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지평을 넓혀온 사진가 마틴 파(Martin Parr)는 평범한 일상 속 장면들을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로 포착하며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사진가였다. 오는 7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 개막을 앞두고, 반세기에 걸쳐 같은 곳을 응시하며 동시대의 풍경을 기록해온 사진가 마틴 파의 시선을 들여다봤다.
마틴 파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관찰한 기록이라 생각한다.
마틴 파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단번에 생각나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너무나 선명한 나머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주는 컬러 팔레트, 강렬한 플래시, 여름의 해변, 휴양을 즐기는 사람들. 마틴 파의 프레임 안에는 언제나 먹고, 사고, 기념하고,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순간이 담겨 있다. 그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라면 어디든 찾아가 카메라를 들었고,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을 특유의 유머와 아이러니로 포착해왔다.
그의 이름을 세상에 각인한 결정적 계기는 1986년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The Last Resort>였다. 리버풀 인근에 자리한 휴양지를 찾은 마틴 파는 달콤한 아이스크림과 쏟아지는 햇살이 있는 낭만적인 휴양지의 풍경 대신, 온갖 쓰레기가 즐비한 뉴브라이턴의 콘크리트 해변을 배경으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프레임에 담았다. 화려한 기교나 미화하려는 의도를 거둔 채 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한 그의 접근법은 당시 다큐멘터리 사진의 관습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그는 소비문화와 관광, 음식, 여가, 계급, 국가 정체성 등의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며 현대인의 삶을 이루는 사소한 풍경을 집요하게 기록해왔다. 이 때문에 마틴 파는 종종 소비 사회를 풍자하거나 현대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사진가로 기억되지만, 그의 작업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결국 그 핵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그리고 그들을 오래도록 관찰해온 사진가의 시선이 놓여 있음을 자연히 알게 된다.
오는 7월 16일 개막하는 서울시립 사진미술관의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지난해 12월, 마틴 파가 작고한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1970년대 초기 흑백 작업부터 대표적인 컬러 연작, 그리고 남한과 북한을 기록한 작업까지 총 14개 연작을 아우른다. 마틴 파를 둘러싼 익숙한 수식을 넘어, 그가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과 오늘날 그 시선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묻는 자리가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마틴 파의 여름 풍경뿐 아니라 그의 사진 세계가 막 형성되던 시기의 낯선 장면들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개막을 앞두고 전시를 기획한 손현정 학예연구사와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마틴 파 작고 이후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하며, 생전에 방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한 작가의 작업 세계에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고자 했나?
처음부터 어떤 기준이나 주제를 정해두고 그의 아카이브에 접근했다기보다는 사진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힘, 즉 현실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힘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풀어보고자 했다. 수많은 이미지가 생산되고 소비되는 환경에 피로감을 느끼던 차에, 특별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보다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풍경을 꾸준히 관찰하고 기록해온 마틴 파의 작업이 더욱 눈에 들어온 영향도 있었다. 그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관찰한 기록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작가의 사진을 소비사회 비판이나 풍자의 관점으로 해석해온 기존의 관점에서 한 걸음 나아가 ‘마틴 파적 보기 방식’에 주목한다. 기획 과정에서 이러한 방향성을 설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마틴 파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 안으로 들어가 그들과 직접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카메라를 드는 작가였다. 사회 비판이나 풍자라는 도식적인 해석을 떠나, 개인적으로 작가가 세상을 대하는 이런 태도 자체에 더 관심이 있었다. 어떤 결론을 정해놓고 사람을 바라보기보다 현장에 머물며 관찰하고 기록하는 태도 말이다. 전시를 기획하며 사진에 담긴 메시지나 비판 의식보다 작가가 어떻게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어떻게 그들과 관계 맺었는지에 주목하고자 했다. 그것이 마틴 파가 이어온 작업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시에서는 1970년대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4개의 주요 연작을 아우르는 작품 5백여 점을 소개할 예정이다. 제각기 서로 다른 장소와 시대를 다루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는 마틴 파의 일관된 관심사는 무엇이라고 보나?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초기 작업과 최근 작업 사이에 색감이나 형식적인 변화는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관심만큼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의 사진에는 해변이나 쇼핑몰, 관광지, 축제 현장 등 여러 장소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건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여가를 즐기고, 무엇을 소비하고,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지를 꾸준히 응시했다. 그의 사진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우리의 취향과 문화가 변화해온 과정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는 이유다.
전시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남한과 북한을 배경으로 전개한 연작도 소개할 예정이다. 마틴 파가 바라본 한국의 풍경에서는 어떤 특징을 발견할 수 있나?
한국에 관한 그의 작업이 흥미로운 건 남한과 북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데서 온다. 다른 작업과 마찬가지로 결국 한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작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듯하다. 개인적으로 남한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트 사진에 애착이 간다. 각종 식료품을 가득 담은 카트에 아이가 올라타 있는 장면은 지금도 볼 법한 풍경이지 않나. 남한 시리즈가 우리에게 익숙한 기억을 다시 소환한다면, 북한 시리즈는 사각의 프레임 안에 담긴 도시의 단정하고 정돈된 풍경이 사진적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람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게 하는 연작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하며 새롭게 발견하거나 다시 바라보게 된 마틴 파의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기 바란다.
1970년대에 촬영한 흑백 연작 <The Non-Conformists(비국교인들)>과 <BAD WEATHER(궂은 날)>이다. 마틴 파 하면 대체로 강렬한 컬러사진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사실 작가 특유의 유머나 사람을 응시하는 시선은 이미 흑백으로 촬영한 그의 초기작에 전부 담겨 있다. 작품을 선별하며 더 분명하게 느낀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틴 파가 어느 순간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의 흑백 작업을 들여다보면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그간 익숙하게 접한 사진들뿐 아니라 그의 시작점을 함께 바라봐주길 바란다.
일상을 이미지로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마틴 파의 사진이 새삼 환기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이 시대에 그의 사진이 새롭게 읽힌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진 듯하다. 지금은 누구나 음식 사진을 찍고, 여행지에서 셀피를 남기며 일상을 기록하지 않나. 마틴 파가 일찍이 포착한 것들이 어느새 우리의 당연한 일상이 된 셈이다. 전시를 준비하며 ‘마틴 파의 사진이 과연 현재에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품기보다는 우리가 왜 이런 풍경에 이토록 익숙해졌는지를 새삼 생각해보게 됐다. 어쩌면 요즘 SNS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이미지 역시 작가가 평생 관찰해온 풍경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게 아닐까 싶다.
‘We Are Martin Parr,’ 즉 ‘우리가 곧 마틴 파’라는 선언적 성격의 제목이 인상적이다. 제목에는 어떤 의미를 담고자 했나?
사실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6일 마틴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부재 속에서 이 전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며 제목 역시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결국 선택한 것은 ‘마틴 파: We Are Martin Parr’라는 아주 단순한 제목이었다. 마틴 파가 바라본 세계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물던 장면들은 내 주변에도, 내 동료들 곁에도 늘 존재하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틴 파의 사진 속 인물들은 결국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관람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경험하길 바라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
그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면 어느 순간 사진에 담긴 인물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 역시 마틴 파의 사진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틴 파가 바라본 세계는 결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이 머물던 장면들은 내 주변에도, 내 동료들 곁에도 늘 존재하던 익숙한 풍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틴 파의 사진 속 인물들은 결국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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