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데레사 더봄] 동백꽃이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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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데레사 더봄] 동백꽃이 피기를

여성경제신문 2026-07-05 13:00:00 신고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 모퉁이 슈퍼

오래된 주택가 골목 끝에는 작은 슈퍼 하나가 있다. 어느 동네든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대부분이었지만 이 작은 슈퍼는 오랫동안 마을의 이정표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슈퍼 앞에는 낡은 평상이 하나 놓여 있었고, 희경 할머니는 늘 그렇듯 그곳에 앉아 행정복지센터에서 온 안내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난방 지원과 생활 지원에 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작은 글씨와 어려운 표현들은 그녀에게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들고양이 한 마리가 햇볕을 쬐며 평상 아래에서 눈을 감고 엎드려 있다.

“할머니, 오늘은 날씨가 좋네요. 그런데 무얼 그렇게 보고 계세요?”

슈퍼집 주인인 병구 씨가 할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응, 그냥···”

할머니는 안내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움을 받으려다가 손님이 오자, 멈칫하고 말았다.

‘그래, 바쁜 사람한테 괜히··· 동사무소에 가면 알려주겠지.’

- 희경 할머니

희경 할머니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눈을 뜬다.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는 시계보다 먼저 하루가 찾아온다. 방 안은 아직 어두웠다. 벽에 걸린 오래된 가족사진이 희미하게 보였다. 사진 속 희경 할머니는 지금보다 훨씬 젊다. 두 손에는 아이들의 손이 잡혀 있었고,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때의 손은 참 바빴다.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그런데 이제 그 손은 아침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놓여 있을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남편이 키우던 동백꽃 화분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동백꽃을 일컬어 ‘차가운 겨울을 견디며 피어나,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꽃’이라고 말했다. 동백꽃은 시들면서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째 툭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인지 할머니는 추울까 봐, 어느 때는 햇빛이 너무 셀까 봐, 화분을 창가에서 안으로 옮겼다. 나무는 점점 햇빛을 볼 수 없었고 결국 겨울이 길어지면서 잎은 시들어 갔다.

“너도 춥지?”

물은 며칠 전에 주었지만, 잎은 쉽게 살아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할머니는 두꺼운 외투를 입고 집을 나섰다. 행정복지센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할머니가 알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게 있는지.”

복지센터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두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할머니 차례가 되자,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며 필요한 서류와 확인해야 할 조건들이 몇 가지 더 있다고 말해 주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더 많았다. 다만 한 가지 생각만이 맴돌았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어려운 사람이 된 걸까. 아니면 혼자 남아 어려운 사람이 된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길 모퉁이에서 작은 지갑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갈색 가죽이 다 닳아 모서리가 하얗게 벗겨진 낡은 지갑이었다. 지갑을 열자 1만원짜리 한 장과 1000원짜리 지폐 몇 장, 그리고 작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여보, 당신은 너무 많은 사람을 챙기느라 정작 당신 마음은 못 챙긴다. 그래도 당신 같은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따뜻한 거야. 언제나 고마워.”

짧은 문장이었지만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할머니는 소중한 물건을 찾은 듯 자신의 가방 깊숙한 곳에 지갑을 넣었다.

- 공주 할머니

공주 할머니는 올해 일흔두 살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이 공주라서 공주 할머니라고 불렀다. 허리는 조금 굽었고 걸음은 예전보다 느려졌지만 아직도 그녀의 손은 늘 바빴다. 아침이면 현관 앞 먼지를 쓸었고, 슈퍼 앞에 떨어진 휴지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누가 버렸든 누군가는 치워야지.”

그것이 공주 할머니가 평생 살아온 방식이었다. 젊은 시절 그녀는 동네 시장에서 작은 반찬 가게를 했다. 새벽 네 시면 일어나 멸치를 볶고, 김치를 담그고, 반찬통을 채웠다. 남편은 늘 말했다.

“당신은 손이 참 크네. 팔 만큼만 해도 될 걸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

그녀의 반찬통에는 늘 하나가 더 들어 있었다. 돈을 받고 파는 반찬이 아니라 혼자 사는 노인에게 건네는 것. 아이 키우느라 밥을 못 챙기는 이웃에게 주는 것. 시장 한쪽에서 추위에 떨던 사람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주 할머니를 기억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녀의 손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그녀가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사실이 공주 할머니를 슬프게 했다. 그래서 오늘도 행정복지센터에 가느라 몇 번이나 옷매무새를 고쳤다. 마치 누군가에게 부탁하러 가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처럼.

공주 할머니는 복지센터에서 ‘지원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장남인 죽은 남편 이름으로 되어있는 집안 선산이 재산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기운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갑까지 잃어버렸다. 오던 길을 되돌아 가보았지만, 지갑은 없었다. 남편이 사준 지갑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는 남편이 처음으로 써 준 편지가 들어 있었다.

- 다시 모퉁이 슈퍼

오후가 되자, 희경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병구 씨네 모퉁이 슈퍼 평상에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문득 무슨 기억이 났는지 가방에서 낡은 지갑을 꺼낸 후, 그 안에 있는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병구 씨가 물었다.

“할머니, 어디서 편지라도 왔어요?”

“응, 서방한테 온 편지야.”

돌아가신 남편에게 온 편지라니. 희경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더 심해지는 듯했다. 그런데 병구  씨에게 그 낡은 지갑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지갑, 공주 할머니가 우유를 사러 올 때마다 꺼내 드는 지갑이었다.

얼마 후, 연락을 받은 공주 할머니가 슈퍼로 왔다. 그런데 희경 할머니는 자신이 어디에서 지갑을 주웠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그 편지를 읽으면 눈물이 난다는 사실밖에는.

다음 날 아침, 병구 씨의 도움을 받아 희경 할머니는 시들어 가는 동백꽃 화분을 슈퍼 앞으로 내놨다. 그리고 이젠 공주 할머니와 함께 평상에 앉아 있다. 동백나무잎이 햇빛에 반짝였다. 봄이 성큼 와 있었다. 다시 동백꽃을 피우려고.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여성경제신문 조데레사 논술교사·미니픽션 작가
abila315@daum.net

조이풀 미니픽션 작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오랜 세월 아이들에게 국어와 논술을 가르쳐 왔으며 현재도 교육 현장에서 활동 중이다. 미니픽션 작가회 회원으로 매년 무크지에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새벽 6시> , <달팽이의 꿈> , <기적> , <잘 있거라 나는 간다> , <새생명프로젝트> 등이 있으며 미니픽션의 매력에 빠져 꾸준히 연구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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