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갈등의 대부분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발생합니다. 심리 호신술이란 자극과 반응 사이 찰나의 공간을 넓혀 타인의 무례함이 내 내면을 침범하지 못하게 막는 단단한 방어벽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는 몸을 지키기 위해 호신술을 배우지만 정작 사회 속에서 마음을 지키는 기술에는 소홀했습니다. 이제 무방비로 상처받는 것을 멈추고 나를 지키는 마음의 무술을 익혀야 할 때입니다. 소중한 자존감을 지켜내고 스스로 마음의 평화를 경영하는 감정의 주권자로 거듭나는 길을 제안합니다. |
누군가의 말에 '긁혔다'면? 발작 버튼은 나의 결핍이다. /구글 제미나이 나노 바나나로 생성한 이미지
지인 임모 씨의 이야기다. 누군가가 가볍게 던진 질문 하나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대기업 다니시잖아요. 여태까지 돈은 얼마나 모았어요?"
이 말을 들은 임씨는 순간적으로 얼굴을 붉히며 날 선 반응을 보였다. "내가 얼마를 모았든 그쪽이 무슨 상관이시죠."
질문한 사람은 당황했다. 악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 직장인의 재테크가 궁금했던 순수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임씨는 왜 이른바 발작 버튼이 눌려 버린 걸까. 그는 왜 상대방의 평범한 질문에 이토록 제대로 '긁힌' 것일까. 그가 텅 빈 통장을 가진 카푸어였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는 번듯하게 돈을 벌고 있었다. 다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모아 둔 돈을 한 번 크게 소진하고 이제 막 다시 종잣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수없이 목격한다. 누군가는 외모를 향한 가벼운 농담에, 누군가는 학벌이나 연애에 대한 일상적인 대화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 도대체 왜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 없는 말에 쉽게 긁히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타인에게서 우리를 거슬리게 하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의 말이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말과 행동을 통해 내면에 숨겨둔 나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곤 한다. 타인이 누른 것은 스위치일 뿐 폭발물을 매설해 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진실이다.
타인의 입을 빌려 나의 결핍을 마주하는 순간
타인의 말 한마디에 과민 반응을 보이며 긁히는 이유는 하나다. 그 말이 내면 깊숙이 억압해 둔 나의 결핍을 정확히 찔렀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에 긁혔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이미 긁히기 쉬운 열등감이나 생채기가 존재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임씨의 사례를 들여다보자. 그의 무의식 속에는 "내 연차와 대기업 직함에 걸맞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야 해" 혹은 "언제 다시 처음부터 돈을 모으지"라는 조바심과 압박감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압박감의 기저에는 현대 사회가 주입한 정상성의 신화가 도사리고 있다. 특정 나이, 특정 직업에 도달하면 마땅히 이뤄야 할 것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기준은 우리 내면에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상대방의 질문은 사실 타인이 던진 공격이 아니었다. 임씨 스스로 매일 자신에게 던지며 괴로워하던 내면의 목소리가 상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라고 부른다.
투사는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생각·결핍을 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이를 타인이나 외부 환경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방어기제다.
임씨는 스스로의 재정 상태에 대한 불안과 수치심을 직면하는 대신 상대방을 무례하게 선을 넘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다. 화살을 외부로 돌림으로써 순간적인 자존심은 지켰을지 모르지만 이는 현실을 왜곡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진짜 감정인 수치심·당혹감·불안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분노라는 위장술을 덮어씌워 문제를 회피하게 만든다.
마음의 백그라운드 : 내면을 과부하시키는 미해결 과제들
만약 임씨 내면에 자산에 대한 열등감이나 조바심이 전혀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 중간에 큰일이 있어서 다 쓰고 이제 막 다시 모으기 시작했어요. 갈 길이 머네요."라거나 "자산 질문은 조금 당황스럽네요."라고 유연하게 대처했을 것이다. 감정 동요 없이 넘기거나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경계를 설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정 주제에서 남들보다 유독 크게 긁히며 감정 과잉이 일어난다는 것은 바로 그 지점에 심리적으로 소화되지 않은 미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는 신호다.
독일의 게슈탈트 심리학에서는 이를 미해결 과제라고 부른다. 과거의 상처나 충족되지 못한 욕구는 마음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감정은 계속해서 삶의 전경(지금 당장 내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하게 인식되는 욕구나 감정)으로 떠오르며 현재의 관계를 방해한다.
마치 컴퓨터 백그라운드에 켜져서 시스템 메모리를 갉아먹는 무거운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임씨에게 소진된 자산은 바로 이 시스템을 과부하에 걸리게 만든 미해결 과제였던 셈이다.
발작 버튼 스위치 끄는 메타인지의 힘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을 안고 살아간다. 타인의 말에 긁히지 않는 무적의 정신력을 갖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마음이 긁혀 반사적으로 분노가 튀어나가려는 순간 한 걸음 물러서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 능력이다.
메타인지는 나를 아는 것을 넘어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감정을 주관하는 뇌의 편도체가 욱하고 폭주하려는 순간 이성과 통제를 담당하는 전두엽을 활성화해 나 자신을 제3자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게 만든다.
△알아차림: 누군가의 말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뛰고 욱하는 감정이 올라온다면 즉각적인 반격을 멈춰라. 나의 신체적 변화와 감정 동요를 먼저 인식하는 단계다.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지금 내가 이 말에 심하게 긁혔구나. 이 분노 이면에는 나의 어떤 결핍과 불안이 건드려진 걸까."
△분리: 상대방의 의도와 나의 해석을 철저히 분리하라. 상대는 나를 공격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짠 악당이 아닐 확률이 높다. 그저 눈치가 없거나 무례하거나 호기심이 많았을 뿐이다. 객관적 사실과 나의 주관적 투사를 섞지 마라.
△수용과 재구성: 나의 결핍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지금 모아 둔 돈이 적어서 불안하구나" "나는 내 현재 상황이 부끄럽게 느껴지는구나"라고 자신의 취약성을 스스로 안아 주어라. 내가 나의 결핍을 온전히 인정하는 순간 타인의 말은 더 이상 나를 긁어 대는 발작 버튼이 되지 못한다.
타인의 말에 긁혔다는 것은 내 마음을 돌볼 절호의 타이밍이 왔다는 알람과 같다. 발작 버튼은 내면의 숨겨진 결핍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다. 이를 직면할 때 우리는 반응하는 자에서 주도하는 자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어떤 말에 긁히는 순간을 그저 타인을 탓하는 감정 소모 기회로 날려 버릴 것인가. 아니면 무의식이 쏘아 올린 내면의 결핍을 마주하고 나를 치유하는 성장의 이정표로 삼을 것인가. 선택은 온전히 당신에게 달려 있다.
☞투사=자신의 내면에 있는 불안·결핍·수치심 등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떠넘겨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뜻한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이 대표적인 투사의 예시다.
☞메타인지=생각에 대한 생각 즉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선에서 관찰하고 통제하는 능력이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현재 자신의 감정 상태와 사고방식을 제3자처럼 조망하는 상태를 말한다.
☞미해결 과제=게슈탈트 심리학 용어로 과거에 충족되지 못한 욕구나 온전히 해소되지 않은 감정이 마음의 배경으로 물러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현재의 전경으로 떠오르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현재의 일상과 인간관계를 왜곡하고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여성경제신문 최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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