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권수빈 기자]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무심코 지나치는 장면들이 있다. 오래된 식당 간판, 골목길의 빈티지한 어닝, 혹은 우연히 마주친 낯선 도시의 풍경 같은 것들이다.
필립 예니카는 이러한 찰나의 순간들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포착해 화폭에 담아낸다. ‘럭키 럭키 럭키(LUCKY LUCKY LUCKY)’는 그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집한 일상의 기록과 그 안에 숨겨진 행운의 순간들을 100여 점의 원화와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풀어낸 기획전이다.
독일 출신 필립 예니카는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한 뒤 디자인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의 밤, 음악, 서브컬처를 선명한 색감으로 기록해 온 작가다. 고통스러운 이면보다 삶의 활력과 교류에 집중하는 그의 화풍은 강렬한 컬러감을 통해 보는 이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법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한때 NBA 농구선수를 꿈꿨던 필립 예니카는 아디다스, 보그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업하고 크리스티,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을 선보일 만큼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농구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이 오히려 화가가 되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행운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가치관이 전시 전반에 녹아 있다.
전시는 입장부터 소소한 재미를 유도한다. 티켓 하단을 복권처럼 긁어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고, 여권 형태의 안내지에 각 층마다 마련된 스탬프를 찍으며 자신만의 행운 지도를 완성해 나간다.
지하 1층 ‘길을 잃어야 보이는 것들(LOST IS THE NEW LUCKY)’ 섹션에서는 파리, 뉴욕, 베를린, 홍콩 등 낯선 도시에서 잠시 헤매던 순간들이 강렬한 색채로 재탄생됐다. 공간 한편에 놓인 9대의 아날로그 전화기 중 벨이 울리는 수화기를 들면 그날의 행운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지하 2층 ‘승패를 떠나(WIN OR LOSE, STILL LUCKY)’ 공간은 스포츠를 향한 작가의 애정이 돋보인다. 쇼헤이 오타니,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타이거 우즈 등 전설적인 선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셀틱스 대 레이커스’ 같은 역사적 경기들을 담아냈다. 스포츠 스타들과 관련된 일화가 담긴 메시지 카드는 재미를 더한다.
3층으로 올라서면 분위기가 반전되며 ‘오늘 밤은 럭키한 밤(LUCKY NIGHT)’이라는 주제 아래 도시의 유흥과 음악이 결합된 공간이 펼쳐진다. 베를린과 리스본의 클럽, 방콕의 바 등 네온사인이 번지는 밤의 에너지를 작가만의 색으로 칠했다. 바(Bar)처럼 술병이 늘어선 선반 옆에서는 필립 예니카가 추전하는 각기 다른 장르의 플레이리스트가 세 대의 헤드폰에서 재생된다. 3단으로 쌓인 브라운관 TV의 가장 첫 단에는 관람객의 모습이 비치며 아래 화면 속 인물들과 함께 리듬을 타는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마지막 동선인 2층에 마련된 ‘럭키한 필립의 방(LUCKY ROOM)’에서는 핀과 실을 이용해 지도 위에서 자신만의 행운 경로를 직접 연결해 보는 체험존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작업한 신작 ‘서울 에디션’이 글로벌 최초로 선공개돼 눈길을 끈다. 광화문과 홍대 걷고 싶은 거리 등 국내 관람객에게 익숙한 풍경이 작가의 시선을 거쳐 어떻게 재해석됐는지 작업 영상과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사진과 다양한 매체에서 얻은 영감을 캔버스로 옮기는 자신의 작업 방식을 음악의 비트메이킹 과정에 비유하며 시각과 청각의 경계를 허문다. 전시장에서는 작품 설명과 함께 감상에 어울리는 음악이 대부분의 작품에 제안돼 그림과 소리가 하나의 리듬처럼 어우러진다. 어두운 이면보다는 그림을 통한 소통과 행복에 집중하는 그의 화풍을 따라 그림 속에 숨은 요소들을 하나씩 발견하다 보면 전시장을 나설 무렵, 평범했던 하루가 꽤나 운 좋은 날처럼 다가온다.
뉴스컬처 권수빈 ppbn0101@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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