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신기록의 나라, 환율은 왜 '위기의 2009년'으로 돌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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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신기록의 나라, 환율은 왜 '위기의 2009년'으로 돌아갔나

뉴스로드 2026-07-02 15:30:53 신고

3줄요약

원화 약세를 무역수지나 단기 외환 수급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한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실적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1500원대에 올라서 있다. 과거에는 수출이 늘고 무역흑자가 커지면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바꾸면서 원화 강세 압력이 생겼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연결고리가 약해졌다. 

수출기업은 달러 환전을 늦추고, 가계는 해외 주식과 달러 자산을 사고, 연기금은 장기 수익률을 이유로 해외자산 비중을 높이고 있다.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 능력은 여전히 강하지만, 그 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으로 돌아와 달러 매도와 원화 매수 압력으로 전환되는 힘은 예전만큼 크지 않다는 뜻이다. 환율 전문가들은 원화 환율을 움직이는 중심축이 무역수지에서 거주자의 자산 배분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원·달러 환율이 6월 중순 이후 우상향 흐름을 보이며 7월 2일 장중 1550원대를 넘어섰다. 이날 오후 장중 원·달러 환율은 1557.07원까지 오른 뒤 1553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사진=인베스팅닷컴]
원·달러 환율이 6월 중순 이후 우상향 흐름을 보이며 7월 2일 장중 1550원대를 넘어섰다. 이날 오후 장중 원·달러 환율은 1557.07원까지 오른 뒤 1553원 안팎에서 거래됐다. [사진=인베스팅닷컴]

▲무역흑자 공식 깨졌다

2일 서울 외환시장에 안팎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대외금융자산은 2조8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반면 6월 무역흑자는 361억5000만 달러 수준이다. 대외금융자산의 1.3%만 달러 쪽으로 이동해도 월간 무역흑자는 외환시장에서 상쇄될 수 있다. 상반기 흑자를 연율화해도 대외금융자산의 10% 안팎에 그친다. 환율을 움직이는 힘이 매달 새로 들어오는 달러의 양보다 이미 쌓인 해외자산의 배분 방향에 더 크게 좌우되는 구조가 됐다.

이 변화는 루카스 비판으로 설명된다. 과거의 경제 공식은 그 공식을 낳은 제도와 정책 환경이 유지될 때만 유효하다. “무역흑자가 늘면 원화가 강해진다”는 공식도 자본 이동이 제한되고, 거주자의 해외자산이 크지 않으며, 수출기업이 달러를 곧바로 환전하던 시기의 경험칙이었다. 지금은 세 조건이 모두 약해졌다. 무역흑자와 원화 강세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진 것은 일시적 예외가 아니라 환율을 결정하는 환경 자체가 달라진 결과에 가깝다.

제임스 토빈의 포트폴리오 선택 이론은 환율의 결정축이 무역수지에서 자산 보유로 옮겨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환율은 그달 들어온 달러와 나간 달러의 차이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시장 참여자들이 원화 표시 자산과 달러 표시 자산을 어떤 비율로 보유하려 하느냐가 환율을 좌우한다. 한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달러를 벌고 있지만, 그 달러가 국내 외환시장으로 충분히 돌아와 달러 매도와 원화 매수 압력으로 전환되는 구조는 약해지고 있다. 수출이 늘어도 기업과 가계, 연기금이 달러 자산 보유를 늘리면 무역흑자가 곧바로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반도체 호황의 현금흐름도 국내 외환시장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는다. 해외 생산·판매 법인에 쌓인 이익은 현지 운전자금과 설비투자 재원으로 남는다. 외국인 주주에게 돌아가는 배당과 주가 차익은 다시 달러 수요로 빠져나간다. 첨단 공정 투자가 늘수록 노광장비·식각장비·검사장비 등 핵심 설비 수입도 함께 증가한다. 수출로 번 달러의 일부가 해외 장비업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수출기업이 환율 추가 상승을 기대해 달러 환전을 미루면 장부상 수출 호황은 커져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매도와 원화 매수 압력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는다. 반도체가 달러를 벌어오는 산업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달러가 국내에 머물러 원화 수요를 만드는 산업으로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미 달러 [사진=연합뉴스]
미 달러 [사진=연합뉴스]

▲1500원은 시장의 경계선

토머스 셸링의 초점 개념은 원·달러 환율 1500원이 왜 단순한 가격선에 그치지 않는지 설명한다. 1500원 자체에 특별한 경제적 마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 재무 담당자, 외환 딜러, 개인 투자자, 정책당국이 모두 그 숫자를 위기적 환율로 기억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모두가 주목하는 숫자는 그 자체로 시장의 행동을 묶는 신호가 된다. 환율이 1500원을 넘는 순간 시장 참여자들은 다른 참여자들도 달러 보유를 늘릴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판단은 달러 보유를 키우고, 늘어난 달러 보유는 다시 원화 약세를 밀어 올린다. 실제로 이날 오후 1시 2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552.30원을 기록하며 1500원선을 크게 웃돌았다.

이후에는 내시 균형이 작동한다. 수출기업의 환전 지연은 단순한 심리 문제가 아니다. 다수가 달러를 보유하는 국면에서는 한 기업만 먼저 원화로 바꾸기 어렵다. 먼저 환전한 뒤 환율이 더 오르면 그 기업은 추가 상승분을 포기해야 한다. 반대로 다른 기업들도 달러를 계속 들고 있으면 원화 약세 압력은 이어지고, 달러 보유자는 원화 환산 이익을 얻는다. 이때 개별 기업의 합리적 선택은 먼저 환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업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쪽에 가까워진다. 정부가 기업에 달러 환전을 요청해도 효과가 제한적인 이유다. 가격 구조와 시장 기대가 그대로라면 기업 입장에서는 먼저 원화로 바꾸는 선택이 손해로 인식될 수 있다.

대니얼 카너먼의 전망이론은 이 환전 지연이 왜 반복되는지도 설명한다. 기업 재무 담당자가 1300원대 환율을 기준점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1500원대 환전은 겉으로는 큰 이익 실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장에 1550원, 1600원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 판단 기준은 달라진다. 지금 환전하는 행위가 “이익을 얻는 선택”이 아니라 “더 받을 수 있었던 원화를 포기하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를수록 기준점도 함께 올라간다. 기업은 더 높은 환율을 기다리고, 기다림은 다시 달러 보유를 늘린다. 이렇게 되면 환전 지연은 일회성 판단이 아니라 원화 약세를 고착시키는 반복 행동으로 굳어진다.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리차도 달러 보유 부추긴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 분석은 한미 금리차가 달러 보유를 어떻게 유리하게 만드는지 보여준다. 금리는 돈의 가격이다. 한미 금리 역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수출기업이 달러를 선물환으로 헤지한 뒤 원화로 바꾸면 비용이 발생한다. 반대로 달러를 그대로 들고 있으면 금리 차에 따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여기에 원화 약세가 더 진행되면 원화 환산 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 가격 구조에서는 기업에 환전을 권하는 말보다 달러를 들고 있을 때의 이익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외환시장에서는 설득보다 가격이 먼저 움직이고, 지금의 가격은 달러 보유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 있다.

이 흐름은 삼불일치와 맞물리며 환율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된다. 한 나라는 자본 이동의 자유, 독립적인 통화정책, 안정적인 환율을 동시에 가질 수 없다. 한국은 자본 이동을 열어둔 상태에서 국내 경기와 물가에 맞춰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이 조합에서는 금리차가 벌어지거나 대외 불확실성이 커질 때 환율이 충격을 흡수하는 변수로 밀리기 쉽다. 시장도 이 구조를 학습한다. 해외투자가 늘고 달러 수요가 커질수록 투자자들은 원화가 약세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을 먼저 가격에 반영한다. 원화 약세가 단순한 심리가 아니라 정책 체제에 대한 시장의 해석으로 굳어지는 이유다.

여기에 생애주기 가설이 설명하는 인구구조 변화까지 겹친다.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가계는 은퇴 이후 소비를 감당할 장기 수익률을 찾아야 한다. 연기금도 미래 지급 의무를 맞추기 위해 국내를 넘어 더 넓은 투자처를 찾는다. 국내 자산의 기대수익률이 낮고 선택지가 제한되면 자금은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으로 이동한다. 개인의 해외 주식 투자는 일시적 유행만으로 보기 어렵고,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도 단순한 운용 전략 변경에 그치지 않는다. 자본 이동이 열린 상태에서 가계와 연기금의 장기 자금이 해외로 향하면, 원화는 저축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달러 자산을 사기 위해 거쳐 가는 통화가 된다.

[사진=IMF]
[사진=IMF]

▲1997년과 닮았지만 방향은 다르다

더글러스 다이아몬드와 필립 딥비그의 '뱅크런(bank run)' 모형을 현 통화시장에 대입하면 지금의 원화 약세는 1997년 외환위기와 닮았지만 작동 방향은 정반대다. 1997년에는 외국인 채권자가 한국의 외환보유고를 의심했다. 달러를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은 먼저 빠져나가는 쪽을 유리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외국인 자금은 빠르게 한국 밖으로 움직였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달러 공급과 외환보유액 확충이 핵심 처방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의 중심이 외국인의 달러 회수와 국가의 대외 지급능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흐름은 다르다. 자국 거주자가 원화 표시 자산보다 달러 표시 자산을 더 선호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다. 기업은 벌어들인 달러를 곧바로 원화로 바꾸지 않는다. 가계는 해외 주식과 달러 자산을 사고, 연기금은 장기 수익률을 이유로 해외자산 비중을 높인다. 이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달러를 빼가는 전통적 외환위기라기보다 국내 경제주체가 원화를 계속 들고 있을 이유를 약하게 느끼는 구조적 이동에 가깝다. 따라서 외환보유고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달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원화 자산을 보유할 유인이 약해진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뱅크런을 멈추는 핵심은 창구에 쌓아둔 현금만이 아니다. 예금자가 먼저 돈을 빼지 않아도 된다고 믿게 만드는 제도적 신뢰가 더 중요하다. 이를 원화 시장에 적용하면 외환보유액은 창구의 현금에 가깝다. 반면 원화 자산의 매력, 정책 체제에 대한 신뢰, 환율 안정에 대한 예측 가능성은 예금보험에 가깝다. 시장이 원화를 계속 들고 있어도 불리하지 않다고 믿어야 달러 쏠림이 약해진다. 그래서 지금의 원화 약세는 외환시장 개입만으로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거주자가 원화 표시 자산을 보유할 이유를 회복시키는 제도 설계가 함께 가야 한다.

대규모 대미 투자 약정도 이런 기대를 강화한다. 연간 수백억달러 단위의 해외 투자 집행이 예정돼 있으면, 시장은 향후 달러 수요를 미리 가격에 반영한다. 이는 단순한 투기 심리라기보다 공개된 달러 수요를 선반영하는 움직임에 가깝다. 기업과 투자자는 앞으로 달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동시에 다른 시장 참여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까지 알고 있다. 이때 달러 매수는 개별 판단을 넘어 집단적 기대가 된다. 환율은 실제 달러 수요가 발생하기 전부터 그 기대를 먼저 반영한다.

한국, 일본, 대만 통화가 함께 약세 압력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세 나라는 모두 수출 경쟁력이 강하고 대외자산을 쌓아온 경제다. 그러나 동시에 해외투자와 대미 투자 부담도 커졌다. 무역으로 달러를 벌어도 그 달러가 국내 통화 수요로 충분히 돌아오지 않으면 통화는 강해지기 어렵다. 동아시아 채권국의 통화 약세는 달러를 못 버는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자국 거주자마저 해외자산을 더 선호하는 구조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래픽=연합뉴스]
[그래픽=연합뉴스]

▲해법은 시장 개입보다 제도

발터 오이켄과 프란츠 뵘의 분석은 원화 약세를 단순한 가격 변동이 아니라 규칙의 문제로 보게 한다. 외환당국이 시장에서 달러를 팔아 환율을 누를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과 가계가 원화보다 달러를 들고 있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구조가 그대로라면 효과는 오래가기 어렵다. 문제는 환율 숫자 하나가 아니다. 경제주체들이 원화를 팔고 달러를 사도록 만드는 보수 체계다. 가격을 잠시 누르는 것과 선택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따라서 의사의 처방도 시장 개입보다 제도 설계에 가까워야 한다. 해외 자회사에 쌓인 이익이 국내로 돌아오도록 배당 환류 세제를 손질해야 한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방식도 재량 판단이 아니라 사전에 공개된 자동 규칙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원·달러 환율이 장기 평균보다 일정 수준 이상 높아지거나 한미 금리차가 일정 폭 이상 벌어질 때 해외자산 일부를 단계적으로 환헤지하고, 환율이 안정 구간으로 내려오면 헤지 비율을 낮추는 방식이다. 시장이 국민연금의 달러 매도·원화 매수 구간을 미리 알 수 있어야 달러 매수 쏠림을 줄이는 신호가 된다.

한국은행도 환율을 충격을 흡수하는 잔차변수로만 두지 않겠다는 반응함수를 시장에 더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환율이 특정 수준을 넘거나 원화 약세 기대가 자기실현적으로 번질 때 통화정책, 유동성 공급, 외환시장 안정 조치를 어떤 순서와 조건으로 조합할지 제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미 투자 집행에 필요한 달러도 현물시장에서 한꺼번에 조달하면 원화 약세 기대를 키울 수 있다. 외화채, 통화스와프, 외환보유액 등 시장 충격이 작은 조달 경로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핵심은 원화 자산을 들 이유를 다시 만드는 데 있다. 국내 기업의 투자수익률이 낮고, 배당 매력이 약하며, 지배구조와 자본시장 신뢰가 충분하지 않다면 가계와 연기금은 해외자산을 계속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원화 약세의 본질이 달러 부족이 아니라 원화 자산을 보유할 유인의 약화라면 환율 정책은 외환시장 안에서 끝날 수 없다. 산업정책은 국내 투자수익률을 높이고, 자본시장 정책은 주주환원과 시장 신뢰를 끌어올려야 한다. 연기금 운용과 세제도 달러 쏠림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맞물려야 한다.

모리스 옵스펠드의 국제금융 연구를 적용하면 원화의 가격은 한국이 벌어들이는 달러의 양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경제에서는 무역수지보다 자산 보유와 기대가 환율을 더 크게 흔들 수 있다. 달러가 국내로 얼마나 돌아오는지, 거주자가 원화 자산을 계속 보유하려 하는지, 정책당국이 환율을 어떤 변수로 다루는지가 함께 작용한다. 한 환율 전문가는 “원화 약세는 달러를 못 버는 문제가 아니라 달러가 원화 수요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라며 “시장 개입보다 거주자가 원화 자산을 들 이유를 회복시키는 제도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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