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국내 배터리업계 하반기 관전 포인트가 전기차 판매 회복에서 전력 인프라와 현지 공급망 대응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전기차 시장은 보조금 종료와 고금리, 중고 전기차 공급 증가로 이른 반등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송전망 병목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를 키우고 있다. 전기차 중심으로 짜였던 K배터리 성장 공식이 ESS와 유럽 보급형 전기차 시장, 차세대 배터리 기술을 망라하는 구조로 바뀌는 흐름이다.
▲ 美-유럽 EV 시장, 각기 다른 수요 회복 흐름 ‘주목’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터리 생태계는 한동안 전기차 수요 둔화 직격탄을 맞아왔다. 북미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전동화 속도를 조절하며 셀 업체 가동률 부담이 커졌다. 중국 업체들의 리튬인산철(LFP) 공세도 수익성 압박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미국 시장은 당장 회복을 낙관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전기차 구매 보조금 지원이 종료된 데다 차량 가격과 자동차 금융비용 부담이 여전히 높다. 금리가 일부 낮아지더라도 소비자가 체감하는 자동차 대출금리 인하로 곧장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도 부담이다.
ESS는 전기차 둔화를 상쇄할 수 있는 유망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AI 데이터센터뿐 아니라 제조업 리쇼어링, 냉방 수요, 전기화, 재생에너지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전력 수요는 특정 지역에 빠르게 몰리는 반면 송전망과 변전소 증설은 더딘 상황이다. 신규 가스발전도 대안으로 거론되나 가스터빈 공급 병목이 이어지며 단기간에 전력 수요를 흡수하기는 어렵다. 이 틈에서 ESS는 피크 부하를 낮추고 계통 접속 부담을 줄이는 전력 완충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
태양광과 ESS 결합도 수요 자극 요인이다. 태양광 단독 프로젝트는 공급망 적격성, 세액공제, 인버터·모듈 조달 리스크 등 요소에 민감하다. 반면 ESS를 병용하면 낮 시간대 발전 집중 완화, 저녁 피크 대응, 전력구매계약 가치 개선 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개발사들이 올해 유틸리티급 배터리 저장장치 24GW 추가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은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
정책 환경도 ESS 공급망 성격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세액공제 적격성, 금지외국기업 규정, 부품 원산지 및 공급망 추적 등 기준을 강화하고 있다. 아울러 공급 과잉인 글로벌 LFP 생태계 내에서도 ‘쓸 수 있는 셀’과 ‘쓰기 어려운 셀’이 갈리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미 생산 거점을 갖춘 국내 배터리 기업 역할이 커질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등 국내 셀 업체들은 ESS 전환을 통해 낮아진 전기차 가동률을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ESS 확대가 곧바로 고수익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기차 라인 전환 과정에서 초기 수율과 고정비 부담이 발생할 수 있고 경쟁사 증설이 빨라질 경우 판가 압박도 불가피하다. 이로써 수주 규모보다 실제 양산 안정성과 원가 관리가 하반기 실적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럽은 미국과 결이 다소 다른 전기차 수요 회복 흐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높은 대형 SUV 및 픽업 선호, 장거리 주행 문화, 충전 인프라 격차 등으로 인해 하이브리드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가 중간 선택지로 부각되는 양상이다. 반면 유럽은 휘발유 및 디젤 세금 부담이 더하고 도심 주행 비중이 높으며 소형차 시장이 크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보급형 배터리전기차(BEV) 총소유비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2만~3만 유로대 가격 소형 전기차를 확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리미엄 전기차만으로는 대중화 속도를 높이기 어려워서다. 보급형 BEV가 확산되면 배터리 수요도 대용량 하이니켈 중심에서 LFP, 미드니켈, 망간리치, 고전압 미드니켈 등으로 다변화될 가능성이 크다.
▲ “LFP·미드니켈 대응, 차세대 기술 상용화 능력 관건”
국내 배터리·소재 기업이 LFP와 미드니켈 대응을 서두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 경쟁력과 현지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갖추지 못하면 유럽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와 격차를 좁히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유럽의 역내 생산 우대 흐름도 주목할 만하다. 유럽은 배터리를 단순 부품이 아닌 탄소배출, 공급망 안정성, 고용, 산업 정책과 연결된 전략 품목으로 간주한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유럽 현지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인허가, 전력비, 초기 수율 안정화 등이 변수로 꼽힌다. 이러한 양상은 유럽 내 생산 능력과 고객 기반을 확보한 한국·일본·유럽 배터리 업체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하반기 글로벌 2차전지 업황은 전기차 판매량 하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미국에서는 전기차보다 ESS, 유럽은 보급형 BEV와 역내 공급망, 기술 측면에서는 차세대 폼팩터와 안전성·충전 성능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배터리업계 반등을 위해서는 수주 확대뿐 아니라 LFP·미드니켈 대응력, ESS 수익성, 차세대 기술 상용화 속도 등을 고루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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