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밤이 다시 살아난다.
지난 3일 금요일 저녁 8시. 을지로 골목에는 퇴근한 직장인들이 하나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좁은 골목마다 노란 조명이 켜지고, 철판 위에서는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퍼진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맥주잔을 들고 골목을 거닐며 사진을 찍고, 젊은 버스커의 음악이 밤공기를 채운다.
조금 떨어진 한강에서는 드론 수백 대가 밤하늘을 수놓는다. 강변을 따라 시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서울달에서는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벽에서는 초대형 미디어아트가 밤을 밝히고, 광화문광장은 은은한 조명 속에서 또 다른 도심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서울시가 그리고 있는 ‘오세훈표 밤’ 풍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민선 9기 핵심 성장 전략 가운데 하나로 '야간경제 활성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코로나19 이후 침체된 야간 소비를 회복시키고, 관광객이 서울에 더 오래 머물며 골목상권까지 소비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홍대와 을지로, 강남, 여의도 등 서울 곳곳에 야간경제 상생특구를 조성하겠다"며 "시민은 더 풍성한 밤을 누리고 지역 상권은 활력을 되찾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의 밤이 세계인이 서울에 머무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열린 '2026 서울국제관광포럼'에서 오세훈 시장은 "서울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잠재력이 바로 야간 관광에 있다"며 "한강변 야간 공연, 한여름밤의 야외 도서관, 세계적으로 안전한 나이트 라이프 등을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 브랜드로 키워나가겠다"고 그 구상을 제시했다. 이는 이번 6·3 지방선거 당시 발표했던 '365일 매력 넘치는 도파민 특별시' 공약의 연장선이다.
서울시는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 시대를 준비하며 하루가 아니라 '며칠을 머무는 도시'를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0년 무렵 미국 CNN 방송은 서울을 '잠들지 않는 도시'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며 퇴근 후 이어지는 직장인들의 회식 문화, 늦은 밤까지 활기를 잃지 않는 식당가와 거리, 새벽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야간문화 등을 상세히 조명했다.
당시에는 소주 한 병 가격이 생수보다 저렴할 정도로 독특한 음주문화도 외국인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경기 침체를 거치면서 서울의 밤은 이전만큼 활기를 잃었다.
서울시는 이제 과거의 유흥 중심 밤문화가 아니라 문화·관광·미식·예술이 어우러지는 품격 있는 야간경제를 통해 서울의 밤을 다시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는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공모를 실시해 지역을 대표하는 야외영업 거점을 선정하고 '야간경제 상생특구'를 조성한다. 그동안 민원과 규제 사이에서 사실상 음성적으로 운영되던 야외 테이블 영업을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겠다는 것이다.
특구에서는 도로점용과 옥외영업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한다.
대신 상인회와 상생협약 체결, 소음 관리, 청결 유지, 운영시간 준수 등을 의무화한다.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특구 지정 해제나 면적 축소 등 강력한 페널티도 적용한다.
서울시는 무질서한 노천영업이 아니라 유럽 도심처럼 질서 있고 품격 있는 거리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다.
서울시는 뚝섬·잠원·옥수·한남 일대 야간경관을 특화하고, 향후 한강버스를 활용한 야간관광 프로그램도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드론라이트쇼, 서울달, 한강 야외공연 '스테이지 서울', 야간 스포츠시설 개방 등이 더해질 경우 한강은 서울 최대의 야간 관광벨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관광객들은 여의도에서 드론쇼를 보고, 서울달에 오른 뒤 한강버스를 타고 잠원과 뚝섬으로 이동하는 새로운 야간 관광 코스를 즐길 수 있게 된다.
서울라이트 DDP는 지난해 방문객 192만 명을 기록하며 서울 대표 야간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서울시는 이를 동대문 상권과 연계해 체류 시간을 늘리고 야간 소비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광화문광장의 '감사의 빛 23' 역시 새로운 야간 포토명소로 떠오르면서 도심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여기에 경복궁과 창덕궁 등 고궁 야간개장, 서울빛초롱축제, 사계절 축제까지 연결되면 서울 전역이 하나의 거대한 야간관광 네트워크로 이어질 전망이다.
관광객이 오후 6시에 호텔로 돌아가면 소비는 끝난다. 하지만 밤 10시, 자정까지 머무르면 저녁식사와 카페, 공연, 쇼핑, 교통 이용까지 소비가 계속 이어진다. 그 소비는 결국 골목상권으로 흘러간다.
5일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관광산업의 GRDP(지역내총생산) 기여도는 2022년 2.1%에서 2024년 3.3%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지난해 서울을 찾은 외국인은 1283만 명, 관광산업 매출은 45조6000억 원, 부가가치는 18조8000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관광 소비의 91%가 외국인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점에서 서울 관광은 이미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뉴욕은 브로드웨이와 타임스스퀘어, 파리는 세느강 야간관광, 런던은 웨스트엔드 공연문화가 도시경제를 움직인다.
서울도 이제 한강과 DDP, 광화문, 홍대, 을지로, 성수, 여의도를 하나로 연결하는 '논스톱 플레이 서울'을 통해 세계적인 야간관광 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야간경제 활성화의 핵심은 관광객의 체류시간을 늘리고 소비를 지역 골목상권으로 연결하는 것"이라며 "서울의 밤 자체가 하나의 관광상품이 되고 도시 경쟁력이 되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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