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건설 현장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자재를 쌓아두고 콘크리트를 타설하며 먼지와 소음을 내뿜던 과거의 방식 대신, 공장에서 정밀하게 제작된 주거 유닛을 현장에서 레고 블록처럼 조립하는 시대가 본격화됐다. 이른바 ‘모듈러 건축(Modular Construction)’이 국내 공동주택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건설업계의 만성적인 인력 부족, 고령화 현상, 그리고 강화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 속에서 모듈화가 공동주택 시장에 가져올 파급력과 당면 과제를 짚어본다.
멈추지 않는 공장 라인… ‘공기 단축’과 ‘기후 리스크’ 두 토끼 잡다
모듈러 공법의 가장 큰 강점은 공사 기간(공기)의 획기적인 단축이다. 기존 철근콘크리트(RC) 공법은 기초 토목공사가 완료된 후에야 상부 골조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 반면, 모듈러 공법은 현장에서 땅을 파는 동안 공장에서는 주거 모듈을 동시에 생산한다.
건설업계 관계자 A씨
"공장 생산과 현장 토목공사가 동시에 진행되다 보니 전체 공기를 기존 대비 30%에서 최대 50%까지 줄일 수 있다며, 이는 곧 시행사의 금융 비용 절감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현장 기후 리스크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최근 이상기후로 인한 우천, 혹한, 혹서로 현장이 멈춰 서는 일이 잦아졌지만, 통제된 실내 공장에서 제작되는 모듈러 주택은 예정된 공정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유연하게 소화해 낸다.
‘민원·사고 줄고 환경은 살리고’… 건설업계 ESG 마스터키
건설 현장의 고질적인 문제인 안전사고와 환경 민원 해결에도 모듈화가 해법으로 제시된다. 현장 작업의 상당 부분이 안전한 공장 내부로 흡수되면서 추락 등 고위험 고소 작업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환경적 이점도 뚜렷하다. 자재를 규격화해 공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산먼지, 소음, 진동이 최소화된다. 인근 주민과의 갈등 요소가 원천 차단되는 셈이다. 아울러 건설 폐기물 발생량도 대폭 줄어들며, 향후 건물을 해체할 때도 구조체를 재활용할 수 있어 ‘탄소 중립’ 실현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현장의 노동 구조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국내 건설 현장의 숙련공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 의존도 심화로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 많다"라며 "제조업 기반의 모듈러 공법은 균일한 마감과 단열 성능 등 고품질의 주거 환경을 표준화하여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성냥갑 아파트 우려와 높은 초기 비용… 대중화 위한 과제는?
이러한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공동주택 시장에서 모듈러 공법이 완벽히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경제성 확보의 한계: 현재 모듈러 주택은 공장 설비 투자비와 운송비 등으로 인해 기존 RC 공법 대비 공사비가 약 10~20%가량 높게 책정되는 편이다. 대량 생산 체계가 갖춰지기 전까지는 가격 경쟁력 확보가 쉽지 않다.
디자인의 획일성: 도로 교통법상 운송 가능한 모듈의 크기(높이 4m, 폭 3.5m 내외) 제한으로 인해, 내부 평면 설계가 단조로워지거나 획일화된 구조에 갇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층화 기술 및 제도적 걸림돌: 국내 아파트 시장의 주류인 고층(20층 이상) 공동주택에 적용하기에는 아직 내진·내풍 구조 안정성 및 내화 기준 충족을 위한 기술적·제도적 보완이 더 필요한 실정이다.
[전망] 청년주택에서 민간 분양으로… 필연적인 미래 주거 모델
현재 국내 모듈러 공동주택은 주로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청년임대주택, 군 관사, 학생 기숙사 등 중소규모 주택을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형 건설사들이 잇따라 모듈러 전문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점차 중고층화 및 민간 분양 아파트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모양새다.
국토교통부 역시 모듈러 주택 활성화를 위해 용적률 및 높이 제한 완화 등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정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구 구조 변화와 공사비 상승이 지속되는 한 모듈화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라고 입을 모은다. 건설업계 한 전문가는 "모듈러 공법은 단순한 시공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건설업을 제조업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혁신하는 첫걸음"이라며, "단점들을 보완해 대량 공급 체계가 안정화된다면 미래 공동주택의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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