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이지영 기자 | 내년 레벨4(고도 자동화)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앞두고 자동차보험 체계의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완전자율주행 시대에는 사고 책임이 운전자 중심에서 제조사와 자율주행시스템(ADS), 운행사업자로 확대되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 보험체계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보험업계는 보험의 역할도 이전의 사후 보상을 넘어 차량 데이터를 기반으로 위험을 예측·관리하는 리스크 관리 체계로 진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관련 제도 정비와 실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2030 모빌리티 혁신성장 로드맵'에 따라 지난해까지 전국 17개 시·도 55곳을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해 운영했으며 다양한 환경에서 운행 데이터를 축적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로보택시와 자율주행 셔틀 등의 서비스 제도화와 자율주행 AI 데이터센터 구축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레벨4 자율주행차에 대해 책임 체계를 기업과 운영사업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다. 독일은 차량 보유자에게 1차 책임을 부여하면서도 기술감독자와 제조사의 법적 의무를 명문화했으며 일본은 자율주행 운행사업자에게 사고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영국은 자동화차량법을 통해 자율주행 시스템 개발자와 무인 자율주행차 운영자를 새로운 법적 책임 주체로 규정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자율주행 기술 고도화에 맞춰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는 위한 것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현행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에 따라, 자율주행차의 보험 가입 의무를 차량 보유자에게 부여하고 있다. 시범운행지구에서 자율주행차를 연구·시험 운행하는 사업자 역시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다만 레벨4 이상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사고 원인이 훨씬 더 복합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운전자의 과실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결함·센서의 오류·보행자 및 신호 오인식·주행 판단 오류·원격관제 장애·통신 오류·HD맵 오류·사이버 해킹 등 다양한 요인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이처럼 사고의 책임이 제조자의 책임·소프트웨어 결함·시스템 운영 책임 등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사고 책임 구조도 차량 보유자는 물론 제조사·소프트웨어 개발사·부품 제조사·운행사업자·통신사업자·인프라 관리 주체 등으로 확대·다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 상용화 이전에 책임 분담 체계를 재설계하고, 차량 데이터 공유를 위한 법·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데이터 기반 언더라이팅 체계를 구축하는 등 보험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보험료 산정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전망이다. 웨이모(Waymo) 관련 연구에서는 시험운행과 완전자율주행 구간의 대인·대물 보험 청구 건수가 기존 차량보다 9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자율주행사고조사위원회 통계에서도 자율주행 모드의 주행거리당 사고 건수는 일반 주행보다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사고 빈도 감소가 보험료 인하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와 라이다(LiDAR)·레이더 등 첨단 장비가 탑재되면서 차량 수리비가 증가하고-사고 원인 분석·책임 규명·구상권 행사· 소송 비용도 함께 늘어날 수 있다. 여기에 소프트웨어 결함과 사이버 공격, 통신 장애 등 새로운 위험까지 보험료 산정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기존 손해율 중심의 요율 체계에서 벗어나 차량 운행 데이터와 사고 이력을 반영하는 데이터 기반 위험평가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사고기록장치와 센서 데이터, 주행 로그·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록·차량과 관제센터 간 통신 데이터 등을 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도록 차량 데이터 표준화와 공유를 위한 법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레벨4 자율주행은 일반 승용차보다 로보택시와 자율주행 셔틀, 유상화물운송 등 사업용 차량을 중심으로 먼저 상용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개인 자동차보험 중심의 시장에서 플릿 사업자와 자율주행 운행사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B2B 보험시장이 신성장축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보험업계도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상품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XA손해보험(악사손보)은 지난달 22일 모빌리티 혁신 플랫폼 쏘카와 데이터 기반 보험상품 개발 및 신규 비즈니스 협력을 위한 전략적 업무제휴협약(MOU)을 체결했다.
양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자율주행 및 안전운전점수 등 모빌리티 데이터 기반 신규 보험상품 공동 연구 ▲쏘카 고객 니즈 기반의 보험상품 공동 개발 ▲쏘카 플랫폼 내 보험상품 포트폴리오 확대 ▲시장성과 수익성을 고려한 신규 서비스 및 보험상품 개발 ▲사고심사 및 운영 업무 협력을 통한 업무 효율화와 수익성 개선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삼성화재도 지난 5월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자율주행 국가대표팀 출범식'에서 자율주행 실증도시 구축을 위한 다자간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삼성화재는 이번 협약을 통해 사고당 최대 100억원, 연간 총 300억원을 보장하는 '자율주행 전용보험'을 출시한다. 가입부터 사고 처리까지 한번에 해결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기반으로 사고 분석과 IT 보안 컨설팅 등 기업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전용 콜센터와 현장 출동 체계를 구축함은 물론 전담 통합보상팀·자율주행차 사고분석센터·교통안전문화연구소·정비기술지원센터 등의 전문 조직을 적극 활용해 실시간 대응 및 선제적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 차량 데이터가 보험 경쟁력 좌우…데이터 표준화·공유 체계 구축은 과제
업계에서는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본격화될수록 자동차보험의 역할이 데이터 기반 위험관리 중심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발생 빈도는 감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제조사와 소프트웨어 개발사, 플랫폼 사업자로 책임 주체가 다변화되면서 위험 평가와 보상 체계는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차량 데이터는 자율주행 시대 보험사의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사고 원인과 책임 주체를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선주행기록·센서 정보·시스템 로그 등 차량에서 생성되는 다양한 데이터에 대한 접근과 분석이 필수적이다. 업계는 데이터 확보와 분석 역량이 사고 조사와 손해사정은 물론 보험료 산정이나 위험평가, 리스크 관리 등이 핵심 경쟁력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보험사들은 데이터 기반 언더라이팅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완성차 업체와 모빌리티 사업자 등과의 협업을 확대하며 자율주행 환경에 특화된 맞춤형 보험상품과 리스크 관리 서비스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레벨4 자율주행 환경에서는 차량 운행 데이터와 시스템 로그를 기반으로 사고 원인과 책임을 보다 정교하게 분석하는 역량이 보험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며 "보험사와 완성차 업체, 모빌리티 플랫폼, 통신사업자 등이 데이터를 안전하게 공유하며 공동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협력 체계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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