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주의 스토리텔링] 별인 줄 알았는데,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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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의 스토리텔링] 별인 줄 알았는데, 산이었다

뉴스컬처 2026-07-03 17:1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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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제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만든 참고 이미지/ 디자인= 뉴스컬처 DB.
칼럼 주제를 바탕으로 AI를 활용해 만든 참고 이미지/ 디자인= 뉴스컬처 DB.

"당신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건넨 적 있나요. 말이 아니라, 물건으로..."

상자를 열던 그 순간

오래전, 몽블랑 볼펜 상자를 열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묵직한 무게감. 손에 쥐었을 때의 단단한 감촉. 그리고 뚜껑 위에 새겨진 흰 문양.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 제가 생각한 건 펜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더 큰 사람이 되라"는 말을 물건의 형태로 받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좋은 펜을 받았다는 생각보다, 누군가가 아직 오지 않은 나의 가능성을 먼저 믿어준 것 같은 감각.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를, 완성될 내 모습으로 보아준 것 같은 기분. 

그 후로 그 펜을 쥘 때마다 달라졌습니다. 더 반듯하게 앉게 되고, 더 또렷하게 쓰게 되고, 조금 더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중요한 문장을 쓰는 사람, 중요한 결정을 하는 사람, 중요한 행보에 자취를 남기는 사람.

펜 하나가 그런 태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별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은

한동안 저는 몽블랑 로고를 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뚜껑 위의 그 흰 문양이 별처럼 생겼으니까요. 그냥 예쁜 마크이려니 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건 별이 아니었어요. 

유럽 최고봉인 몽블랑 산의 눈 덮인 정상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었습니다. 정상에서 여섯 방향으로 뻗어 내려가는 빙하 계곡. 흰색은 눈 덮인 정상과 순수함을, 검정은 종이 위에 내려앉는 잉크를 상징해요. 별인 줄 알았는데, 산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성공도 그런 것이 아닐까. 반짝이는 별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산처럼 한 걸음씩 오르고 또 올라,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정상에 서 있는 것. 빛나는 결과가 아니라, 오르는 과정이 전부인 것.

그 로고가 처음부터 그 뜻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지= 뉴스컬처 DB.
이미지= 뉴스컬처 DB.

펜 촉에 새긴 철학

그리고 더 놀라운 게 있었습니다. 마이스터스튁 펜촉 끝에는 작은 숫자가 새겨져 있어요. 

4810. 처음엔 그냥 제품 번호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유럽 최고봉 몽블랑 산의 높이였습니다. 4810미터를 뜻하는 숫자였습니다.

보통 브랜드는 로고만 넣습니다. 그런데 몽블랑은 펜촉 끝에까지 산의 높이를 새겨 넣었어요. 왜일까요. "우리는 정상만 바라본다." 그 철학 때문입니다.

그 순간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브랜드는 펜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정상을 향하는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구나. 우리는 늘 정상에 오른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하지만 몽블랑은 정상보다, 올라가는 사람을 위한 브랜드인지도 모릅니다.

역사의 결정적 순간에

1906년, 몽블랑은 독일 함부르크의 작은 공방에서 시작됐습니다. 최고를 향한 추구, 정상을 향한 태도. 그것이 처음부터 이 브랜드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1924년, 마이스터스튁(Meisterstück)이 탄생했습니다. 독일어로 '걸작(Masterpiece)'이라는 뜻이에요. 2024년에 100주년을 맞은 이펜은 거의 같은 모습으로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필기구 중 하나입니다.

이 펜이 역사의 결정적인 순간에 함께한 적이 있습니다. 1963년 6월, 냉전의 한복판.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서독 쾰른을 방문해 황금방명록에 서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아데나워 총리가 펜을 가져오지 않았어요. 

그 순간, 케네디가 조용히 자신의 주머니에서 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를 꺼내 내밀었습니다. "May I help you, Mr. Adenauer?" 그 짧은 한 마디와 함께 건넨 펜 하나가 역사적인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1963년 6월, 독일(옛 서독) 쾰른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방명록 작성후 독일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에게 자신의 팬(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을 건내고 있다/ 사진= 몽블랑 공식웹페이지 갈무리.
1963년 6월, 독일(옛 서독) 쾰른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방명록 작성후 독일 총리 콘라드 아데나워에게 자신의 팬(몽블랑 마이스터스튁 149)을 건내고 있다/ 사진= 몽블랑 공식웹페이지 갈무리.

펜은 그냥 펜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의 품격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몽블랑을 선물할까

몽블랑은 이상하게 특별한 선물입니다. 승진했을 때. 책을 출간했을 때. 대표가 되었을 때. 중요한 계약을 앞두었을 때. 그 자리에서 건네지는 몽블랑에는 늘 같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수고했어." "잘 해왔어." "앞으로 더 큰 성공을 하길 바란다." 좋은 선물은 물건을 건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건네는 것입니다.

몽블랑을 받는 사람은 사실 펜을 받는 게 아니에요. "너도 네 인생의 정상을 향해 가라"는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먼저 믿어주었다는 감정은 오래 남습니다. 그 물건을 꺼낼 때마다, 그 마음이 다시 살아나니까요.

몽블랑은 어쩌면 펜을 파는 브랜드가 아닌지도 모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의 가능성을 응원하는 브랜드인지도요.

올라가는 사람에게

별인 줄 알았는데 산이었다는 것. 그 깨달음이 좋았습니다. 반짝이는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오르고 있는 이 과정을 신뢰하는 것. 정상이 보이지 않아도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성공의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것.

좋은 브랜드는 제품을 팔지 않습니다. 그 제품을 가진 사람의 태도를 바꿉니다. 몽블랑을 쥘 때마다 조금 더 반듯해지는 느낌이 드는 건, 그 오름의 철학이 펜 한 자루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책상 위에는, 누군가의 응원이 놓여 있나요. 그리고 당신은 지금, 어떤 산을 오르고 있나요.

"좋은 선물은 물건을 건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건네는 것입니다."

글= 송영주 한국AI휴먼연구소 대표

*이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으며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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