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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반도체 공장은 발표로 지어지지 않는다. 공장 부지보다 먼저 확보돼야 할 것이 전력과 물이다. 특히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멈추지 않는 전기를 요구한다. 한순간의 전압 불안정도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첨단산업일수록 전력 인프라는 배경이 아니라 핵심 설비다.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기지에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원전, 액화천연가스(LNG) 열병합발전 등 다양한 발전원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물론 정부가 호남권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강조하는 것은 타당하다. 서남권 태양광과 해상풍력은 향후 지역 전력 기반을 넓히는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시간에 따라 출력이 달라진다. 반도체 팹과 AI 데이터센터의 기본 전원으로 삼기에는 보완 전원이 필요하다. 전력망과 저장장치, 가스발전, 원전이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녹색 전력’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이 와닿은 영향일까. 정부에서 원전 확대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2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현재 계획된 반도체 팹 4기 외에 추가로 조성될 경우 신규 원전 건설이 필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음날에는 MBC 라디오에서 “반도체는 24시간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양만으로 감당하기가 만만치 않다”며 “원전을 추가로 지어야 할지 여부를 빨리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발언이다. 그러면서 김 장관은 “새로운 부지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남 영광 한빛원전에 2기, 울산 울주 새울원전에 2기 등 총 4기를 더 지을 수 있는 땅이 있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서 한빛원전의 역할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호남권에 이미 존재하는 대규모 무탄소 기저전원이다. 안전성 확인과 주민 수용성 확보를 전제로 계속운전을 검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존 전원을 유지하지 못한 채 신규 전력수요만 쌓는다면,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전력 부족 논란에 부딪힐 수 있다.
물론 더 나아가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는 지역별 전력수요와 산업입지를 반영한 신규 원전 검토가 포함돼야 한다. 수도권 수요를 전제로 한 전력계획만으로는 AI 시대의 산업지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이 지방으로 이동한다면 발전원과 송전망 계획도 함께 이동해야 한다.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의 성패는 투자금 규모가 아니라 전력 공급 계획의 현실성에서 갈릴 것이다. 팹은 전기로 돌아가고, 데이터센터는 전기로 학습한다. 전력이 없으면 800조원 청사진도 조감도에 머문다. 정부가 진정 호남을 대한민국 첨단산업의 새 축으로 세우려 한다면, 이제는 공장 발표 다음으로 전력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한빛 원전 계속운전과 호남권 추가 원전 검토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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