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어머니는 감옥에, 전두환 처남은 풀어준 '엄정한 법 집행'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정상학(鄭相鶴, 1937~) 항목에서 가장 생생한 장면은 1989년 문익환(1918~1994) 목사 방북사건 재판이었다. 방청석에서 야유가 터지자 정상학은 재판연기를 선언하고 법정을 나서다가, 야유가 다시 터지자 돌아와 큰소리로 외쳤다.
"경찰, 정상학이 어쩌고 한 사람 잡아."
판사가 법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거론한 시민을 직접 체포하라고 명령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정상학이라는 인물의 가장 적나라한 자화상이다.
1937년 서울 출생, 서울법대 14회의 화려한 동기들
정상학은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0년 서울법대를 졸업했는데, 동기로는 이수성(전 국무총리), 김용준(전 헌법재판소장), 윤영철(전 대법관)이 있다. 1962년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1964년 부산지법에서 판사생활을 시작했다.
세계사 속의 동류, '봐주는 힘'의 행사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나치독일 말기 일부 법관들은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체제 핵심인사의 범죄에는 관대하고 일반 저항자에게는 가혹한 이중 잣대를 보였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정상학의 역할을 정확히 짚는다.
"이전의 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들이 주로 처벌의 힘의 강약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였다면, 정상학은 '봐주는 힘'의 중요성이 부각된 시기에 그 힘을 행사했다."
처벌하는 권력과 봐주는 권력, 그 두 가지를 자유자재로 휘두른 것이다.
1969년, 사형 두 건, 그리고 46년·49년 만의 무죄
정상학의 반헌법 행위의 첫 정점은 1969년이다.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배석판사로 권재혁과 이일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권재혁은 1969년 실제로 처형됐다. 2014년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46년 만이었다. 같은 해 이수근 위장간첩사건에서도 주심으로 사형을 선고했다. 이수근은 항소기간을 놓쳐 형이 확정됐고, 1969년 7월 2일 황급히 사형이 집행됐다. 정상학은 훗날 회고록에서 "간첩이란 데 의문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가발과 가짜 콧수염이 증거로 나왔더군요"라고 말했다. 해외여행을 가며 가발을 쓴 것이 간첩의 증거가 됐다. 2018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49년 만이었다.
1985년 서창덕 사건, 17년 만에 다시 잡혀 무죄까지 24년
광주고법 부장판사 시절 정상학은 서창덕 간첩조작사건 항소심을 단 한 차례 심리만으로 기각했다. 1967년 납북됐다 귀환한 어부가 17년 뒤 다시 잡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었다. 2008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1988~1989년, 김근태 사건 지연, 그리고 의문사 유가족 구속
서울고법 부장판사 정상학은 김근태(1947~2011) 고문경관 재정신청을 전임자 이철환과 함께 1년 넘게 방치해 직무유기로 고발당했다. 이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가 된 그는 군에서 의문사한 아들을 둔 어머니 임분이와 오영자에게 법정소란을 이유로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5공비리의 핵심 전두환 처남 이창석에게는 횡령·탈세 29억 원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조차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판결이었다.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북, 변호사 없는 재판, 법정모욕죄로 아들 체포
문익환 목사 방북사건에서 정상학은 변호인단 전원이 퇴장한 상태로 증거조사를 강행했고,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과 방청객을 법정소란으로 감치 10일에 처했다. 그리고 야유가 터지자 직접 경찰에 체포를 명령했다. 항소심은 이 1심 판결을 위법하다며 파기했다.
대구지법원장. 사법개혁 주장한 판사를 보복으로 탈락시키다
대구지법원장 시절 신평 판사가 사법부 비리를 언론에 고발하자, 정상학은 그를 음해해 재임용에서 탈락시켰다. 그러나 몇 달 뒤 정상학 자신도 부동산 투기와 차명보유로 법복을 벗었다.
변호사가 되어, 전두환 측근 변호, "5,000만 원도 떡값"
변호사가 된 정상학은 전두환 비자금 사건에서 안현태를 변호하며 "5,000만 원도 당연히 떡값"이라 발언해 방청객의 웃음을 샀다. 소망교회 장로로서는 교회내부 비판자를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압박하는 데도 앞장섰다.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사법권의 '이중 잣대'는 가장 위험한 사법부패로 평가된다. 권력자에게는 관대하고 저항자에게는 가혹한 그 잣대가, 정상학의 법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경찰, 정상학이 어쩌고 한 사람 잡아"라는 그 외침을 떠올렸다. 권력에 대한 비판을 즉각 체포로 응답하는 그 반사작용이, 35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것은 아닌지를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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