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이번 주에 사흘을 쉰다고 했더니 같은 회사 동료 b가 반문한다. "정말이요? 사(4) 일이나 쉬신다고요?" 이래서 불거지는 게 b의 문해력 논란이다. 사흘을 잘못 알고 있다. 사흘은 숫자로 3인데 4로 이해한 것이다. 4는 나흘인데 말이다. 의사소통이 실패한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쉰 살인 a보다 스물셋 어린 b다. 사흘, 나흘 하는 말은 b의 것이 아니다. 자기도 안 쓰고 주변에서 듣기도 어려우니 모르는 것이 이상하지도 않다.
하지만 어쩌겠나. 살다 보면 a처럼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 마련인 것을. 글말에서도 수시로 튀어나오는 게 순우리말 숫자이고 날짜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순우리말로 숫자를 세 보자.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여기까지는 별것 없다. 스물(20) 서른(30) 마흔(40) 쉰(50) 예순(60) 일흔(70) 여든(80) 아흔(90)도 무난하다. 고난도는 다음부터다. 100(百)은 뭐라 하나. '온'이다. 온갖, 온누리 할 때 그 온 맞다. 순우리말로 나이를 센다. 한 살 두 살 세 살 네 살 다섯 살 한다. b의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다. 50세인 a보다 스물셋이 어려서다. 숫자로는 스물셋 하지만 나이로는 스물세 살 한다. 스물하나(→ 스물한 살) 서른둘(→ 서른두 살) 마흔셋(→ 마흔세 살) 쉰넷(→ 쉰네 살) 하듯 자연스럽기에 따로 익힐 필요가 없다.
더 큰 수를 이어서 헤아려 본다. 민간에 도는 일설을 따른다면, '온' 다음에는 즈믄(천)이 오고 골(만) 잘(억) 울(조)이 즈믄의 뒤를 잇는다. 낯설기 짝이 없다. 특히, 골 잘 울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뿐더러 쓰일 일도 없는 말이다. 그러나 '골'은 평소 하는 말에 흔적이 보인다. "내가 골백번 말했다" 할 때 그 골 맞다. 골백번을 그대로 풀면 골(만) 곱하기 백이니까 100만 번이 된다. 온 이상의 순우리말 숫자가 아주 큰 수나 여러 차례를 표현할 때가 있다. 이 경우다. 물론 이 골이 '곰국 고듯 푹 고다'의 그 '고다'에서 왔다는 설도 있다. 이제 음력 1일부터 30일까지 날짜도 세 보자.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닷새 엿새 이레 여드레 아흐레 열흘 열하루 열이틀 열사흘 열나흘 열닷새(보름) 열엿새 열이레 열여드레 열아흐레 스무날 스무하루 스무이틀 스무사흘 스무나흘 스무닷새 스무엿새 스무이레 스무여드레 스무아흐레(그믐) 그믐.
앞으로는 '섣달그믐'을 보아도 당황하지 않는다. '음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옛날엔 음력 12월 1일을 설날로 쇤 적도 있다. 음력 12월을 설달이라 한 이유다. 그 설달이 섣달로 바뀌어 굳어졌다. 날짜에 날을 붙이면 하룻날 이튿날 사흗날 나흗날 닷샛날 엿샛날 이렛날 여드렛날 아흐렛날 열흘날 열하룻날 보름날 그믐날이 된다. 벌써 칠월하고 이튿날이다. 올해도 절반이 쏜살처럼 지났다. 섣달그믐도 금세 닥치고 말 것이다. 골백번의 경험칙이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엮은이 보리 사전 편집부, 『속담 사전』, ㈜도서출판 보리, 2024
2. 최봉영, 『묻따풀(묻고 따져서 풀어보는) 한국말』, 묻따풀학당, 2025
3. 이상권, 『무지 어려운 우리말겨루기 365 言편』, 북마크, 2017
4. [이런말저런글] 순보 삼삭 섣달 달포, 날짜 낱말들 (송고 2025-11-24 05:55) - https://www.yna.co.kr/view/AKR20251121077500546
5. [이런말저런글] 떡국을 골백번 먹는다면… (송고 2025-02-04 05:55) - https://www.yna.co.kr/view/AKR20250203074600546
6. 표준국어대사전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