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최근 은행권에서 대규모 금융사고가 잇따르면서 사람 중심의 심사·모니터링 체계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기존에 알려진 수법조차 수년간 적발하지 못한 사례가 이어지는 데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악용한 금융사기까지 빠르게 확산하면서 AI 기반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48억원, 40억원 규모의 금융사고를 공시했다. 두 사고 모두 할인 분양받은 상가를 정상가에 계약한 것처럼 허위 계약서를 꾸며 대출금을 부풀린 ‘할인분양 사기’로 확인됐다.
두 사례 모두 사고 발생 후 약 2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수사기관의 자료 요청 이후 은행이 사고를 인지했으며, 그동안 해당 대출은 정상 상환돼 내부 모니터링에서도 별다른 이상 신호가 포착되지 않았다.
유사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에서도 각각 21억원, 39억원 규모의 외부 사기 피해가 발생했고, 지난해 한 해 동안 은행권에서 발생한 전체 금융사고 규모는 4318억9700만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할인분양 사기는 금융권에서 수년 전부터 지속돼 온 수법이지만, 반복되는 사고는 기존 심사 체계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심사 인력의 경험과 육안 검증에 의존하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허위 계약서가 실제 서류와 유사하게 작성될 경우 개별 심사 단계에서 진위를 판별하기 쉽지 않고, 대출 이후에도 연체나 부실이 발생하지 않으면 사후 모니터링 대상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금융연수원 손재성 교수는 “1차적으로 영업점에서 심사 후 심사역의 현장 확인 및 심사위원회의 최종 결정으로 대출이 이루어진다”며 “이 과정에서 서류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영업점이 걸러내지 못한 정보를 심사위원들이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부천 새마을금고 불법 대출 사건에서는 할인분양 방식 등을 활용한 242억원 규모의 불법 대출이 수년에 걸쳐 반복됐지만 조직적인 범행 구조 속에서 내부 적발이 이뤄지지 못했다. 심사역이 수십에서 수백 건에 이르는 대출 서류를 검토하는 현행 구조에서는 모든 이상 징후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평가다.
여기에 은행권의 지속적인 인력 감축도 심사 공백을 키우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비대면 금융 확산과 비용 효율화 기조 속에 영업점과 심사 인력이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대출 심사와 사후 관리 대상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제한된 인력이 방대한 서류와 거래를 검토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기존 방식만으로 정교해지는 금융사기를 적시에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인력 중심의 심사 체계를 유지하기보다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와 자동 검증 시스템을 결합해 심사 효율성과 정확도를 동시에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금융사기 수법은 AI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해 공공기관 관계자의 얼굴과 음성을 합성하거나 기업 대표 음성을 복제해 송금을 유도하는 방식이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문서 작성이나 음성·영상 제작 비용이 크게 낮아지기 때문에 대량의 맞춤형 피싱 공격도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방어 체계 역시 AI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I 기반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은 대규모 거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사람이 놓치기 쉬운 이상 패턴을 탐지할 수 있다. 동일 시행사로 집중되는 대출 신청, 분양가 대비 과도한 감정가, 문서 내 서식이나 날인 불일치 등 복합적인 위험 신호를 동시에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화여대 경영학과 채상미 교수는 “AI가 기존 금융 규제와 보안 체계가 지금 전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스템 리스크를 가지고 왔다”며 “금융 시스템 측면에서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위원회 정선인 디지털금융총괄과장도 “보이스피싱이나 불법 사금융, 주가 조작이나 보험 사기 등 금융 범죄 징후도 사전에 AI 에이전트가 적발하고 잠재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AI 시대 금융의 책임 있는 혁신을 위해 미리 리스크를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는 관리 감독 역량도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국내 금융권도 관련 시스템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우리은행은 기존 시나리오 기반 탐지를 넘어 AI가 새로운 유형의 금융사고를 스스로 학습해 탐지하는 FDS를 구축 중이며, 카카오뱅크는 AI와 통신 인증을 결합한 이상거래 탐지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역시 온라인 게시글과 영상, 문자 데이터를 활용해 불공정거래 가능성을 분석하는 AI 시스템을 도입했다.
해외에서도 AI 활용 사례는 확대되는 추세로, 페이팔(PayPal)도 실시간 AI 기반 탐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AI가 단순 업무 자동화를 넘어 금융사기 대응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AI만으로 모든 금융사기를 차단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은행 간 데이터 공유가 제한될 경우 탐지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고, 감정평가사나 브로커, 내부 직원이 공모하는 조직적 범죄는 제도적 보완이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손재성 교수는 “AI시스템이 단순 서류만 보고 평가할 경우 영업 직원이 대출을 밀어붙이면 더 위험할 수 있다”며 “현장 직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금융권에서는 AI를 심사·사후관리 과정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생성형 AI 확산으로 금융사기의 규모와 속도가 빠르게 커지는 만큼, 사람 중심의 기존 심사 체계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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