세계가 중국의 휴머노이드 산업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의 경쟁력은 더 이상 값싼 인건비가 아니다. 장기간 축적된 제조 생태계와 공급망, 그리고 기술을 실제 제품으로 빠르게 연결하는 산업 구조 자체가 가장 큰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휴머노이드 경쟁은 겉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기술 대결처럼 보이지만, 업계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AI 기술의 선도 여부보다 이를 얼마나 빠르게 제품으로 만들고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느냐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는 분석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실제 미국은 AI 모델과 소프트웨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오픈AI와 구글, 메타를 비롯해 엔비디아가 구축한 AI 생태계는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테슬라 역시 옵티머스를 통해 휴머노이드를 자동차 생산라인에 투입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상용화를 앞당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강점이 곧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블룸버그는 최근 휴머노이드 시장을 분석하며 "AI 경쟁력과 제조 경쟁력은 다른 문제"라고 진단했다. AI 모델은 빠르게 개발할 수 있지만 수백만 대 규모의 로봇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산업 역량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중국의 경쟁력을 "세계에서 가장 촘촘한 제조 공급망"으로 분석했다. 휴머노이드 한 대에는 수십 개의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고성능 센서, 카메라 모듈, 배터리, 정밀 베어링, AI 반도체 등이 들어간다. 이 가운데 상당수를 중국은 자국 내에서 조달할 수 있는 반면 미국은 여전히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휴머노이드 산업이 '제2의 전기차 산업'으로 불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전기차 역시 초창기에는 독일과 미국, 일본 업체들이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은 배터리와 희토류, 모터, 전력반도체 등 핵심 공급망을 선점하면서 결국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왔다. 전문가들은 휴머노이드 산업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중국 로봇기업들의 성장 속도는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니트리(Unitree)다. 산업용 로봇과 4족 보행 로봇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최근 휴머노이드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 평가받았지만, 최근에는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선 유니트리의 강점을 단순히 저렴한 가격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중국 내 부품 공급망을 활용해 개발과 생산 주기를 크게 단축했고, 실제 제품을 빠르게 시장에 공급하면서 데이터를 축적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은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맞고 있다. 중국처럼 거대한 내수시장도, 미국처럼 세계 AI 플랫폼을 보유하지도 않았지만 자동차와 조선, 반도체, 배터리, 스마트팩토리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반을 갖춘 몇 안 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한국은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라는 평가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유는 AI나 로봇 기술 자체보다 이를 산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제조 기반에 있다.
휴머노이드는 스마트폰처럼 하나의 제품이 아니다. 자동차와 반도체, 배터리, 정밀기계, 전장, 통신, 클라우드, AI가 동시에 결합하는 대표적인 융합 산업이다. 어느 한 분야의 경쟁력만으로는 시장을 선도하기 어렵다.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조선,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글로벌 제조업에서 축적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산업은 휴머노이드가 가장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생산 현장이기도 하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중심으로 휴머노이드 사업을 확대하는 것도 이러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단순히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공장을 비롯한 실제 생산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시도라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AI와 스마트팩토리 역량을 기반으로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축으로 육성하고 있다. 완성형 휴머노이드뿐 아니라 AI 반도체와 비전센싱, 카메라 모듈, 제어기 등 핵심 부품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증권가도 휴머노이드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비슷하다.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메리츠증권 등은 최근 로봇 산업 관련 보고서에서 국내 기업들이 완성형 휴머노이드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보다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AI 반도체와 액추에이터, 감속기, 센서, 비전 시스템, 배터리,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등 한국 제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휴머노이드 시대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엔비디아를 비롯한 글로벌 AI 기업들이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AI 플랫폼은 미국이 주도하더라도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구현하는 과정에서는 한국 제조 생태계가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제조 경쟁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휴머노이드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앞으로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하며 성장했다면 휴머노이드는 현실 세계에서 축적한 경험을 통해 성능을 높인다. 물체를 집고, 계단을 오르고, 공구를 사용하며, 사람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데이터가 AI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결국 공장과 물류센터, 병원, 건설 현장처럼 실제 산업 공간이 AI를 학습시키는 거대한 교실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역할도 과거보다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국내 로봇 스타트업들은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제품을 검증할 공간과 초기 고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왔다. 반면 대기업이 생산 현장을 개방하면 스타트업은 실증 기회를 얻고, 축적된 데이터는 다시 국내 산업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업계가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전기차와 반도체, 배터리, 드론에 이어 휴머노이드까지 장기간 일관된 산업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정권 교체 때마다 산업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연구개발 예산도 크게 변동하는 일이 반복됐다.
업계에서는 휴머노이드만큼은 단기 성과보다 장기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규제 개선과 연구개발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경쟁은 이제 기술 개발을 넘어 국가 산업 경쟁력의 시험대로 바뀌고 있다"며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과 반도체, 스마트팩토리, 산업용 AI를 연결해 한국만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휴머노이드 시장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산업이지만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아 한국이 새로운 산업 질서 주도권 경쟁에 치열하게 참여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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