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스니커즈의 앞코가 다 헤져도 계속 걸어야 한다. 재난이 삶의 터전을 휩쓸고 가도 계속 살아야 한다. 물건과 사람, 관계와 기억, 어제와 내일을 잇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성’이라고 말하는 베자(VEJA)와 사시코 걸스(Sashiko Gals)가 또 한 번 만났다. 전 세계 단 12켤레, 오직 서울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협업 스니커즈에 관해 베자 아시아태평양(APAC) 총괄 아르토 프레누아(Artaud Frenoy)와 사시코 걸스 파운더 후지와라 아라타(Arata Fujiwara)가 들려준 이야기.
2025년 처음 협업을 선보였던 베자와 사시코 걸스가 다시 만났어요.
베자(VJ) 2025년에 첫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사시코 걸스와 계속 협업을 이어온 건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동안 저희는 업무적인 관계를 넘어 인간적으로도 정말 가까워졌거든요. 특히 사시코 걸스가 만들어 온 것들을 깊이 존경하고 있어요. 장인정신을 넘어 공동체, 전승, 강인함, 그리고 전통적인 노하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일에 관한 것이니까요. 이런 가치는 베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기도 하고요.
사시코 걸스(SG) 베자와 처음 협업했을 때만 해도 사시코 걸스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프로젝트였어요. 그 이후로 다른 브랜드와도 다양하게 협업했지만, 다시 베자와 함께하게 된 건 저희에게 정말 특별한 의미예요. 같은 가치관과 생각을 공유하는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베자와 다시 한번 함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 정말 기뻐요.
사시코 걸스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이와테현 오쓰치 마을의 여성들이 지역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시작한 공동체에서 출발했다고요.
SG 맞아요. 본격적으로 ‘사시코 걸스’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출범한 건 2024년이었어요. 그때 저희는 세 가지 목표를 세웠죠. 첫째, 사시코의 가능성을 확장한다. 둘째, 재난 복구 이후의 새로운 미래를 보여준다. 셋째, 지역 안에 지속 가능한 산업을 만든다. 그래서 지금도 단순히 전통을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오쓰치의 사람들과 지역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저희의 미션으로 삼고 있어요.
사시코란 정확히 무엇인가요?
SG 사시코는 전통 바느질 기법의 한 형태로, 약 4,500년 전부터 일본에 존재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특히 도호쿠 지역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해왔죠. 사시코만의 아름다움은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바느질, 그리고 자연을 존중하는 일본의 문화에서 영감받은 기하학적 패턴에서 비롯되어요.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실용성과 함께 오랜 문화적 철학이 담겨 있죠.
사시코에는 낡고 해진 것을 버리지 않고, 꿰매고 덧대며 다시 이어가는 정신이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점에서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관계와 기억, 시간을 연결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SG 정확해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공동체의 많은 이들이 깊은 상실과 슬픔을 겪었는데요. 임시 대피소에서 함께 사시코를 놓기 시작한 게 모든 일의 시작점이 됐어요. 반복적으로 바늘을 움직이다 보면 명상이나 요가를 할 때처럼 마음이 차분해지죠. 생각을 가라앉히고 정신적인 안정감을 주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동시에 사시코는 저희를 더 많은 사람들과 이어주는 역할도 했어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서로를 돌보는 마음 같은 것들의 소중함을 사시코 작품이 일깨워준 거예요. 그래서 사시코 걸스에게 사시코는 단순한 자수가 아니에요. 사람과, 기억, 그리고 희망을 이어주는 하나의 방식이죠.
베자 역시 사회와 공동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이나 경제적 정의 차원에서의 ‘지속 가능성’도 핵심적으로 고려하죠.
VJ 베자는 지속 가능성을 단순히 환경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속 가능성을 생각한다는 건 하나의 제품 뒤에 있는 전체 시스템을 바라보는 일이거든요. 원재료를 구하는 것부터 제품 제조 및 운송 과정, 그리고 제품을 만드는 데 참여하는 사람들의 노동 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해요. 브랜드를 처음 세울 때부터 그걸 중요한 목표로 삼았고요. 결국 베자에게 환경적 책임, 사회적 정의, 경제적 공정성은 떼어놓을 수 없는 가치예요.
베자와 사시코 걸스 모두 환경적·사회적 ‘지속 가능성’을 패션이라는 방식으로 실천하고 있네요. 협업하는 과정에서 그 가치가 공유되고 확장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VJ 베자는 수선에도 큰 관심을 갖고 관련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데요. 사시코 걸스와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됐어요. 사시코 걸스는 물건을 돌보고 존중하는 일본의 전통 수선 기법에서 출발했다면, 베자는 2020년부터 55,000켤레 이상의 스니커즈를 수선해 온 ‘코블러 프로젝트'(Cobbler Project)를 운영하고 있죠. 문화와 배경은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비전을 공유한다는 걸 느꼈어요. 두 팀 모두 ‘하나의 물건을 오래 쓸 수 있어야 한다’, ‘장인정신이 사회적·환경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었던 거예요. 앞으로도 사시코 걸스와 또 다른 협업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네요.
SG 첫 협업 이후 베자 팀이 오쓰치에 있는 저희 작업실을 직접 찾아왔어요. 그 시간을 통해 서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죠. 특히 인상 깊었던 건 베자가 교육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진심 어린 노력과 철학이었어요. 저희 역시 막 교육 활동을 시작하려던 시기였거든요. 베자가 교육의 영역에서 만들어낸 변화들을 보면서 사시코 걸스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더 선명한 목표를 세울 수 있었어요.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더 진지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요.
두 팀 모두 다른 브랜드와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죠. 다양한 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VJ 베자는 전통적인 광고를 하지 않고, 셀러브리티에게 유료 협찬을 진행하는 방식도 택하지 않아요. 그 대신 마케팅 비용을 줄여 더 많은 자원을 원재료와 생산 과정에 쓰고 있죠. 그래서 협업은 저희에게 매우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방식 중 하나예요. 베자의 철학을 지키면서도 이야기를 전하고, 영감을 주는 커뮤니티를 만나고, 새로운 기대감을 만들 수 있게 해주니까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는 게 중요하고요.
SG 저희의 가장 큰 목표는 사시코의 가능성을 더 넓혀가는 거예요. 그러려면 시대에 맞게 발전하고 변화하는 것도 전통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시코가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어요. 과거에는 스니커즈에 사시코를 적용하는 프로젝트 역시 상상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이런 협업을 통해 지금까지 사시코를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어요. 전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이들을 만나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게 저희의 꿈이에요.
이번 협업에 베자의 다양한 스니커즈 라인업 중 ‘살라’(Salar)를 활용한 이유가 있나요?
VJ 살라는 비브람(Vibram)과 함께 개발한 고기능성 스니커즈예요. 반면 사시코 걸스의 손바느질 작업은 매우 인간적이고 전통적인 감각을 더하죠. 살라의 기술적이고 도시적인 성격과 사시코라는 전통적 실천 사이의 대비가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그렇게 서로 다른 둘이 만나 기술과 장인정신 사이의 흥미로운 대화가 담긴 스니커즈가 탄생했죠.
SG 사실 이번 협업은 첫 번째 협업보다 훨씬 더 어려웠어요.(웃음) 지난 번 협업 때의 모델은 비교적 클래식한 소재였는데, 살라는 실버 코팅이 되어 있었거든요. 바느질을 하다가 코팅이 망가지지 않도록 엄청 세심하게 주의해야 했죠. 작업 시간도 이전보다 한 켤레당 두 배쯤 더 걸렸던 것 같은데요. 그만큼 결과물에 대한 자부심도 더 커요.
한국에서 이번 협업 스니커즈를 만나게 될 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려요.
VJ 이제 한국은 베자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 되었어요. 약 1년 반 전, 서울에 APAC 본사를 열었을 정도죠. 전 세계 오직 12켤레뿐인 이번 협업 제품을 한국에서 단독으로 선보이는 점 역시 저희에게는 큰 의미가 있고요.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에요. 앞으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많이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 시작을 사시코 걸스와 함께하는 새로운 챕터로 열 수 있어서 매우 기뻐요.
SG 한국에서도 장인정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에도 보자기처럼 아름다운 전통 섬유 문화가 있고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의 가치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사시코 문화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협업을 통해 한국의 많은 분들이 사시코의 아름다움과 정신을 경험하고,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베자 x 사시코 걸스 한정판 ‘살라’ 팝업
날짜 2026년 7월 3일(금) – 7월 9일(목)
장소 분더샵 청담 케이스스터디(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60길 21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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