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바리스타, 기억과 함께 웃음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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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바리스타, 기억과 함께 웃음을 품다

더리더 2026-07-02 09:27: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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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세상을 바꾸는 정책]초로기 치매 환자 노동 가치 인정, ‘지역사회 참여’ 디딤돌로


‘기억 품은 팜 카페는 특별한 바리스타와 함께합니다. 음료가 조금 늦게 나와도, 맛이 달라져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요.’

지난 6월 18일 서울 성북구치매안심센터분소 3층에 들어서자 카페를 설명하는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기억 품은 팜 카페’는 초로기 치매 당사자가 바리스타로 일하며 삶에 대한 의지와 용기를 얻는 ‘특별한’ 공간이다. 65세 이전에 치매 판정을 받은 초로기 치매 환자들은 사회활동이 활발한 시기에 치매 판정을 받아 경제적·심리적 부담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어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


오후 1시 기억 품은 팜 카페에는 앞치마를 두른 두 명의 바리스타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태규씨(65)는 카페 한쪽에 조성된 스마트팜을 가꾸거나 비품을 정리했다. 음료 서빙도 이씨의 몫이었다. 팜 카페에서 근무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는 이씨는 기억 품은 팜 카페가 ‘다시 태어나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라고 했다. 그는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이곳에서 사람들을 대하고 서비스를 배우며 외향적 성격으로 바뀌었다”며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즐거움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말했다.

야채주스 주문이 들어오자 음료 제조를 담당하는 조용희씨(66)는 스마트팜에서 채소를 따와 깨끗하게 손질했다. 벽에 적혀 있는 레시피를 확인하며 느리지만 정확하게 음료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레시피가 헷갈릴 때면 함께 근무하는 작업치료사에게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씨가 처음부터 이 공간에 적응했던 것은 아니다. 치매를 인정하지 못해 카페에 나오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던 조씨는 가족을 위해 용기를 냈다. 2024년 개소부터 함께한 조씨는 “이제 기억 품은 팜 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편하고 즐겁다”고 했다. 그는 “외부 활동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 지루하게 일상을 보냈는데 카페에서 규칙적으로 일하니 매일이 행복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카페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치매도 더 심해졌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로기 치매 당사자는 기억 품은 팜 카페에서 반복적·규칙적 작업을 통해 일상을 유지하는 힘을 기른다. 음료 주문과 제조, 스마트팜 관리, 채소 수확, 서빙, 계산 등 카페 운영 전반에 초로기 치매 환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카페 매니저인 작업치료사는 치매 당사자의 인지 상태를 파악해 업무를 배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업무 중 실수를 해도 타박보다는 응원이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팜 카페에서 일하는 초로기 치매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밝아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카페에서 지역 주민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관계 형성을 지속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기억 품은 팜 카페에서는 초로기 치매 환자도 청년과 동일한 노동 가치를 인정받는다. 기억 품은 팜 카페를 운영하는 전홍준 성북구치매안심센터장은 “훈련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초로기 치매 환자의 노동 가치를 낮게 취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억 품은 팜 카페는 최저 시급에 맞춰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사회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줘 자존감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인건비를 비롯한 카페 운영의 모든 예산은 성북구가 지원하고 있다.

◇“단계별 학습으로 치매 예방”…인지노리터 인기

기억 품은 팜 카페는 ‘인지노리터’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지노리터는 학습을 통한 치매 예방 활동으로, 성북구치매안심센터에 등록한 성북구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기자가 방문한 18일 오후에도 15명의 어르신이 인지훈련과 컬러링북, 유화페인팅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인지노리터에서는 자신의 여가와 취미, 인지 상태에 따른 활동이 가능하다. 성북구치매안심센터가 자체 개발한 인지 수준별 훈련 자료를 순차적으로 제공해 성취감과 인지능력 향상을 도모한다. 인지노리터에서 어르신이 활동 중에 어려움을 느끼면 함께 있는 작업치료사가 적절하게 개입해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인지노리터는 지역 어르신이 모이는 구심점이 됐다. 2024년 9월 개소 이후 첫해엔 1344명이 방문했고, 지난해엔 4923명, 올해는 지난 6월 18일까지 2833명이 인지노리터를 찾았다. 하루 25명 내외의 어르신이 꾸준히 인지노리터에서 학습을 이어가고 있다.

1년 넘게 인지노리터 활동에 참여했다는 김수연씨(70)는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공부를 할 수 있어 꾸준히 오고 있다”며 “허리가 아파도 방석을 가지고 와서 공부할 만큼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귀하다”고 말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김영자씨(74)는 “인지노리터에 참여하면 쓰지 않던 머리를 써서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 같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해지는 것도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두 어르신은 하루 사용 시간인 2시간을 꽉 채우고 집으로 돌아갔다.

인지노리터는 선제적으로 치매를 발견하는 역할도 한다. 이용 전 필수로 진행하는 치매 조기검진에서 경도인지장애와 치매를 진단하고, 치매로 판단될 시 감별 검사 기관으로 연계한다. 전 센터장은 “인지노리터에서의 활동으로 기억력 등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며 “사후평가를 통해 인지능력 변화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치매 환자·가족이 지역사회와 어울리는 성북구 구상”


성북구치매안심센터는 치매 환자와 가족의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도 새롭게 진행한다. 먼저 성북구보건소 치매안심센터 본소에 초로기 치매 환자의 사회참여 및 지역사회 교류를 지원하는 ‘초록기억카페’가 탄생할 예정이다. 서울시와 서울광역치매센터 공모에 선정돼 추진하는 초록기억카페는 스마트팜 일자리 연계 공간에 인지건강 프로그램인 인지노리터를 결합한 형태로 기획됐다. 성북구치매안심센터는 기억 품은 팜 카페의 운영 노하우를 접목해 구성할 예정이다. 치매안심센터 본소라는 접근성을 활용해 보다 많은 초로기 치매 환자와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거점 공간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치매 환자 및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가족이 함께하는 창작 기반 사회참여 프로그램도 있다. ‘기억 서점’은 이들이 자신의 삶과 기억을 글과 그림으로 창작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서를 발간하는 프로젝트다. 비즈·금속공예를 활용한 수공예 책갈피도 제작할 계획이다. 이렇게 탄생한 출판물과 굿즈는 온라인 서점과 관내 독립서점 등을 통해 판매되며, 수익금은 참여자들에게 창작 저작권료와 수당 형태로 지급된다. 성북구치매안심센터 관계자는 “필사 활동은 기억 회상과 집중력 향상,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줘 효과적인 치매 예방 활동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치매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진단자가 사회적 가치 창출의 주체로 참여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과 생각, 기억을 지역사회에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인지장애 당사자의 사회참여 가능성을 알리는 기회도 된다.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기억 서점은 치매와 인지장애가 있는 주민들이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지역사회와 나누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업”이라며 “앞으로도 치매 환자와 가족이 지역사회 안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어울릴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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