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兒童]. 사전에 따르면 나이가 어린 아이, 대체로 유치원 시기부터 사춘기 이전까지를 의미한다. ‘아동복지법’에서는 이를 18세 미만의 사람으로 규정한다.
아동은 보호의 대상인 동시에 독립된 권리의 주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처럼 인식하는 시각이 남아 있으며 이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의견을 형성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해 그 가능성과 권리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아동의 삶은 제도적 사각지대와 한계 속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 기획에서는 아동학대, 정책 과정에서의 배제, 다양한 형태의 차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드러나는 아동권리의 현주소를 짚어 본다. 더 나아가 정부의 대응을 점검하고 전문가와 현장 관계자들의 제언을 통해 실질적인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성장과 함께 처음으로 또래와 관계를 맺고 사회를 경험하게 된다. 배움과 우정, 협력과 갈등을 통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자라나는 공간, 바로 ‘학교’에서 말이다.
그러나 최근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의 꿈과 가능성만이 자라는 공간이 아니게 됐다. 신체적 폭력은 물론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 사이버폭력까지 다양한 형태의 폭력이 학교 속으로 파고들면서 아이들의 안전과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미래를 준비해야 할 교실이 상처와 두려움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는 모양새다.
학교폭력은 어떤 폭력보다도 잔인하다. 또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아이들의 일상 전체를 무너뜨리고 아직 성장 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깊은 상처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을 단순한 학생 간 갈등이 아니라 아동의 생존권과 발달권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받을 권리까지 침해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진단했다. 학교폭력 사안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행정 절차와 법적 분쟁이 확대되는 현시점에서 정작 권리의 주체인 아동이 소외되지 않도록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학교폭력 대응은 여전히 사안 처리와 징계, 처분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폭력 발생 이후 책임을 가리는 절차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폭력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안전하게 개입하며 건강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예방·회복 체계 역시 강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해 학생은 충분히 보호받고 일상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하며 가해 학생 역시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고 변화할 수 있는 교육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지적장애가 있는 중학교 3학년 학생 A군을 야간에 집단 폭행한 혐의로 또래 중학생 7명이 경찰 수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은 야외 쉼터와 건물 옥상 등에서 2시간 넘게 A군을 폭행하고 신체를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피해 학생 부모는 가해 학생들이 A군에게 옷을 벗도록 강요한 뒤 이를 촬영하고 달팽이를 강제로 먹게 하는 등 비인간적인 가혹행위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보호자인 B씨는 자녀의 피해 사실을 확인한 뒤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이 사과가 아닌 법적 대응이었다고 토로했다. B씨는 아이의 휴대전화에서 약 2년간 이어진 폭행과 조롱의 흔적을 확인한 뒤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가해 학생 측 보호자로부터는 사과 대신 "법적으로 대응하면 변호사를 선임하겠다"는 취지의 문자만 받았다고 털어놨다.
이처럼 교육당국이 다양한 학교폭력 예방·대응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학교폭력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피해 학생과 가족은 회복을 바라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쌍방 신고와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학교폭력이 반복되는 사이 도움을 요청해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점차 약해지고 주변의 방관이 확산되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BTF푸른나무재단이 지난해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국 17개 시·도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재학생 8476명을 대상으로 진행해 지난달 발표한 ‘2026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 피해경험은 6.2%, 가해경험은 2.5%, 목격경험은 10.5%였다.
교급별로는 초등학생 피해 경험 비율이 12.5%로 가장 높았으며 중학생 3.4%, 고등학생 1.6% 순이었다. 가해 경험 역시 초등학생이 5.2%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 1.4%, 고등학생 0.2%로 집계됐다. 목격 경험도 초등학생(17.8%)이 중학생(8.1%)과 고등학생(3.6%)을 크게 웃돌았다.
피해유형으로는 언어폭력이 23.8%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신체폭력(17.9%), 사이버폭력(14.5%) 순이었다.
학교폭력 피해를 겪은 뒤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은 줄고 폭력을 목격하고도 개입하지 않는 학생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반복 피해와 반복 가해는 2023년 이후 각각 약 1.4배 늘어 지난해 각각 54.4%, 35.9%를 기록했다. 그러나 피해 후 도움을 요청했다는 응답은 49.4%로 2022년(74.5%)와 비교해 크게 줄었다.
이는 신고의 실효성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영향으로 풀이되는데, 피해 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응답은 33.0%로 2023년(10.9%)과 비교해 약 3배 증가했다. 폭력을 목격한 뒤 ‘가만히 있었다’는 응답도 54.6%로 나타났다.
학교폭력 악순환을 끊는 주요 방식으로는 사과와 반성이 꼽혔다. 다만 현장에서는 분쟁이 확대되는 양상이 관측됐다.
피해가 해결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들은 ‘가해학생에게 사과를 받지 못해서’(50.8%)를 지목했다. 피해 이후 필요한 도움으로 ‘가해학생의 사과’를 택한 비율도 2023년 51.8%에서 지난해 70.8%로 급격히 증가했다.
가해학생 또한 가해를 그만둔 가장 큰 이유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게 돼서’(37.0%)를 꼽았다. 다만 피해 후 쌍방 신고 경험은 2023년 40.6%에서 지난해 52.6%로 증가해 분쟁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통계에서도 2026학년도 대입부터 학교폭력 조치사항이 의무 반영됐음에도 고등학교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오히려 감소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종로학원이 지난 5월 학교알리미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전국 2397개 고등학교의 학교폭력 심의 건수는 7646건이었다. 이는 2024년(7446건)보다 2.7% 증가한 수치이며 2023년(5834건)과 비교하면 증가세가 더욱 뚜렷했다. 오히려 학교폭력 기록이 입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평가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학교 현장에서 사안을 신고하고 심의에 회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으로 해석된다.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 엄정한 처벌과 대입 반영 등 제도가 강화됨에 따라 학교 현장에서는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법적 절차를 통해 대응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양상이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분쟁에 대비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학교가 회복의 공간보다 분쟁의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이처럼 분쟁과 절차에 행정력이 집중되는 사이 정작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와 회복 지원은 상대적으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학교폭력 대응이 처벌 강화와 대입 반영 등 엄벌주의에 무게를 뒀지만 앞으로는 교육적 해결과 회복을 함께 추구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BTF푸른나무재단 김미정 상담본부장은 “학교폭력 피해는 학생의 신체·정서 건강은 물론 학교생활과 일상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며 “피해가 장기화될 경우 등교 거부와 학교 부적응, 자해·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부모와 가족까지 급성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 등 피해가 가족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고 짚었다.
가해 학생에 대해서도 “성장 과정에 있는 아동인 만큼 단순한 처벌 대상이 아니라 행동을 교정하고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과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가정에서 폭력을 학습한 학생들이 이를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식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만큼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개입해 재발을 막는 통합적 지원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상담본부장은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처벌보다 ‘진심 어린 사과’라고 강조했다. 그는 “학교폭력이 심각한 범죄로 확대되기 전 초기 단계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관계 회복을 지원하는 교육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을 각각 충분히 상담한 뒤 안전한 환경에서 사과와 반성, 관계 회복의 기회를 제공하는 ‘관계회복 숙려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심의위원회 회부나 소송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회복 중심 접근은 단순한 분쟁 조정이 아니라 피해 학생이 자신의 요구를 말하고 사과받을 권리, 가해 학생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변화할 기회를 보장하는 과정이 된다.
중장기적으로는 부모들이 처벌이나 법적 분쟁보다 아이의 회복을 우선하는 관점으로 접근하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에도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의 지원을 확대해야 하며 학교 밖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과 사이버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플랫폼 기업도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원대학교 교육학과 박지현 교수는 학교폭력이 아동의 학습권과 건강권을 훼손하는 것을 넘어 자아존중감과 사회적 관계 형성 능력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긴다고 봤다.
박 교수는 “이러한 권리 침해의 연쇄 반응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회적 부적응과 고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학교라는 공동체 내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경험은 아동에게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고 위협적인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사안 조사의 전문성 강화’와 이를 뒷받침할 ‘법적 보호 장치의 마련’을 꼽았다. 박 교수는 “조사관의 전문성을 담보할 교육 과정의 표준화와 함께 정당한 직무 수행을 보호할 법적 근거 마련이 선행되고 전국 교육지원청에 설치된 ‘학교폭력 제로센터’의 기능을 단순 행정 지원을 넘어 전문적인 ‘학교 컨설팅 및 법률 지원’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는 지자체와 연계된 ‘학생 맞춤형 통합 지원 체계’를 완성해 위기 학생을 조기 발견하고 상담, 치료, 법률 지원이 원스톱으로 매칭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학교폭력 대응의 실효성은 ‘엄정한 법 집행’이라는 차가운 정의와 ‘따뜻한 교육적 포용’이라는 회복의 가치가 공존할 때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가해 학생 역시 아동이라는 점에서 현재 제도가 처벌과 교육·회복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서는 “가해 학생 역시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미성년자’라는 법적 지위를 균형 있게 고려해야 한다. 무분별한 조치의 확대보다는 사안의 경중에 따른 조치의 다양화와 함께 교육적 재량권(Discretionary Power)을 강화해 실질적인 관계 회복과 반성이 일어날 수 있는 제도적 여백을 마련해야 한다”며 “처벌의 기록이 목적이 아닌 가해 학생의 진정한 선도와 재발 방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내실 있는 특별교육 프로그램의 확충이 병행될 때 비로소 제도의 실효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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