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발목 잡힌 금융위기 대비 규제…2년째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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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에 발목 잡힌 금융위기 대비 규제…2년째 표류

이데일리 2026-07-02 15:10:0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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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금융당국이 금융위기 등 예상치 못한 충격에 대비해 은행이 평소 더 많은 자본을 쌓도록 하는 ‘스트레스완충자본’ 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2년째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고환율과 정부의 생산적·포용금융 확대 기조가 맞물리면서 도입 시기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은행의 자금 공급 역할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정작 위기 대응을 위한 안전판 마련이 계속 뒤로 밀리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자리한 은행 환전창구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있다.(사진=연합뉴스)
2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장에 자리한 은행 환전창구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있다.(사진=연합뉴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2024년 은행업감독규정 개정안을 변경 예고하며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 방침을 밝혔다. 스트레스완충자본은 금융당국이 실시하는 위기상황 분석, 이른바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은행별 위험가중자산(RWA)의 최대 2.5%를 보통주자본(CET1)으로 추가 적립하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은행이 평소에 위기 대비용 자본을 더 쌓아두도록 하는 규제다. 경기 침체나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했을 때 은행이 손실을 견디고, 기업과 가계에 대한 대출을 급격히 줄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취지다. 금융위기 때 은행이 흔들리면 실물경제까지 충격이 번질 수 있는 만큼, 사전에 방파제를 높여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제도는 발표 이후 한 차례도 시행되지 못했다. 당초 금융당국은 2024년 말 도입을 검토했지만 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등을 거치며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자 시행을 미뤘다. 이후에도 도입 시기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도입 여건은 당시보다 더 나빠졌다. 최근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60원에 육박하고 1550원대에서 움직이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 규모가 커지고 위험가중자산도 늘어난다. 위험가중자산이 커지면 같은 자본을 갖고 있어도 자본비율은 낮아지기 때문에 은행의 자본 관리 부담이 커진다.

은행권은 규제 자체보다 시기가 문제라고 본다. 5대 시중은행의 올해 1분기 말 위험가중자산을 기준으로 스트레스완충자본을 최대 수준으로 적용하면 추가로 쌓아야 하는 보통주자본은 단순 계산으로 약 25조9000억원에 달한다. 당장 규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은행은 없지만, 초과 자본이 줄면 대출 확대와 투자, 주주환원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여력도 그만큼 줄어든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당장 규제를 맞추지 못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추가 자본을 쌓으면 기업대출이나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줄어든다”며 “고환율로 자본 관리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새로운 규제까지 도입되면 부담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정책 기조도 변수다. 정부는 올해 생산적금융과 포용금융 확대를 주요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생산적금융은 첨단산업과 중소기업 등에 자금을 공급해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자는 것이고, 포용금융은 중·저신용자와 취약차주에 대한 금융 지원을 넓히자는 취지다.

문제는 두 정책 모두 은행 입장에서는 위험가중자산을 늘릴 수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이나 중·저신용자 대출은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높아 은행이 더 많은 자본을 보유해야 한다. 정부가 대출과 투자를 늘리라고 주문하는 상황에서 추가 자본 규제까지 동시에 시행하면 은행의 자금 공급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이 계속 미뤄질 경우 원래 정책 목적이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투자 확대와 취약차주 지원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완충자본은 원래 위기 전에 준비하자는 제도”라며 “위기가 현실화된 뒤 자본을 쌓기 시작하면 늦기 때문에 최소한 단계적인 도입 계획은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이런 현실을 의식하고 있다. 건전성 강화를 위해서는 스트레스완충자본 도입이 필요하지만, 정책금융 확대와 은행의 자본 여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스트레스완충자본은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을 높이기 위해 도입을 추진해야 하는 제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대내외 금융시장 상황과 은행권의 자본 여건, 생산적·포용금융 공급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행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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