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현재, 글로벌 모터스포츠와 자동차 산업 저널리즘의 시선은 서울 양재동을 향해 있다. 영국의 모터스포츠 전문지 '더 레이스(The Race)'가 쏘아 올린 "현대자동차와 맥라렌이 2028년 포뮬러E(FE) 진입을 놓고 협의 중"이라는 내용은 독일 e-formula.news, 미국 ESPN 등 주요 매체를 거치며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제프 도즈 포뮬러E CEO가 "직접 한국을 찾아 그들의 이사회를 만났다"며 모터스포츠 책임자와의 친분을 과시한 대목은 이 협상의 묵직한 실체를 방증한다.
본지는 외신과 국제자동차연맹(FIA) 공식 자료 등 1차 소스를 교차 검증해 베일에 싸인 현대차의 '포뮬러E 프로젝트' 실체와 리스크를 심층 해부했다.
'맥라렌'은 없고 '파워트레인'이 있다
외신의 보도를 정확히 해독하려면 '맥라렌'이라는 이름이 주는 착시부터 걷어내야 한다. 현재 현대차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대상은 잭 브라운 CEO가 이끄는 '맥라렌 그룹' 본류가 아니다.
포뮬러E의 맥라렌 팀은 과거 벤츠(Mercedes EQ)가 철수한 후 팀 프린시펄 이언 제임스(Ian James)가 맥라렌의 브랜드 사용권만 빌려와 재조직한 '순수 커스터머(고객) 팀'이었다. 자체 파워트레인 없이 닛산의 부품을 공급받아 연명하던 이 팀은 결국 자금난과 WEC 집중을 선언한 맥라렌 그룹 본사의 결정에 따라 2025년 4월 철수를 선언했다. 심지어 2026년 6월, 이 팀의 지주회사는 FIA로부터 예산 상한선 위반으로 40만 유로(약 5억 7,000만 원)라는 징계를 받으며 씁쓸하게 꼬리표를 뗐다.
즉, 외신이 보도한 빅딜의 실체는 맥라렌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진 '이언 제임스의 생존 조직'과의 결합이다. 현대차는 직접 팀을 창단하고 운영하는 재무적 리스크를 피하는 대신, 이 5세대 신생 팀에 핵심 부품인 파워트레인을 공급하는 '매뉴팩처러(제조사)'로 나설 공산이 크다. 과거 닛산이 하던 자리를 꿰차고 매뉴팩처러 챔피언십 타이틀과 순수 전기차(EV) 기술력 과시에만 집중하는 영리한 베팅이다.
현대차가 진입 시점으로 삼은 2028년(시즌 15)은 규정상 완벽한 타이밍이다. 2026-27 시즌부터 도입되는 포뮬러E 4세대(Gen4) 레이스카는 최고출력 600kW(약 815마력), 상시 사륜구동(AWD),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1.8초에 주파하는 괴물이다.
4년 주기로 운영되는 Gen4의 한가운데인 2028년은 파워유닛 '재홈로게이션(Homologation, 인증)' 기회가 열리는 시기다. 후발주자인 현대차로서는 초기 규정의 불확실성과 시행착오를 피하고, 완숙된 기술력으로 단숨에 우승권에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틈새다.
비용 대비 효율성도 압도적이다. Gen4 시대 매뉴팩처러의 연간 예산 상한선은 2,500만 유로(약 370억 원)로 고정되어 있다. 포뮬러 원(F1) 예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제네시스 마그마 하이퍼카 프로젝트와 비교해도, 연간 359조 원의 경제 기여를 창출하는 거대 그룹 입장에서 이는 글로벌 EV 성능 경쟁에서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초고효율 마케팅' 무대다.
정의선의 '모터스포츠 삼각편대'
포뮬러E 진입은 시릴 아비테불 현대 모터스포츠 사장 체제하에 진행되는 거대한 브랜드 포트폴리오 마스터플랜의 마지막 퍼즐이다. 이 딜이 성사되면 현대차그룹은 완벽한 '삼중 트랙(Triple Track)'을 완성하게 된다.
- WRC (현대 월드랠리팀): 험로 주파력을 통한 양산차 기반의 내연기관 내구성 증명.
- WEC / IMSA (제네시스 마그마): 3.2L V8 트윈터보 기반의 하이브리드 하이퍼카로 포르쉐, 페라리 등과 겨루는 럭셔리 프리미엄 감성.
- 포뮬러E (현대 N): 압도적인 출력을 바탕으로 아이오닉 5 N 등으로 쌓아온 '도심형 순수 전동화 고성능' 입증.
제네시스 하이퍼카가 V8 엔진을 채택해 내연기관의 낭만과 하이브리드를 상징한다면, 포뮬러E는 현대 N의 미래인 순수 전기차의 극한 성능을 상징한다. 배터리·모터의 진화와 하이브리드·내연기관의 미래 불확실성을 세계 최고 수준의 서킷 무대에서 동시에 대비하는 완벽한 체질 개선 작업이다.
트럼프 관세 방어전과 노조 리스크
이 화려한 서킷 이면에는 현대차의 절박한 지정학적 생존 셈법이 자리한다. 조지아 이민단속 사태에 이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25% 자동차 관세 폭탄 여파로 미국 시장 리스크는 최고조에 달했다. 호세 무뇨스 CEO조차 타 시장의 부진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
미주와 중동의 리스크가 커질수록 유럽(EU) 시장 방어는 그룹의 사활이 걸린 생명선이 된다. 포르쉐, 재규어는 물론 스텔란티스(DS/시트로엥)와 신규 진입하는 오펠 등 유럽 대중 브랜드들이 전열을 가다듬은 포뮬러E 도심 서킷은, 테슬라와 BYD의 공세에 맞서야 하는 현대차가 반드시 깃발을 꽂아야 할 핵심 전장이다.
다만, 가장 큰 암초는 내부에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듯 2026년 압도적 찬성으로 파업권을 확보한 현대차 노조의 최대 화두는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이다. "생산 현장에는 로봇을 들여 일자리를 위협하면서, 유럽 귀족 스포츠 서킷에는 수백억 원을 쏟아붓느냐"는 프레임이 여론을 탈 경우, 포뮬러E 투자는 뜻밖의 거대한 정치적 뇌관이 될 수 있다.
현대차의 2028년 완전 진입(Best Case) 시나리오는 아직 미완성이다. 실무적 마감 이슈로 인한 2029년(시즌 16) 지연 진입(Base Case)부터 타 매뉴팩처러 우선 계약으로 인한 결렬(Bear Case)까지 변수는 많다.
향후 1~2년 내 판가름 날 핵심 관전 포인트는 ▲2026년 하반기 공개될 FIA 매뉴팩처러 등록 리스트 내 '현대' 포함 여부 ▲시릴 아비테불 사장의 첫 공식 언급 ▲이언 제임스 팀의 새 이름(Hyundai 혹은 N) ▲정의선 회장의 포뮬러E 서킷 패독 방문 여부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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