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사진=팬오션 제공
팬오션이 '벌크선사'에서 '에너지 운송사'로 체질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17척 확보에 2조3000억원을 투입하며 벌크선 중심 사업 구조에서 탱커와 액화천연가스(LNG) 운송 비중을 높이고 있다.
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팬오션은 올해 상반기에만 VLCC 17척, 총 2조3181억8060만원 규모의 인수·신조 투자를 결정했다. 지난 2월 SK해운으로부터 VLCC 10척과 관련 장기화물운송계약을 9737억4360만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어 3월 VLCC 1척(1834억5516만원), 5월 VLCC 4척(7834억3240만원), 6월 VLCC 2척(3775억5690만원) 규모의 신조 발주를 잇따라 결정했다.
팬오션이 VLCC 투자를 늘리는 배경에는 포트폴리오 재편이 있다. 벌크선 중심의 수익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탱커와 LNG 등 비벌크 부문을 키워 실적의 안정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팬오션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조5089억원, 영업이익 140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8.3%, 24.4% 늘어난 수치다. 부문별 매출은 벌크선이 7600억원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고, 곡물사업 4492억원(30%), LNG선 1059억원(7%), 컨테이너선 1057억원(7%), 탱커선 775억원(5%)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탱커와 LNG의 수익성이다. 탱커선 매출은 전체의 5%에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2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5% 증가했다. LNG선도 매출 1059억원, 영업이익 472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49.7% 늘었다.
반면 매출 비중이 가장 큰 벌크선은 영업이익 547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10.3% 감소했다. 벌크선이 여전히 매출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지만, 이익 개선의 속도는 탱커와 LNG 등 비벌크 부문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VLCC는 원유 운송 시장을 대표하는 대형 선종이다. 선대 규모가 커질수록 대형 화주와의 장기계약 확보나 운항 효율 측면에서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올해 SK해운 VLCC 10척 인수에 장기화물운송계약이 포함된 점도 단순 중고선 매입이 아니라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함께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신조 발주 역시 중장기 전략 중 하나다. 올해 발주한 VLCC는 오는 2029년 말부터 2030년대 초반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될 예정이다. 당장의 탱커 시황에 대응하기보다 향후 노후선 교체, 환경 규제 강화, 에너지 물동량 변화에 대비해 선대를 미리 확보하는 성격이 강하다. 일부 선박이 암모니아 연료 전환 가능 사양으로 설계되는 점도 향후 친환경 선박 수요를 염두에 둔 조치다.
재무 부담은 향후 관전 포인트다. 팬오션은 그동안 낮은 부채비율과 선박금융 중심의 차입 구조를 바탕으로 재무안정성을 유지해왔다. 다만 올해 상반기에만 벌크선 4척 포함 총 21척, 2조7705억원 규모의 투자·인수를 결정하면서 중장기 차입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신조선 인도 시점의 탱커 시황과 원유 물동량, 금리·환율 흐름에 따라 투자 성과가 갈릴 수 있다.
팬오션의 체질 전환이 성공하려면 늘어난 VLCC 선대가 안정적인 계약과 운임 수익으로 연결돼야 한다는 평가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VLCC는 한 번 시장에 진입하면 선대 규모와 화주 네트워크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장"이라며 "팬오션이 상반기에만 17척을 확보한 것은 벌크 시황에만 기대지 않고 원유 운송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키우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팬오션 관계자는 "현재까지 추가 인수 계획은 없다"며 "향후 시장 상황에 맞춰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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