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코스트코(Costco)의 마법이 있다. 주말 아침, 분명 떨어져 가는 우유 한 통과 계란이나 사 올 요량으로 매장에 들어선다. 그런데 계산대를 나설 때 쯤이면 사람 몸통만 한 감자칩, 당장 필요도 없는 전동 드릴, 정원용 카누까지 카트에 실려 있다. 영수증엔 500달러가 찍혀 있고, 정작 사려던 우유는 깜빡했다.
코스트코는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가 말하는 트랜서핑(Transurfing)의 핵심 개념, 이른바 ‘펜듈럼(Pendulum)’의 완벽한 축소판이다. 펜듈럼이란 다수의 사람이 같은 생각과 행동을 반복할 때 생겨나는 독자적인 에너지 구조체다. 사람들이 몰릴수록 펜듈럼의 힘은 커지고, 덩치를 키운 펜듈럼은 더 많은 사람의 지갑과 혼을 쏙 빼놓는다.
동네 한인마트 사장님이 코스트코라는 거대한 펜듈럼을 이겨보겠다고 매장 한가운데 100롤짜리 두루마리 휴지 산더미를 쌓아놓고 가격 전쟁을 벌이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파산이다. 현명한 동네 마트는 거인과 싸우지 않는다. 대신 코스트코에는 없는 갓 짠 참기름, 깻잎, 얇게 썬 삼겹살을 판다. 거인의 존재를 인정하되, 내 밥그릇을 챙기는 영리한 공존이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도 거대한 코스트코가 문을 열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다. 삼성전자와 두나무를 비롯한 굵직한 국내 기업들이 최근 이 글로벌 달러 코인 컨소시엄에 합류했다. 이들의 선택은 국가 간 송금과 결제가 실시간으로 뚝딱 처리되는 글로벌 초대형 매장에 물건을 대기 위해 ‘프리미엄 멤버십’을 끊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기업의 생존 본능이다. 복잡한 환전 비용과 느려터진 금융 규제라는 동네 골목길에서 벗어나, 뻥 뚫린 8차선 고속도로에 올라타겠다는 데 어느 기업이 마다하겠는가.
한데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한국 정책 당국의 속내는 복잡하다. “달러 코인에 시장을 다 내주면 원화 주권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며 사색이 됐다.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이 빠지기 쉬운 첫 번째 함정, 즉 ‘과도한 중요성(Importance)’의 부여다.
문제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집착하는 순간, 자연의 섭리인 ‘균형력(Balancing Force)’이 작동해 오히려 상황을 반대 방향으로 엎어버린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국가적 자존심의 상징’으로 격상시켜 부랴부랴 엉성한 코인을 찍어내면, 아무도 쓰지 않는 디지털 쓰레기가 된다. 반대로 원화 주권을 지키겠다고 쇄국정책을 펼치며 모든 것을 틀어막으면, 기업과 소비자들은 규제를 피해 알아서 달러 코인이라는 코스트코로 봇짐을 싸서 떠난다. 원화를 지키려다 원화를 죽이는 촌극이다.
정부가 법으로 “무조건 원화 코인을 써라”라고 강제하는 것은, 내 가게에 손님을 끌어오기 위해 몽둥이를 드는 ‘내부의도(Internal Intention)’다. 폭력적이고 비효율적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외부의도(External Intention)’, 즉 현실이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멍석을 까는 일이다.
코스트코(달러 코인)가 국제 무역과 대규모 금융 거래를 담당하게 놔두면 된다. 대신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국내 소상공인의 뼈아픈 카드 수수료를 없애주고, 플랫폼 창작자들에게 빛의 속도로 수익을 정산해주며, 명동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환전소에 줄 서지 않고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삼겹살과 깻잎’이 되어야 한다. 쓸모가 있으면 굳이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쓴다.
상황이 이토록 명확한데도 제도가 헛도는 이유는 또 다른 펜듈럼들 때문이다. 여의도와 세종시의 풍경을 보자. 금융위원회는 금융 안정을,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권한을, 기획재정부는 세제를 쥐고 “누가 이 구역의 대장이냐”며 으르렁거린다. 펜듈럼은 갈등을 먹고 자란다. 각 기관이 밥그릇 싸움에 에너지를 쏟는 동안 정작 중요한 제도는 표류한다. 발행자의 건전성은 금융당국이, 상환 준비금 관리는 한국은행이, 소비자 보호는 감독 체계가 나누어 맡는 실용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선 안전빵으로 은행에게만 원화 코인 발행을 독점시키자는 얘기도 나온다. 물론 은행은 안전하다. 하지만 핀테크나 혁신 기업들을 단순한 하청업체로 밀어내면, 원화 코인은 그저 스마트폰 앱에 찍힌 ‘은행 예금의 디지털 복제품’에 머물고 만다. 이름만 번지르르한 ‘스테이블’은 아무 의미가 없다. 진정한 안정성은 1원짜리 코인을 가져오면 언제든 진짜 1원으로 바꿔주는 묵직한 상환 능력과, 준비금을 굴려 나온 이자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투명한 룰에서 나온다. 발행사들이 수수료나 편의성보다 막대한 준비금의 ‘이자 따먹기’에 맛을 들이는 순간, 시스템은 다시 부패한 펜듈럼으로 전락한다.
트랜서핑에서 미래는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은 ‘가능태 공간(Alternative Space)’이다. 우리는 규제 논쟁만 하다가 달러 코인에 안방까지 다 내줄 수도 있고, 설익은 원화 코인을 내놨다가 신뢰만 잃고 폭망할 수도 있다. 가장 현명한 세 번째 길은 달러 코인과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우리의 수요에 맞는 제한된 분야에서 원화 코인의 유용성을 점진적으로 입증해 나가는 것이다.
파도는 막아서는 자를 집어삼키지만, 파도의 결을 읽고 올라타는 자에게는 목적지까지 가는 훌륭한 동력이 된다. 삼성이 달러 코인이라는 파도에 올라탔다면, 정부는 원화 경제가 그 파도 옆에서 나란히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하고 날렵한 쾌속선을 만들어야 한다. 화폐 주권은 지갑에서 스스로 꺼내고 싶게 만드는 매력에서 나온다. 이기려 들지 말고, 대체 불가능한 쓸모를 증명하라.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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