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하지현 기자 | 저출생 여파와 소비 패턴 변화로 흰 우유 소비가 감소하는 가운데 미국산에 이어 유럽산 우유 관세까지 철폐되면서 국내 유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수입 멸균우유의 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유업계는 늘어나는 경영 부담을 덜기 위해 원유 구매 물량 조정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소비 감소 속 원유 구매량 조정 협상 진행
지난 1월 미국산 우유 관세가 철폐된 데 이어 이달부터 유럽산 우유에도 무관세가 적용되면서 수입 멸균우유의 가격 경쟁력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제품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될 경우 국산 우유의 판매 부담도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멸균우유 수입량은 2019년 처음 1만t을 넘어선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5만1000t을 기록했다. 멸균우유는 유통기한이 길고 보관이 쉬운 데다 가격 경쟁력까지 갖춰 베이커리와 카페 등을 중심으로 사용이 확대되고 있다.
실제 수입 멸균우유 가격은 국산 신선우유의 60% 수준이다. 폴란드산 멸균우유 '믈레코비타 갓밀크'(1L)는 대형마트에서 1900원 안팎에 판매되는 반면, 같은 용량의 국산 신선우유는 3000원가량이다.
문제는 수입산 공세가 커지는 상황에서도 국내 유업체들이 소비 감소에 비해 많은 원유를 구매해야 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낙농가와 유업체는 지난달 30일부터 내년부터 2028년까지 적용될 원유 용도별 구매 물량 조정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번 협상은 2023년 도입된 용도별 차등가격제에 따른 것으로, 음용유용 원유를 최대 4만3000t 감축하고 줄어든 물량을 가공유용으로 전환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유업계는 실제 소비 규모를 반영해 음용유 구매 물량을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음용유 기준량은 약 194만1000t이지만 실제 수요는 약 161만t 수준으로 30만t 이상이 초과 공급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실제 흰 우유 소비는 감소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2.9㎏으로 전년보다 9.5% 감소하며 1980년대 후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2021년 26.6㎏이던 소비량은 2024년 25.3㎏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감소 폭이 더욱 확대됐다.
업계는 출산율 하락에 따른 영유아 인구 감소와 음료 시장 다변화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커피와 탄산음료, 식물성 대체음료 소비가 늘면서 전통적인 흰 우유 소비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실제 소비 반영한 구매 물량 조정 관심
남는 원유 처리도 유업계의 부담이다. 유업체들은 재고 원유를 탈지분유와 전지분유 등으로 가공해 보관하고 있지만, 국내산 분유는 수입산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재고 처리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계약에 따라 일정 물량 이상의 원유를 구매해야 하는 쿼터제가 유지되면서 실제 수요보다 많은 원유를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소비 감소와 수입산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실제 수요를 반영한 원유 구매 물량 조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가 이번 협상의 핵심으로 꼽히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농축산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10여 년 전부터 관세가 단계적으로 인하되고 있다"며 "수입 물량이 늘더라도 곧바로 가격 인하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낙농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한스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