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티즈의 완성형 이족 보행 휴머노이드 'AI 사피엔스'가 지난 5월에 열린 제2회 AI 로봇 M.AX 얼라이언스 컨퍼런스에서 보행 시연을 하고 있다. 사진=강민석 기자
전기차 공장이 로봇 공장으로 바뀌고 있다. 테슬라와 현대차그룹,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산라인에 올리기 시작하면서 로봇 경쟁의 판도 달라지고 있다. 사람처럼 걷고 뛰는 시연은 더 이상 승부처가 아니다. 이제 시장은 묻는다. "그 로봇을 몇 대나, 얼마에, 얼마나 고장 없이 만들 수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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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는 2035년 휴머노이드 시장을 380억달러로 전망
모건스탠리는 2050년 휴머노이드 운용 대수 10억대 가능성 제시
피겨에이아이 '봇큐' 생산시설은 연간 최대 1만2000대 생산 목표
어질리티 로보틱스 '로보팹'은 연간 1만대 이상 생산 체제 목표
현대차그룹, 2028년 미국 조지아 공장에 연 3만대 규모 로봇 생산 목표
휴머노이드 산업의 승부처는 하드웨어와 원가, 공급망 통제력
액추에이터, 감속기 등 구동계 부품이 원가의 핵심
액추에이터 원가 비중이 산업용 로봇 대비 최대 73%까지 상승
중국은 액추에이터와 로봇 핸드 등 부품 공급업체 수에서 강점
양산 경쟁은 부품 단가와 납기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
휴머노이드 경쟁은 미중 산업 패권 경쟁과 연결
미국은 AI, 반도체, 소프트웨어에 강점
중국은 하드웨어 양산, 원가 경쟁력, 부품 공급망에서 우위
한국은 로봇 밀도 세계 1위지만 실증을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과제
정부와 기업이 휴머노이드 대응 및 투자 확대 중
K-휴머노이드 얼라이언스, 2029년부터 연간 최소 1000대 생산 목표
현장 데이터 축적과 부품 내재화가 경쟁력의 핵심
피지컬 AI는 실제 환경에서 반복 데이터 쌓는 것이 중요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과 데이터센터 구축 필요성 제기
휴머노이드 산업을 AI 혁명의 연장선으로만 보는 것은 절반의 해석이다. 승부처는 하드웨어다. 로봇의 가격은 액추에이터, 감속기, 배터리, 센서, 카메라모듈, 정밀가공 부품이 좌우한다. AI가 아무리 정교한 명령을 내려도 관절이 버티지 못하면 로봇은 일할 수 없다. 휴머노이드가 산업이 되려면 먼저 '잘 걷는 로봇'이 아니라 '반복 생산 가능한 기계'가 돼야 한다.
장밋빛 전망은 이미 쏟아졌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 휴머노이드 시장을 380억달러로 봤고, 모건스탠리는 2050년 운용 대수 10억대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시장은 전망으로 열리지 않는다. 공장과 물류센터에서 사람의 작업을 대체하거나 보완할 만큼 가격을 낮추고 내구성을 높이며 현장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 휴머노이드의 다음 경쟁은 기술 시연이 아니라 양산 원가와 공급망 통제력이다.
시연의 시대 끝, '연 1만대 공장' 경쟁 시작
휴머노이드 경쟁은 시연장을 지나 공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로봇이 걷고 뛰고 균형을 잡는 장면만으로는 더 이상 기술력을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은 이제 얼마나 많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지를 본다.
미국 휴머노이드 전문기업인 피규어에이아이(Figure AI)는 전용 생산시설 '봇큐(BotQ)'를 공개하면서 1세대 생산라인에서 연간 최대 1만2000대의 로봇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시제품이 아닌 양산 제품으로 전환하기 위한 대량 생산 시설이다. 장기적으로 자사 로봇을 투입해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공장'으로 확장한다는 구상이다.
어질리티 로보틱스(Agility Robotics)는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에 7만ft²(약 6503㎡) 규모의 '로보팹(RoboFab)'을 열었다. 물류용 이족보행 휴머노이드 '디짓(Digit)'을 양산하기 위한 전용 생산 시설로 연간 1만대 이상 생산 체제를 목표로 한다.
원엑스 테크놀로지스(1X Technologies)도 캘리포니아 헤이워드에 5만8000ft²(약 5388㎡) 규모의 '네오(NEO)' 생산공장을 가동하며 실제 생산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문제는 생산 능력 이후다. 휴머노이드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으려면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데 그치지 않고 공장 안에서 생산성을 증명해야 한다.
비엠더블유(BMW)의 사례가 현재 양산 경쟁의 방향을 보여준다. 비엠더블유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파턴버그 공장에서 피겨에이아이의 차세대 휴머노이드 '피겨 03(Figure 03)'을 물류 시퀀싱(조립 순서에 맞춰 부품을 분류하고 생산라인에 공급하는 작업)에 투입할 예정이다. 앞서 '피겨 02(Figure 02)'는 같은 공장에서 10개월 동안 실증을 진행하며 하루 10시간씩 9만개 이상의 부품을 옮겼다. 누적 가동 시간만 약 1250시간에 달했다. 휴머노이드가 전시용 시연을 넘어 실제 자동차 생산 공정의 일부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 공장에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의 아틀라스(Atlas) 휴머노이드를 투입할 계획이다. 같은 해 연 3만대 규모의 로봇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초기 작업은 부품 순서 배치 등에서 시작해 2030년에는 부품 조립과 고하중·반복 작업으로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로봇업계 관계자는 "휴머노이드 경쟁은 더 이상 시연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며 "완성차 공장처럼 공정이 표준화된 현장에서 먼저 양산성과 활용성을 검증하는 기업이 초기 시장을 선점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래픽=이찬희 기자
로봇의 심장은 관절···휴머노이드 원가는 액추에이터가 쥔다
휴머노이드가 공장에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양산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많이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싸게, 균일하게 만드는 일이다. 수십 개 관절을 정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휴머노이드의 원가 부담은 구동계 부품에 집중된다. 양산 경쟁의 핵심이 액추에이터와 감속기로 옮겨가는 이유다.
액추에이터는 로봇의 관절과 손가락을 실제로 움직이는 구동장치다. AI가 로봇의 두뇌라면, 액추에이터는 근육에 해당한다.
산업용 로봇에서 액추에이터의 원가 비중은 50~60% 수준이다. 더 정교한 움직임이 필요한 휴머노이드에서는 이 비중이 최대 73%까지 높아진다. 기존 산업용 로봇에서도 감속기 32%, 모터 22% 등 구동계 부품이 원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로봇 가격을 낮추려면 결국 관절을 움직이는 부품값을 낮춰야 한다는 뜻이다.
원가 부담이 큰 이유는 액추에이터가 단순한 모터 조립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액추에이터는 모터, 감속기, 센서, 베어링, 리드스크루, 제어회로가 좁은 공간 안에 결합된 복합 장치다. 보행과 균형 제어에는 출력과 내구성이 필요하고, 손가락 움직임에는 소형화와 정밀 제어가 동시에 요구된다. 같은 구동계 부품이라도 다리와 팔, 손에 들어가는 부품의 조건이 다른 만큼 설계와 생산 난이도도 높다.
특히 손은 휴머노이드의 활용 범위를 가르는 부품으로 꼽힌다. 걷는 것만으로는 산업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다. 물건을 집고, 돌리고, 끼우고, 누르고, 분류해야 실제 생산성과 연결된다. 로봇 핸드와 손가락 관절, 힘 제어 센서, 촉각 센서가 새로운 경쟁 영역으로 떠오르는 이유다.
부품 수가 많고 정밀도 요구가 높을수록 공급업체 풀이 원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같은 부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많아야 가격을 낮추고, 대량 생산에 필요한 납기와 품질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가 휴머노이드 밸류체인 주요 기업 100곳을 분류한 결과, 산업부품 영역은 중국·대만 24곳, 미국·캐나다 19곳, 일본·한국 등을 포함한 아시아 기타 지역 11곳,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10곳으로 집계됐다.
특히 액추에이터와 로봇 핸드 등 구동계 하드웨어에서는 중국의 공급업체 수가 두드러진다.
중국은 선형 액추에이터 30곳, 회전 액추에이터 27곳, 로봇 핸드 25곳의 공급업체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휴머노이드 양산 경쟁이 완성품 조립보다 부품 단가와 납기 싸움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휴머노이드 양산의 병목은 완성품 조립보다 관절과 손, 구동계 부품에서 먼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공급업체 풀이 넓은 국가는 단가와 납기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지만, 핵심 부품 조달이 막히면 생산 확대는 곧바로 원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액추에이터와 감속기, 로봇 핸드, 정밀가공 부품을 누가 더 싸고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양승윤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로봇의 가격을 낮추려면 액추에이터 단가를 낮추는 것이 핵심"이라며 "휴머노이드 양산 경쟁에서는 관절과 손가락을 움직이는 구동계 부품의 원가와 공급망 확보 능력, 가격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은 원가, 미국은 AI···한국은 제조 현장서 시험대
휴머노이드 경쟁은 미중 산업 패권 경쟁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AI 모델과 반도체, 컴퓨팅 인프라, 로봇 소프트웨어에서 앞서 있다. 반면 중국은 하드웨어 양산과 원가 경쟁력, 부품 공급망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움직이는 AI'라면 미국은 두뇌에서, 중국은 몸체와 생산비에서 우위를 노리는 구조다.
산업용 로봇 시장은 이미 아시아 중심으로 재편돼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54만2000대로 10년 전의 두 배를 넘었다. 신규 설치의 74%는 아시아에서 이뤄졌다. 중국은 2024년 29만5045대를 새로 설치해 전 세계 신규 설치의 54%를 차지했다. 운용 중인 산업용 로봇도 약 200만대로 일본의 4.5배 수준이다.
중국이 로봇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제조업 구조 변화가 있다. 저임금 노동력에 기대던 생산 모델은 인구 감소와 임금 상승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25년 말 중국 인구는 14억489만명으로 전년보다 339만명 줄었다. 제조 현장의 인력 부족과 비용 상승을 자동화로 흡수해야 하는 압력이 커진 것이다. 휴머노이드는 중국에 단순한 신산업이 아니라 제조 경쟁력을 방어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한국은 다른 시험대에 서 있다. 한국은 로봇을 가장 촘촘하게 쓰는 제조 국가 중 하나다. IFR은 2024년 기준 한국의 제조업 로봇 밀도가 근로자 1만명당 1220대로 세계 1위라고 밝혔다. 전자와 자동차 중심의 고도화된 생산라인은 휴머노이드 실증에 유리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실증을 실제 생산성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이다.
정부도 휴머노이드 대응에 나섰다. K-휴머노이드 얼라이언스는 2028년까지 산업용 휴머노이드 로봇 파운데이션 AI 모델을 개발하고, 2029년부터 연간 최소 1000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그룹도 새만금에 AI 데이터센터와 로봇 제조공장 등을 구축하는 투자 계획을 내놨다. 다만 휴머노이드 경쟁의 승부는 투자 규모보다 현장 데이터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피지컬 AI는 실제 세계에서 실패하고 다시 학습해야만 강해진다. 같은 물체라도 공장과 물류센터, 가정에서 잡는 방식이 다르고, 바닥 상태와 조명, 작업 속도도 모두 다르다. 휴머노이드가 사람을 대신하거나 보완하려면 이 변수를 견디며 반복 작업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한재권 한양대학교 교수는 "대한민국만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태계를 조성하지 않으면 로봇산업 주권을 빼앗길 수 있다"며 "로봇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해 데이터 종속을 막고, 부품 내재화와 제조업 데이터 상용화, 데이터센터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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