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식품·제약업계의 차세대 경영인들이 ‘건강기능식품(이하 건기식)’ 사업과의 접점을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대규모 설비투자 등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적은 건기식 사업은 후계자들이 본업의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 경험을 쌓기에 비교적 수월한 영역으로 꼽힌다.
다만 이미 경쟁이 치열해진 시장인 만큼 단순한 사업 진출만으로 성과를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스락>은 차세대 경영인들이 건기식을 신사업 카드로 꺼내든 배경과 과제를 살펴봤다.
건기식 전면에 선 오너 3세들... 본업 밖 신사업 보폭 확대
식품·제약업계에서는 오너 3세들이 건기식 관련 조직과 사업에 배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존 주력 사업의 성장 한계가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건강관리와 웰니스 소비가 확산되며 건기식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에서는 삼양식품과 농심이 대표적이다.
삼양식품은 오너 3세인 전병우 전무를 중심으로 건기식·웰니스 사업을 키우고 있다.
삼양식품은 2024년 5월 1일자로 기존 신사업본부를 폐지하고 헬스케어BU를 신설했으며, 당시 신사업본부를 이끌던 전 전무에게 BU장을 맡겼다.
헬스케어BU 산하에는 헬스케어 연구 조직과 마케팅, 건기식 조직 등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무는 헬스케어BU장으로서 그룹의 미래 사업으로 추진 중인 푸드케어·건기식 사업의 조직 정비와 사업화 과정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은 셈이다.
삼양식품은 이후 지난 5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스핀들’을 선보이며 시장 공략에 나섰다.
농심도 건기식을 비(非)라면 신사업의 한 축으로 두고 있다.
농심은 2020년 건기식 브랜드 ‘라이필’을 출시한 뒤 올해 들어 사업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 3월 화장품 제조 기업 에프아이씨씨의 바이오 뷰티 브랜드 ‘아로셀’과 콜라겐 화장품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4월에는 중국 왕라오지약업회사와 기능식품 상호 도입 협약을 맺으며 라이필 콜라겐 제품의 중국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오너 3세인 신상열 부사장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농심은 2024년 초 미래사업실을 신설하고 신동원 회장의 장남인 신상열 당시 상무를 실장으로 선임했다. 신 부사장은 신사업 발굴과 글로벌 전략, 투자·M&A 등을 맡아왔으며, 올해 부사장 승진과 사내이사 선임으로 경영 보폭을 넓혔다.
신 부사장이 건기식 사업을 직접 총괄하는 구조는 아니지만, 그가 부사장과 사내이사에 오른 가운데 라이필이 화장품 협업과 해외 진출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점은 농심이 건기식을 비라면 사업의 주요 축으로 키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약업계에서도 건기식을 앞세워 소비자 접점 확대에 나서는 흐름이 나타난다.
전문의약품 중심의 사업구조를 보완하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건강관리 제품군을 넓히는 과정에서 오너 3세들이 관련 사업 전면에 배치되는 모습이다.
한독은 지난해 5월 건강기능식품 및 식품 자회사 한독헬스케어를 출범시켰다.
김영진 한독 회장의 장남인 김동한 한독 기획조정실 전무는 한독헬스케어 각자대표로 선임돼 건강기능식품 및 식품사업을 맡고 있다.
한독헬스케어는 테라큐민, 네이처셋, 레디큐 등 기존 브랜드와 기능성 원료를 기반으로 건기식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대원제약도 오너 3세 백인영 본부장이 관련 사업을 이끌고 있다.
백 본부장은 2023년 대원제약 헬스케어사업본부를 맡으며 전면에 나섰다. 이후 2024년 계열사 대원헬스케어 대표이사, 지난해 11월엔 에스디생명공학 대표이사로 잇따라 선임되며 뷰티·건기식 사업에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식품·제약업계의 차세대 경영인들은 건기식을 매개로 기존 주력 사업 밖으로 보폭을 늘리는 모양새다.
진입 장벽 낮은 건기식... 성과는 '별개'
후계 경영진이 건기식 사업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배경에는 여러 시장 흐름과 제도적 요인이 맞물려 있다.
우선 건기식 소비 기반은 확대되는 흐름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건기식 구매 경험률은 83.6%로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평균 구매액은 줄었지만 구매자는 늘어나는 ‘실속형 소비’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건기식 소비가 특정 연령층이나 가족 단위 소비에 머물지 않고 개인의 일상적 건강관리 루틴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공동 취식은 줄고 개인 취식은 늘면서 건기식 소비도 개인화되는 추세다. 시니어뿐 아니라 베이비·키즈, 10대 가구에서도 구매 경험률이 증가하며 소비층도 넓어지고 있다.
건기식협회 관계자는 "건강기능식품을 구매 및 섭취하는 인구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며 "합리적이고 실속형 소비 패턴도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식품·제약업계 입장에서는 웰니스 트렌드에 따라 형성된 소비 기반이 건기식 사업을 검토하는 배경으로 작용한다.
식품사는 기존의 제조 역량, 유통망 등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고 제약사는 건강·기능성 이미지를 바탕으로 일반의약품 밖의 소비자 건강관리 영역으로 제품군을 넓힐 수 있다. 기존 주력 사업과 완전히 동떨어진 분야가 아니라는 점도 사업 확장 부담을 낮추는 요소다.
해외 판로 확대 가능성도 건기식 사업의 확장 요인으로 꼽힌다. aT 식품산업통계정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전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 규모는 1252억6540만달러로, 2018년 이후 연평균 5.4% 성장했다. 중국 시장은 2022년 294억7060만달러로 전년 대비 5.8% 증가했고, 일본 시장도 96억6400만달러로 2.4% 성장했다.
또한,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 건기식 수출액은 2020년 2264억원에서 2024년 3802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이너뷰티' 확장 흐름도 힘을 보탠다.
피부·미용 수요가 바르는 화장품을 넘어 먹는 제품으로 넓어지면서 건기식의 활용 범위가 뷰티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화장품이 피부 관리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건강과 아름다움을 함께 관리하는 개념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넥스트 K뷰티로 이너뷰티가 주목받으면서 화장품과 건강기능식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기술력이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도 변화도 건기식 사업 확장 여지를 키우고 있다.
식약처는 지난해 맞춤형건강기능식품판매업을 신설하는 내용의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일정 기준을 갖춘 판매업소가 전문가 상담을 바탕으로 건기식을 소분·조합해 판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맞춤형 건기식 판매가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개인 맞춤형 제품 구성과 상담 기반 판매가 확대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관련 수요가 커질 경우 식품·제약사들이 보유한 원료와 브랜드의 활용 범위도 넓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건기식은 ODM·OEM 등 위탁 생산 방식을 활용할 수 있어 대규모 설비투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후계 경영진 입장에서는 낮은 진입 장벽을 바탕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신사업 추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영역이라는 평가다.
진입이 쉬운 만큼 시장 반응과 성과 검증도 빠르게 따라붙는다. 특히 국내 건기식 시장의 성장세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은 부담 요인이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건기식 시장 규모는 5조 9626억 원으로 전년 대비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시장 외형만 놓고 보면 사실상 성숙 단계에 접어든 모습이다.
시장 둔화와 함께 홍삼, 프로바이오틱스, 비타민 등 주요 기능성 원료를 중심으로 경쟁도 치열하다. 이미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시장에 진입한 만큼 제품과 브랜드 간 차별화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결국 건기식은 차세대 경영인이 신사업 경험을 쌓기엔 좋은 분야일지 몰라도 실질적인 '성과'를 증명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제품 출시나 단기 매출 같은 착시 효과보다는 반복구매율, 브랜드 신뢰도 구축, 확실한 수익성 확보, 효율적인 채널 전략 등이 장기 성패를 가르는 진짜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건기식은 시장 진입 자체보다 진입 이후의 지속 가능성이 훨씬 중요한 시장”이라며 “기능성 차별화와 가격 경쟁력, 유통 채널별 전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적인 경영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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