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농협은행(이하 농협은행)의 해외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홍콩지점의 연체율 상승, 뉴욕지점의 본점 의존 심화, 캄보디아법인의 부실채권 비율 증가 및 순익 급감 등 주요 글로벌 거점마다 건전성 악화 징후가 포착됐다. 전문가들은 해외 진출 이후 철저한 리스크 관리 체계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해외 부실이 본점 전체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온다.
'연체율 급등' 홍콩 '자생력 의구심' 뉴욕…흔들리는 농협은행 글로벌 기둥들
금융권 등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국내 금융지주 계열 은행 중 글로벌 사업 부문 만큼은 후발주자로 분류된다. 1980~90년대 타 은행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했을 때도 농협은행은 국내 농업금융 및 지역 밀착형 영업에만 집중해왔다. 농협은행은 2013년 미국 뉴욕지점을 개설하며 마침내 글로벌 사업에 첫 발을 떼었다. 타 은행들과 비교해 해외 사업 경험 및 자산 규모 면에서 격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그럼에도 농협은행은 최근 해외 사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글로벌 네트워크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자리하고 있다. 강 회장은 취임 이후 글로벌 사업 확장을 핵심 경영 과제로 내걸고 뉴욕, 런던 등을 방문해 NH농협금융 계열사 간 협업 체계 구축을 직접 챙기고 있다. 특히 농협은행 해외 현지 거점의 역할을 강화하는 등 글로벌 현장 경영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지난해 초 취임한 강태영 농협은행장 역시 해외 수익 비중 확대와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제시했다. 지난 1월 해외점포장 화상회의에선 올해를 '손익 중심 글로벌 사업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수익성 강화, AX(AI 전환) 기반 경영 관리, 원칙에 입각한 업무 수행 등 3대 전략을 공유했다. 지난달 15일에도 강 행장은 수전 랭글리 런던금융특구 시장, 콜린 크룩스 주한영국대사 등과의 면담을 통해 영국 금융시장 협력 및 글로벌 사업 확대 방안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농협은행의 방향키를 쥔 주요 인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외 사업은 부진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홍콩 금융관리국(HKMA)에 제출된 농협은행 홍콩지점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건전성 지표가 1년 사이 크게 악화됐다. 농협은행 홍콩지점은 지난 2024년만 해도 연체 및 재조정된 자산이 없었지만 불과 1년 뒤인 지난해에는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금 규모가 약 2억2700만 홍콩달러(한화 약 450억원)로 급증했다. 지난해 전체 대출액(약 35억7873만 홍콩달러)의 6.34%에 달하는 수준이다.
'연체율'은 은행 건전성 판단의 핵심 지표다. 규모와 대출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일반적으로 연체율 1% 미만은 '우수한 수준', 2%를 초과할 경우 '리스크 관리 주의 단계', 5% 이상은 '심각한 단계'로 각각 분류된다. 농협은행 홍콩지점의 연체율(6.34%)은 건전성 관리에 유의미한 결함이 발생했다고 봐도 무관한 수준이다. 특히 동일한 시장 환경에서 영업 중인 신한·하나·KB국민은행 등 타 시중은행 홍콩지점이 모두 지난해 연체 및 감액 손실 0%를 기록한 점을 고려하면 농협은행의 자산 건전성 관리 체계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같은 기간 농협은행 홍콩지점의 유동성 유지 비율(LMR, Liquidity Maintenance Ratio)도 부정적 흐름을 보였다. 2024년 120.6%에서 지난해 102.17%로 18.43%p 하락했다. LMR은 은행이 예상치 못한 대규모 예금 인출 등 유동성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수치의 하락은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쳤을 때 현금성 자산을 통한 대응 여력이 그만큼 축소됐음을 의미한다.
농협은행의 첫 해외 거점인 미국 뉴욕지점 역시 재무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뉴욕지점이 미국 금융당국에 제출한 '외국은행 미국지점·사무소 자산부채 보고서(FFIEC 002)'에 따르면 지난해 뉴욕지점의 총부채 8억3947만달러 중 '본점 및 관계 기관으로부터의 순차입금(Net due to related depository institutions)'은 4억3841만 달러에 달했다. 전체 부채의 52.2% 수준에 달하는 금액이다. 지점 자산의 절반 이상이 본점 또는 타 농협금융 계열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로 현지 시장에서의 독자적인 유동성 조달 능력에 의구심을 가질만한 상황으로 여겨진다.
농협은행 뉴욕지점은 자산 운용의 불균형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대출 및 리스 자산(Loans and leases)'은 7억986만달러로 전체 자산(8억3947만달러)의 84.6%를 차지했다. 자산의 대부분이 장기적인 회수가 필요한 대출에 쏠려 있는 반면 즉각적인 현금 확보가 가능한 유동성 자산(현금 및 예치금) 비중이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통상 자산 포트폴리오가 대출에 편중된 구조는 미국 현지 경기 침체나 특정 산업군의 부실 발생 시 지점의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캄보디아법인, 부실 채권 늘고 실적 뒷걸음질…중앙회 출신 법인장 꽂히자 상황 더 악화
농협은행 동남아 시장의 전초기지로 불리는 농협파이낸스캄보디아(이하 캄보디아 농협)의 재무 지표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8년 현지 마이크로파이낸스(Microfinance, 소액금융) 업체를 인수하며 출범한 캄보디아 농협은 지난 2022년까지만 해도 총자산 약 9686만달러(한화 약 1495억원), 순이익 약 303만달러(한화 약 47억원) 등을 각각 기록했다. 같은 기간 해당 법인의 30일 이상 연체 채권 비율(Portfolio at Risk, 30일)도 1.88%에 불과했다. 통상 마이크로파이낸스 업계에서는 30일 이상 연체 채권 비율 3% 미만을 '양호', 3~5%는 '주의', 5% 이상은 '위험', 10% 이상은 '심각' 등으로 각각 구분한다.
그러나 2023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캄보디아 농협은 자산 규모 축소, 건전성·수익성 저하 등의 이중고에 직면했다. 우선 부실 채권이 크게 증가하면서 자산 건전성 지표인 30일 이상 연체 채권 비율도 10.42%까지 치솟았다. 연체가 늘면서 순이익도 약 237만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총자산수익률(ROA)도 2022년 3.72%에서 2023년 -2.61%로 마이너스 전환했다. 자기자본수익률(ROE) 역시 8.99%에서 -6.96%로 하락했다. ROA는 자산 운용 효율성을, ROE는 주주가 투자한 자본으로 얼마나 이익을 창출했는지를 보여주는 수익성 지표다.
건전성·적자 쇼크 이후 캄보디아 농협은 이듬해인 2024년 강도 높은 체질 개선에 나선 끝에 가까스로 흑자 전환에 성공하긴 했으나 지난해 다시 수익성이 크게 하락했다. 지난해 1월 농협은행은 정주용 법인장을 임명하며 캄보디아 농협의 재도약을 꿰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해 캄보디아 농협의 순이익은 약 15만달러를 기록하며 전년(약 132만 달러) 대비 88% 급감했다. 건전성 지표인 30일 이상 연체 채권 비율 역시 10.53% 기록하며 불안한 모습을 이어갔다.
총자산 규모 역시 꾸준히 하락세다. 2022년 약 9686만달러였던 총자산 규모는 2023년 약 8594만달러, 2024년 약 7231만달러, 지난해 약 6753만달러 등을 각각 기록했다. 캄보디아 농협의 규모 또한 크게 쪼그라들어 2022년 415명이던 직원수는 지난해 305명으로 약 27% 가량 감소했다. 현재 캄보디아 농협 측은 캄퐁치낭 지점 신설 등의 물리적 영업망 확충, 대출 심사 시스템(LOS) 고도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의 대책을 내놓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농협중앙회와 농협은행이 글로벌 사업 확장을 시도하기 이전에 기존에 운영해오던 해외 거점들의 체력을 다시 한 번 되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농협은행이 글로벌 시장에서 후발주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업을 확장하는 것은 기업 차원의 전략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주력 해외 법인들의 점검이 우선시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각 지역의 시장 환경에 최적화된 리스크 관리 역량을 내재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세무학회장)는 "농협은행은 그동안 국내 농업금융 분야에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야심차게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으나 홍콩, 뉴욕, 캄보디아 등 주요 거점에서 건전성 지표 악화와 실적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며 "글로벌 사업은 국내와는 완전히 다른 경제 환경과 금융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현지 밀착형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본점 차원의 통합적인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해외 사업이 오히려 본점 전체의 재무 건전성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련의 사안과 관련, 농협은행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