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경제는 장밋빛 헤드라인으로 가득하다. AI(인공지능) 붐에 힘입은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고,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서 정부와 일부 언론은 '수출 강국의 부활'을 앞다투어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시야를 넓혀 파이낸셜타임스(FT), 블룸버그(Bloomberg), OECD, PIIE(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등 주요 외신과 국제기관의 최근 리포트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보는 한국의 좌표는 훨씬 더 복합적이다. 외신과 글로벌 싱크탱크들은 반도체 사이클이 만들어낸 단기 호조를 인정하면서도, 인구·무역구조·기업지배구조라는 세 축에서 구조적 취약성이 누적되고 있다고 공통적으로 경고한다
OECD·블룸버그가 지적한 '세계 최저 출산율'의 거시경제학
첫 번째는 인구 구조다. OECD와 다양한 국제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최근 0.7명 안팎까지 내려앉아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OECD는 "이 수준이 유지될 경우 노동 공급과 재정에 심각한 압력을 줄 것"이라고 분석하며, 여성의 경력 단절 비용, 높은 주거·교육비, 장시간 노동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을 핵심 원인으로 꼽는다.
인구 전망을 다룬 해외 보고서들은 0.7대 출산율이 장기간 지속될 때, 한 세대 뒤 한국의 자녀·손주 세대 규모가 현재보다 극단적으로 줄어드는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OECD는 0.7 수준의 출산율이 이어질 경우 "부모 세대 100명에 약 35명의 자녀, 10명 안팎의 손주 세대"만 남게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 인구 쇼크가 복지 문제에만 그치지 않고 경제 전반의 잠재성장률을 낮춘다는 점이다. 내수 기반이 위축되고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 노동시장 경직성과 청년층의 불안정 고용이 지속되면, 1인당 GDP와 재정 건전성에 대한 하방 압력은 피하기 어렵다는 경고가 국제 보고서에서 반복된다. 인구 구조개편을 위한 노동·연금·교육·이민 정책의 일관된 패키지가 요구되는 이유다.
PIIE "한중 수직적 분업에서 수평적 경쟁으로"… 반도체 착시 속 무역 구조 변화
두 번째는 수출 구조, 특히 한중 관계다. 국내에선 대미(對美) 수출이 대중(對中) 수출을 추월한 흐름을 '공급망 다변화의 성과'로 호평하는 분위기가 적지 않지만, PIIE의 시각은 보다 냉정하다.
PIIE는 한국이 과거에는 핵심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이 이를 완제품으로 조립해 세계로 수출하는 '수직적 분업' 구조에 있었으나, 중국의 산업 업그레이드와 '중국제조 2025' 정책 이후 이 관계가 점차 '수평적 경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석유화학·철강은 물론 전기차·배터리·디스플레이 등에서 중국 기업들이 직접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면서, 한국은 더 이상 중국의 안정적 고객을 전제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변화가 '완전히 끝났다'거나 '돌이킬 수 없다'고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수직 분업에 기댄 과거 수출 모델이 약해지고 있다는 방향성은 데이터로도 확인된다. 최근 기사들에서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상당 부분 수입 감소에 따른 '불황형 흑자' 성격을 띤다는 분석이 나오고, 반도체를 제외한 여러 품목의 경쟁력 약화가 지적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외신이 주목하는 것은 반도체 호황이 전체 수출을 떠받치는 동안, 중국을 향한 중간재 수출과 다양한 제조업 라인의 수출 기반이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공급망 재편과 탈(脫)중국 전략을 추진하면서도, 중국과의 기술·가격 경쟁을 직시한 산업 전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FT·국제 투자자 "밸류업만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어려워"
세 번째는 자본시장과 기업 지배구조다. 한국 정부는 '기업 밸류업(Corporate Value-up) 프로그램'을 통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FT와 글로벌 투자자들의 평가는 아직은 신중하다.
FT는 기사에서 "한국의 상장사 저평가 문제는 오랫동안 지배구조와 소액주주 보호 미흡에 기인해 왔다"고 지적하며, 밸류업 프로그램이 새로운 인덱스와 세제 인센티브를 통해 주주환원을 촉진하려는 시도임에도 근본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국내 개혁론자들의 비판을 전했다. 조선·중앙·해외 운용사 리포트에서도, 프로그램이 '자율 참여' 방식으로 설계돼 강제력과 집행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국제 투자자들이 꼽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단순한 배당 부족을 넘어선다. 다수의 상장사가 소수 지배주주에 의해 사실상 통제되고, 합병·분할·비상장 전환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 장치가 빈약했다는 경험이 누적돼 왔다. 상속·증여세 체계와 관련해 지배주주가 경영권 유지를 위해 주가 관리에 나설 유인이 작동할 수 있는 환경도, 구조적 요인으로 자주 언급된다.
외신과 글로벌 운용사 리포트가 공통적으로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자율적 공시 권고와 인센티브 중심의 밸류업만으로는 장기 자본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고, 이사·경영진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모든 주주'로 명확히 확장하는 상법·자본시장법 개정 등 제도적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호황의 장단을 가려 보는 '골든타임'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가져다준 수출 개선과 기업 실적 호조는 한국 경제에 분명 중요한 완충 장치다. OECD도 강한 수출과 높은 고용·낮은 실업률 덕분에 최근 성장률이 일정 부분 회복됐다고 평가한다. 동시에 여러 국내외 분석은 이 호황이 내수 침체와 중소·영세기업 부진, 건설·부동산 부문 금융 리스크를 가리는 '착시'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외신과 국제기관의 리포트를 종합해 보면, 제3자의 눈에 비친 한국은 AI 혁명의 전선에서 반도체·디지털 인프라를 선도하는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 한중 무역구조의 재편,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지체라는 구조 리스크를 동시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특정 대기업의 반도체 실적에만 시선을 고정할 때가 아니라, 인구·산업·자본시장이라는 세 축을 놓고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시기다. 반도체 사이클이 제공하는 이 '골든타임' 동안, 우리는 단기 지표 개선에 안주하지 않고 노동·연금·교육·이민 정책과 지배구조 쇄신을 본격화할 수 있을지 여부로 '포스트 피크 코리아'의 궤적이 결정될 것이다.
[폴리뉴스 박수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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