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SK가 1차 협력사를 넘어 2·3차 협력사까지 포괄하는 전면적 상생 협약을 체결하며 산업 생태계 구조 자체를 바꾸는 ‘동반성장 모델’을 공식화했다. 단순 지원 확대를 넘어 대금 지급, R&D, 금융, 거래 관행, 인재 육성까지 공급망 전 단계에 걸친 시스템 개편이 공개됐다.
2일 서울 중구 SKT타워에서 열린 ‘SK-1·2·3차 협력사 상생협약 체결식’ 현장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계열사와 협력사의 상생을 위한 자리인 만큼 인사를 나누는 관계자들의 얼굴에도 기대감이 감돌았다.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분위기는 더욱 고조됐다. 협약의 핵심 방향이 공개될 때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반응을 보였고, 일부 발표 내용이 공유될 때마다 잔잔한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오며 현장의 공감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최창원 의장, 공정거래위원회 주병기 위원장, SK수펙스추구협의회 지동섭 SV위원장, SK하이닉스·SK텔레콤·SK에코플랜트·SK지오센트릭·SK실트론·SK㈜ AX·SK인텔렉스 등 7개 계열사 CEO와 100여개 협력사 대표 등 150여명이 참석했다.
최 의장은 환영사에서 현재 산업 현장이 겪는 기술 불안정성과 양극화라는 딜레마를 언급하며 “진정한 의미의 공존과 상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가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SK의 성장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협력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그간의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늘을 계기로 단순한 일회성 만남이 아닌 더욱 깊고 구조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했다.
주 공정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부의 편중은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의 동학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 협력의 질서가 우리 경제에 뿌리내려야만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SK가 추진하는 상생 모델이 대한민국 경제 전반에 새로운 표준이 되길 기대한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돈의 흐름과 기술의 흐름을 동시에 바꾼 점이다. 먼저 대금 지급 구조가 전면 개선됐다. SK는 1차 중소 협력사를 대상으로 마감 후 최대 10일 이내 지급 체계를 도입하고 현금 지급 비중을 확대했다. 또한 상생결제시스템 활용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2·3차 협력사까지 자금 흐름이 직접 연결되도록 했다. 그룹 차원의 동반성장 펀드(약 6800억원 규모) 역시 지원 대상을 2·3차 협력사까지 확대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1조4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투입하고, 분석·측정 지원센터와 ‘트리니티 팹(Trinity Fab)’을 통해 협력사의 기술 실증을 지원하기로 했다.
가장 주목된 변화는 R&D 구조다. SK하이닉스는 협력사가 수행하는 기술 개발 과제에 대해 초기 개발비 최대 50%를 선제 지원하고, 성과가 판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기술 기여도를 반영해 후정산하는 ‘R&D 도전 보상제’를 도입했다. 사실상 기술 개발 실패 리스크를 기업과 협력사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구조다.
현장에서는 실제 변화 사례도 공유됐다. 반도체 특수가스 기업 티이엠씨 유원양 대표이사는 SK하이닉스와의 공동 기술 개발을 통해 희귀가스 국산화에 성공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2015년 매출 32억원에서 시작해 2025년 3000억원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SK하이닉스의 기술 지원과 육성이 있었다”며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해 파트너십의 가치를 강조했다.
2차 협력사 피에스디이 박동석 대표이사는 “납품대금 결제 주기가 기존 60일에서 25일로 단축되면서 월말 자금 압박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결제 구조 개선’이 가장 즉각적인 체감 효과로 꼽혔다.
SK텔레콤은 별도로 20년이상 축적된 상생 모델을 소개했다. 100% 현금 지급과 ‘대금지급바로’ 서비스 등을 통해 협력사 자금을 신속 지원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22년간 누적 14조5000억원 규모의 조기 지급을 시행해왔다. 또한 스타트업 528개를 발굴·육성하며 약 20조원 규모의 기업가치 성장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SK에코플랜트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반 스타트업 지원을, SK지오센트릭은 ESG·안전환경 개선 지원을, SK실트론은 웨이퍼 공정 교육 개방을 통해 각각 맞춤형 협력 모델을 확장하고 있다.
행사의 마지막은 SK 계열사 대표와 협력사 대표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진행한 공동 서명 퍼포먼스였다. 대표들은 서로의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으며 ‘공정과 신뢰’라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확인했다. 서명이 이어질 때마다 객석에서는 따뜻한 박수가 이어졌다.
SK텔레콤, SK에코플랜트, SK지오센트릭, SK실트론, SK C&C 등 주요 멤버사가 참여한 이번 서명식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을 관계를 넘어 서로의 경쟁력을 완성해가는 전략적 동반자임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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