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Dreams Lead | 작가 지리 슈멜라르와 함께한 인터뷰 | 마리끌레르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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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Dreams Lead | 작가 지리 슈멜라르와 함께한 인터뷰 | 마리끌레르 코리아

마리끌레르 2026-07-03 11:54:33 신고

3줄요약

여행과 수집, 창작과 기억을 삶의 방식으로 끌어안아온 작가 지리 슈멜라르(Jiří Chmelař)는 여전히 상자 속에 자신의 꿈을 담는다.

“늘 꿈의 힘을 믿어왔습니다. 꿈은 언제나 현실보다 먼저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주죠.” 삶의 중요한 갈림길마다 꿈은 작가 지리 슈멜라르(Jiří Chmelař)를 뜻밖의 풍경 앞으로 이끌었다. 1980년 체코슬로바키아를 떠나 독일로 망명한 뒤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순간에도, 반세기 넘게 수집해온 아시아 컬렉션 일부를 마침내 고국의 박물관에 기증하게 된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40여 년간 프랑스 남부 코트다쥐르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온 그는 일상적인 사물과 오래된 오브제, 여행지에서 발견한 재료들을 모아 자기만의 작업 세계를 구축해왔다. 아상블라주(assemblage)는 그의 작업을 설명해주는 주요한 형식이지만, 형식 자체보다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고유한 시선이다. 저마다 역사를 간직한 오브제를 수집하고 재배열해 존재하지 않던 관계와 서사를 만들어내는 일, 그리하여 자칫 평범할 수 있는 대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 그가 평생 탐구해온 것은 어쩌면 사물들 사이에 잠들어 있던 가능성인지도 모른다. 여행과 수집은 그의 삶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프랑스와 독일, 체코, 미국을 비롯해 아시아 곳곳을 여행하며 모은 오브제들은 때로는 작품의 재료가 되고, 때로는 그가 평생에 걸쳐 구축해온 컬렉션의 일부를 이뤘다. 여행과 기록, 수집과 편집의 과정은 작가가 지나온 시간 속에서 하나로 이어지며 독자적인 세계를 형성해왔다. 1996년 가을, 웅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Les Oniriques(Dreams)>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그는 오는 9월 같은 공간에서 전시 <Still Dreaming>을 선보인다. 푸른 녹음에 둘러싸인 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아틀리에에서 작가와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눴다.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기억을 다시 꺼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꿈에 대해 이야기한 그날의 기록을 여기에 옮긴다.

“늘 꿈의 힘을 믿어왔습니다. 꿈은 언제나 현실보다 먼저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주죠.”

아틀리에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오브제와 쌓여 있는 상자들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 공간에서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작업실을 한 바퀴 돌며 작품들에 인사를 건넵니다. 상자와 레진 작업들이 모두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보수나 수리가 필요하진 않은지 세심히 살피죠. 아이를 다루듯 하나씩 말을 걸고, 어루만진 다음에야 그날의 작업을 시작합니다. 대부분 새 상자를 만들거나 기존에 만든 상자를 변형하는 작업이죠. 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작업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죠.

고국 체코를 떠난 뒤 여러 나라를 거쳐 프랑스 남부에 정착하신 것으로 압니다. 이곳이 삶과 작업의 터전으로 자리 잡기까지 지나온 여정에 대해 들려주신다면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났지만 자유를 찾아 고국을 떠났습니다. 벌써 40년도 더 된 일이네요. 독일에서 정치적 망명을 허가받은 뒤 새로운 삶을 꾸리기 시작했지만, 언어도 새로 배워야 했고 기존의 직업 또한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처음부터 다시 고민해야 했죠. 한데 오히려 그 시기에 비로소 작업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술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세상에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만은 강렬했어요. 이후 여러 나라를 거쳐 남프랑스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작업과 수집을 이어오며 삶의 대부분을 보냈습니다. 지금의 저는 이곳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아틀리에는 제게 유산과도 같은 장소예요.

망명 이후 비로소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얻게 되셨지만, 예술에 대한 열망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품고 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예술적 감수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제 안에 있었습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시던 어머니께서 일찍이 그 감각을 길러주셨죠.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젊은 시절 저는 스스로 미술의 세계를 발견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지요. 처음에는 회화에 도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특별한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대신 사물과 오브제를 다루는 데에는 남다른 감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렇게 아상블라주 작업에 자연스럽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아상블라주 상자(assemblage box)는 작가님의 작업을 대표하는 형식입니다. 처음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낯선 땅에 적응해가던 시기에 상자는 제게 바깥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당시 서툰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상자 안에 담아 전하려 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완전히 다른 의미를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이 늘 흥미로웠어요.

조금 원론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상자 안에 무언가를 담는다는 행위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상자 안에 무엇을 넣을 것인가는 결국 어떤 것을 보여주고, 또 감출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결됩니다. 이는 제 작업의 오랜 화두이기도 해요. 저는 사람들 각자가 지닌 개성을 들여다보는 데 늘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층위(layer)로 이루어진 입체적인 존재죠. 그중에는 드러내고 싶은 모습도 있고, 감추고 싶은 면도 있을 겁니다. 어떤 의미에서 상자는 그러한 층위를 담아내는 작은 세계와도 같습니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온 사물들이 그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를 만들어내니까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부터 낯선 형태의 자연물까지, 작업에 활용하는 오브제의 범위가 무척 넓어 보입니다. 평소 어떤 방식으로 오브제를 수집하는 편인가요?

이 오브제는 모두 각자의 역사를 품고 있어요.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는지도 전부 다르죠. 그런 의미에서 제 작업은 모두 여행, 그리고 수집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상자를 가리키며) 여기 보이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상어 턱뼈는 태국 방콕의 짜뚜짝 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했고, ‘머니 트리’라고도 불리는 이 파키라 열매는 끄라비 해변에서 주웠어요. 어떤 오브제는 특정 지역에서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에 필요한 양만큼 모으기 위해 같은 곳을 여러 번 여행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마치면 짐 가방에 신기한 재료를 가득 채워 돌아오곤 하는데, 검색대를 지날 때마다 이것이 작업 재료라는 사실을 설명해야 할 때가 종종 있어요.(웃음)

오랜 시간 여행을 작업의 동력으로 삼아왔다고 말씀하셨죠. 여행이 나의 삶과 작업에 가져다준 변화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계산과 예측을 벗어난, 그래서 조금은 복잡하고 특이하게 느껴지는 풍경들을 선물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사람들과 교류한 경험이 제 작업을 점차 확장시켜주었어요. “안녕하세요. 당신은 누구인가요?” 때로는 이처럼 사소하게 느껴지는 질문에서 깊은 관계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예측할 수 없는 만남은 작업 안에서 흥미로운 가능성으로 발전하고요. 여행과 기록, 수집, 그리고 편집의 과정은 시간 속에서 결국 하나로 이어집니다. 수십 년간 이런 방식으로 작업해왔어요. 만약 집에만 머물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면 제 삶은 지금과 판이하게 달랐
을 겁니다.

유럽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골동품을 수집하셨다고요. 돌이켜보면 아시아의 어떤 점이 그토록 작가님을 매료시킨 것 같은가요?

어린 시절 흑백 TV로 본 다큐멘터리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원뿔 모양의 전통 모자를 쓰고 밭일을 하는 베트남 농부들의 모습에 완전히 사로잡혔어요. 그 무렵에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착륙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곤 했는데, 그걸 지켜보면서 베트남이 그런 미지의 장소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1977년에 외무부의 임무를 받아 베트남에 파견되면서 마침내 꿈꾸던 땅을 밟게 되었죠. 이후 한국과 중국, 태국, 부탄, 인도 등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각 나라의 오브제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아시아는 끝없이 솟아나는 역동적인 에너지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경신하는 힘으로 저를 매료시킵니다. 적어도 제가 살아온 유럽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어려운 생명력이죠.

인터뷰 시점을 기준으로 며칠 뒤면 프라하의 나프르스테크 박물관(Náprstek Museum)에서 아시아 컬렉션을 공식적으로 소개하는 자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고국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만큼 그 의미가 더욱 크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할 때마다 조금씩 모은 골동품이 제법 쌓여 제 컬렉션 일부를 국립박물관에 기증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전시 개막까지 아직 많은 단계가 남아 있지만, 50년 전 처음 이 박물관을 찾았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기에 감회가 굉장히 새롭습니다. 훗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제 안의 어떤 것, 이를테면 열정 같은 것이 고국 어딘가에 남아 계속 살아갈 거란 사실은 제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체코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회화부터 도자기, 골동품에 이르기까지 특정 매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는 컬렉션을 구축해오셨습니다. 작가님의 컬렉션을 관통하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집을 시작한 이래 제 원칙은 단 하나였습니다. 바로 퀄리티죠. 제가 말하는 퀄리티는 결국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기준에 가깝습니다. 물론 수집의 세계에는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규칙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규칙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결국 컬렉터에게 중요한 건 사물을 보는 눈입니다. 저는 언제나 사물의 외관이 아닌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을 발견하려 노력해왔어요.

작가님은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시는지요?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숨겨진 가치를 알아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지나치는 사물들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좋아해요. 실제로 많은 오브제를 복원해왔고요. 여행을 하며 오브제를 모을 때도 늘 어딘가 닳거나 파손되어 있는 물건에 더 끌립니다. 그 흉터들은 물건이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는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 안목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라 보시는지도 궁금합니다. 타고나는 감각일까요, 혹은 오랜 경험을 통해 기를 수 있는 영역일까요?

어느 정도는 타고나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하는 일 역시 그 눈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파리에 살던 시절 경매장과 골동품점을 샅샅이 뒤지며 보낸 시간이 제 안목을 갈고닦는 데 많은 역할을 했어요. 사기를 당하거나 속아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요. 그런 경험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존재합니다.

1996년, 파리에서 시작해 서울을 거쳐 브라티슬라바로 이어진 순회 전시의 일환으로 한국의 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다가오는 9월에는 같은 공간에서 전시 <Still Dreaming>을 앞두고 있습니다. 30여 년 만에 다시 한국에서의 전시를 준비하는 지금,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이번 전시를 회고전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지금은 작가로 살아온 시간을 돌아볼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앞을 바라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전시에서는 예전 작업들과 함께 ‘서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작업 중인 작품들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지난 1년간 먼지 쌓인 오래된 상자들을 다시 꺼내고, 새로운 상자들을 만들며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시 한번 여행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게 한국과의 인연을 선물해준 친구이며, 삶을 사랑한 예술가였던 마영범(전 소 갤러리 대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해요.

‘Still Dreaming’이라는 제목을 보니 문득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여전히 작가님을 꿈꾸게 하고, 또 작업대 앞으로 이끄나요?

“꿈은 현실의 절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을 알고 있죠. 저 역시 늘 꿈의 힘을 믿어왔고, 어쩌면 그것이 지금도 저를 작업대로 이끄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30년 전에 열린 전시도 ‘Les Oniriques(Dreams)’, 즉 꿈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당시 전시의 모토로 인용한 프랑스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의 문장을 다시 꺼내고 싶군요. “꿈은 현실 아래를 통과하는 터널이다.” 오늘의 현실은 그 시절보다 훨씬 잔인해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꿈꾸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고 느껴요. 우리에겐 현실을 빠져나갈 수 있는 터널이 필요해요. 저는 제 꿈을 상자 속에 담아 한국에 가져가려 합니다. 여러분이 그 꿈을 좋아해주길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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