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광주 여고생 살해범 장윤기의 부친이 주요 증거를 폐기(인멸)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형법상 친족특례 규정으로 입건되지 않으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일 광주지방검찰청 등에 따르면 현직 경찰 중간 간부인 장윤기의 부친은 사건 발생 사흘 뒤인 지난 5월8일 광주 광산구에 있는 아들의 원룸을 정리했다. 당시 경찰은 압수수색 이후 원룸을 별도로 보존하지 않았고, 가슴과 목 부위가 훼손된 리얼돌도 DNA 채취와 감식, 촬영을 마쳤다는 이유로 실물은 수거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윤기의 부친은 해당 리얼돌을 여러 조각으로 분해해 광주 일대에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전남의 한 농촌 마을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다른 폐기물과 함께 아들이 중·고교 재학 시절 사용했던 구형 휴대전화 여러 대도 소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범행에 사용된 SUV 차량에서 경찰이 확보하지 못했던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추가로 찾아 압수했다. 해당 저장장치에는 범행 전 피고인의 이동 경로와 행적이 담겨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장윤기의 범행에 납치와 성폭행 목적이 있었다고 보고, 경찰이 확보한 리얼돌 감식 자료와 영상, 폐기 정황 등을 주요 근거로 일반 살인보다 법정형이 무거운 강간목적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장윤기 부친의 증거인멸에 대해서는 형법상 친족특례 규정을 적용해 입건하지 않았다. 현행 형법 155조는 타인의 형사사건 등에 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면서도, 친족이나 동거 가족이 피의자를 위해 같은 행위를 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형사 입건 여부와 별개로 경찰청은 장윤기 부친에 대한 감찰에 착수했다. 경찰청은 장모 경감의 증거인멸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와 사건 수사 과정의 미흡 여부 등을 들여다볼 방침이다.
친족특례는 앞서 지난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해오고 있는 제도다. 가까운 가족에게 범인을 넘기거나 증거를 보존하도록 강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범인은닉·도피와 증거인멸 범죄에 적용돼 왔다.
이 같은 특례는 형법상 ‘기대 가능성’ 개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용어사전에 따르면,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책임이 조각된다. 즉 행위 자체는 위법하더라도 당시 달리 행동하기 어려웠다면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의미다.
문제는 현행법이 사건의 중대성이나 증거가 사건 규명에 미치는 영향 등을 따지지 않고 친족특례를 일률적으로 적용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 일각에서는 가족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중대 사건에서 핵심 증거를 폐기·소각하는 행위까지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과도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일, 정성호 법무부 장관도 친족특례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정 장관은 이날 SNS를 통해 “현직 경찰관인 부친이 중요 증거를 인멸했음에도 곧바로 제재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지난해 12월 유사한 취지로 가족 간 절도, 사기 등 재산범죄의 처벌을 면제해 주던 ‘친족상도례’ 규정도 시대적 흐름에 맞춰 폐지된 만큼, 이 특례 역시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친족특례가 중대 사건에서 처벌 여부를 가른 전례도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는 지난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당시 대법원은 오씨의 행위를 범인은닉·도피의 교사범이 아니라 정범의 행위로 본 원심에 법리 오해가 없다고 봤다. 또 그가 유 전 회장의 매제로, 2촌 인척 관계에 있어 형법상 친족특례가 적용된다는 판단도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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