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성진 기자 |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화가 난 사람이 참 많다.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고 비난하고, 세대와 성별이 다르다고 편을 가른다. 특정 지역을 조롱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마저 생겼다.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스포츠계에서 벌어진 두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하나는 배재고 야구부의 5•18 민주화운동 희화화 논란이고, 다른 하나는 2026 북중미 월드컵을 치른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을 향한 도 넘은 비난이다.
두 사건의 분명히 다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은 혐오의 정서가 보인다.
먼저 배재고 야구부 선수들은 광주일고와 경기에서 “스타벅스 가야지”, “탱크데이” 등의 구호를 외쳤다. 5·18 민주화운동 희화화 논란이 된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를 떠올리게 했다. 한 명의 돌발 행동이 아니었다. 여러 학생이 함께 외쳤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배재고에 6개월 출장정지 처분을 내렸다.
전 세계 스포츠계에서 혐오와 차별행위는 즉각 퇴출당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다. 배재고를 향한 징계가 과하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그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다만, 걱정스러운 점은 역사적 아픔을 조롱하는 표현이 학생들의 입에서 놀이처럼 나왔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시작했고, 다른 이들은 따라 했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배재고 학생 선수들은 어디에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학생들만 탓할 수는 없다. 혐오와 조롱을 재미있는 콘텐츠처럼 소비해 온 것은 어른들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을 향해 멸칭을 붙이고 특정 지역을 조롱한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는 서로 비하하는 단어를 만들었고, 남성과 여성의 갈등도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공격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온라인에서는 더욱 심하다. 누군가 실수하면 비판으로 끝나지 않는다. 과거를 파헤치고 가족까지 끌어들인다. 한 사람이 완전히 무너져야 분노가 끝나는 듯하다.
홍명보 감독을 향한 비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에서 어느 종목이든 감독은 성적으로 평가받는다. 전술이 부족했다면 비판해야 하고, 선수 선발과 경기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 홍명보 감독과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여러 문제점에 대한 비판은 응당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판이 사람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공격이 대부분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는 점이다. “잘못했으니 욕을 먹어도 된다”, “공인이니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선을 넘은 공격을 정당화한다. 혐오는 언제나 자신을 정당화할 명분을 찾는다.
정치에서도 상대 진영은 경쟁자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이 됐다. 지역과 세대, 성별 갈등도 비슷하다.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보기 전에 출신 지역과 나이, 성별부터 따진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대와 대화하는 수고보다 혐오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우리는 혐오에 너무 익숙해졌다. 배재고 학생들의 구호가 더욱 씁쓸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른들이 만든 혐오의 언어를 아이들이 배우고, 이제는 그것을 놀이처럼 소비하고 있다.
잘못은 비판하고 책임은 물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과 혐오는 다르다. 실패를 지적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지킬 수 있고, 생각이 다른 상대와 싸우면서도 그의 존재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혐오가 만연한 이 사회 분위기가 혐오스럽다. 그러나 혐오에 또 다른 혐오로 맞서는 사회를 바라지는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되 사람을 파괴하지 않는 것, 지금 우리 사회가 다시 배워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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