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토이 스토리 3>에서 대학에 진학한 주인공 앤디는 장난감 군단과 작별을 고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르다. 사람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캐릭터 키링을 가방에 걸고, 원하는 피규어를 얻기 위해 가챠 기계에 동전을 넣는다. 디즈니 영화와 애니메이션 굿즈는 빠르게 동이 나기에 발품을 팔아야 한다. 많은 이들이 유년 시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콘텐츠와 관련 상품을 향유한다는 증거다.
KBS <개그콘서트>로 친숙한 코미디언 이상훈은 소문난 토이 마니아이자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다양한 토이와 피규어를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이상훈TV>는 키덜트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구독자 60만 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장난감 로봇과 레고를 좋아한 그는 경기도 양주에서 장난감 박물관 ‘후니버설 스튜디오’를 2년간 운영했고, 지난해 12월 인천 서구에 ‘이상훈TV 토이뮤지엄’을 새로 열었다.
약 661m²(200평) 규모의 공간에는 그가 약 25년간 수집한 컬렉션 60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입구로 들어서자 복도 진열장을 빼곡하게 채운 엄청난 양의 피규어에 입이 떡 벌어졌다. 포켓몬스터, 디지몬, 톰과 제리, 짱구, 도라에몽 등 친근한 캐릭터 앞에서 발을 떼기가 쉽지 않았다. 복도를 지나면 마블과 DC코믹스, 해리포터부터 레고, 변신 로봇, 파워레인저까지, 영화와 만화 세계관이 뒤섞인 장관이 펼쳐진다. 한층 아늑한 2층에는 그가 특히 좋아했던 용자 시리즈 및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와 함께 <스타워즈>, <진격의 거인> 존이 조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전시품의 방대한 양에 압도되었다면, 둘러본 뒤 다양성과 촘촘한 밀도에 감탄했다. 장난감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도 이곳에서 추억의 작품 하나쯤은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서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평일임에도 계속해서 드나드는 방문객과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누구나 토이뮤지엄에서는 열 살 무렵으로 돌아간다고. 타임머신의 기착지 같은 기묘한 공간에서 ‘이상훈TV 토이뮤지엄’의 관장 이상훈을 만났다.
1 복층 공간의 대형 피규어에 둘러싸인 코미디언 이상훈. 2 초등학생 때부터 간직한 스카이 세이버 로봇.
가장 오래 간직한 소장품이 초등학생 시절의 변신 로봇이라고 들었어요. 1990년대 방영된 만화영화 <전설의 용사 다간>에 나오는 스카이 세이버와 다간 로봇을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가지고 놀았어요. 30년이 넘었죠. 자세히 보면 스티커 종이가 바랬고, 가슴 뿔이 잘려 있어요. 한쪽 뿔이 부러졌는데 당시에 비대칭이 싫어서 칼로 반대편도 잘라 좌우 대칭을 맞춘 거예요.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로봇이라 애착이 커요. 여기서는 제일 어르신이에요.
처음 직접 구매한 제품도 이곳에 있나요? 비슷한 용자 시리즈 중 <지구용사 선가드>의 썬더 바론과 슈퍼 가디언이 옆에 있어요. 고등학생 때 신문 배달을 해서 번 돈으로 구매한 기억이 나요. 한 달 동안 하루에 신문 180부를 돌리면 딱 두 개를 살 수 있었어요. 합쳐서 7만~8만원대였어요.
피규어, 로봇, 레고 등 품목이 다양한데, 수집의 카테고리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 궁금해요.대학에 입학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한 아이템은 레고였어요. 그러다 트랜스포머를 수집하는 친구의 영향으로 트랜스포머도 모으다 보니 영화 <아이언맨>이 나온 거예요. 아이언맨은 못 참잖아요(웃음). 아이언맨부터 마블 전체 캐릭터를 수집하다 라이벌인 DC코믹스로 확장됐고, 어릴 적부터 좋아한 <스타워즈> 시리즈와 애니메이션 피규어까지 찾아보며 지금에 이르렀어요.
1 로봇 시리즈가 빼곡한 1층. 2 성우들의 음성이 녹음된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슈퍼 아스라다 01’. 3 실물 크기의 스톰트루퍼 피규어. 4 DC 코믹스의 <조커> 피규어.
수집품 중 가장 오래전 출시된 제품은 무엇인가요? <파워레인저>라고도 부르는 <슈퍼 전대> 시리즈 1편이 1975년에 처음 방영되었어요. 당시 출시된 탈것들을 소장하고 있어요. 1990년대 용자 시리즈도 비교적 오래되었고요. 그 외에는 신생아라고 할 수 있죠.
최고가는 어떤 아이템인가요? 전시품 중 1:1 스케일의 <스타워즈> 스톰트루퍼 피규어가 가장 고가예요. 선물로 받았는데, 판매 가격을 따지면 1,500만원에 달할 거예요. 아직 전시하지 않은 아이템으로는 건담 디오라마 작가인 짱구아빠님의 대형 디오라마 작품을 소장하고 있어요. 2,000만원이 넘을 텐데 곧 전시할 예정이에요.
특별히 아끼는 아이템을 고른다면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습니다. 다 자식 같은 친구들인데, 하나 고르자면 ‘최애’ 애니메이션이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예요. 전 기체를 거의 소장하고 있고, 커스텀 도색을 한 제품도 있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또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귀멸의 칼날>이 인기잖아요. 그래서 <귀멸의 칼날> 존을 따로 만들었어요. 기성품도 있지만, 우부야시키 저택 디오라마나 무잔과 탄지로가 처음 만나는 장면을 표현한 커스텀 작품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어요.
무수한 신제품 토이를 리뷰하는데, 최근 잘 샀다고 생각한 품목을 소개해주세요. 쓰리제로와 메가하우스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출시된 <신세기 사이버 포뮬러> ‘슈퍼 아스라다 01’이 진짜 물건입니다. 팬이라면 꼭 사야 할 제품이에요. 대단한 점은 캐릭터 음성 다이얼로그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버튼을 누르면 하이라이트 장면의 대사가 흘러나와 작품을 떠올릴 수 있어요. 알고 보니 원작 성우들이 30년 만에 모여서 재녹음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와 목소리가 똑같은 분도 있고, 더 농익은 소리를 내는 분도 있어요. 이 제품을 위해 성우들이 다 모였다니 굉장하죠.
피규어의 원본은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콘텐츠입니다. 토이를 수집할 때 콘텐츠에 대한 애정과 토이에 대한 애정 중 무엇이 앞서나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수집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이 퀄리티가 좋다고 하면 모르는 제품이지만 먼저 구매한 뒤 시청할 때도 있어요. <스타워즈>는 워낙 예전부터 좋아해서 관련 피규어와 레고를 일찍이 모으기 시작했죠. 클래식 영화나 오래된 애니메이션이 이에 해당해요. 반면 최근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체인소 맨>이나 <단다단>,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같은 애니메이션은 피규어를 먼저 들인 후 나중에 찾아보곤 해요. 보다 보니 빠져서 주변 캐릭터를 더 모으기도 하고요.
1 입구의 복도 진열장에 전시된 <톰과 제리> 아이템. 2 <귀멸의 칼날> 속 우부야시키 저택 디오라마.
토이뮤지엄을 오픈하기 전에는 어떻게 수집품을 보관하고 정리했나요? “이 많은 물건이 다 어디 있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이전에는 컬렉션 규모가 이렇게 크지 않았어요. 20평 규모의 사무실에서는 20평이 허락하는 물량만 모았고, 60평으로 옮기면서 더 사들여 60평 규모가 되었죠. 지금은 200평으로 넓어져 현재진행형으로 계속해서 모으고 있어요.
물건을 모으는 행위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집품을 보면 물건을 구하려고 천안이며 부산이며 다녀온 기억도 떠오르고, 궁핍했던 시절 사지 못한 걸 나중에 손에 넣었을 때는 과거를 떠올리며 뿌듯함을 느끼기도 해요. 어려웠던 시절, 열심히 살았던 시절, 잘 풀린 시절을 모두 보여주는 파노라마이자 일기장 같달까요. 그런 점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죠.
수집품에 얽힌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개그 팬과 달리 유튜브 구독자들이 주는 선물은 대부분 장난감이에요. 유튜브를 8년 넘게 하며 특히 남성 팬이 많아졌는데, 구하기 힘든 아이템을 주실 때가 많아요. 귀한 걸 왜 주시느냐고 물으면 “뮤지엄에 이 라인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답하세요. 그분에게도 귀한 컬렉션일 텐데 선뜻 내어주는 모습을 보면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전설의 용사 다간>의 레드 가이스트, <용자 엑스카이저>의 다이노 가이스트는 용자물 중에서도 희소한 아이템 세 손가락에 들어요. 그런데 두 개를 선뜻 기증해주셨어요. 또 수집할 엄두를 못 내던 <가면라이더> 헤이세이 1기 제품을 10개 넘게 건넨 분도 있고요. 이 컬렉션은 오롯이 저 혼자 모은 게 아니라 구독자들과 함께 만들었기에 더 의미가 커요. 그래서 ‘뮤지엄 열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해요.
더네이버, 피플,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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